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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그몸] 중국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3부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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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얼음마녀 작성일13-06-11 13:48 조회3,19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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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체계화로의 길 - 난경(難經) (153~168p)
 
후한 시대 당시 시대적 요청이었던 침구의학의 체계화에 응한 것이 『황제팔십일난경』, 난경(難經)이다.
난경의 특징은 ⑴ 취급 범위를 침법에 한정시킨 점 (약은 물론 구법도 배제함) ⑵ 목표를 우선 맥법과 맥론으로 정하고 전체의 반 이상을 할애하여 논한 점이다.
 
* 맥의 기(氣) 대순환
난경(難經)맥법의 기본원칙은 머리, 목, 수족에 산재하는 박동장소 대신 진맥부위를 손목의 촌구부로 한정한 것인데 이렇게 촌구부로 일체의 맥을 짚는 것이 가능한 근거가 맥의 기(氣) 대순환에 있다. 맥이란 장부를 지나 경맥을 거쳐서 전신을 순환하는 영기의 운동이기 때문에 촌구부로 모든 경맥의 이상을 진단할 수 있다. 난경에서는 영추에서 언급된 영기의 흐름을 이어받아 경맥 순환의 경로에 대한 간명한 설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현재의 12경맥 유주와 일치한다.
 
→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 →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 →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 →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 →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 →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 →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 →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 →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 →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 →
 
* 맥의 체계
『난경』의 모델은 인공 수로에 호수를 조합시켜 설명하는데 십이경맥은 환류하는 수로이고, 제어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예상을 넘는 큰 비가 오면 그것도 듣지 않고 물은 기경팔맥의 호수에 흘러든다. 환류계로부터 떨어진 호수는 수로의 제어기구 밑에 있지 않다. 전신을 순환하는 수로 본류의 경맥(經脈), 경맥에서 갈라져 경맥 사이를 잇는 지류의 낙맥(絡脈), 넘쳐난 본류의 물을 저수하는 기경(寄經) 등 3요소로 구성되는 수계가 『난경』이 잡은 맥의 체계였다. [28난]
   
* 진료법의 체계화
난경은 병인에 있어 내인과 외인을 구별하고 오사(五邪)라 부른 다섯 종류의 외인병을 중시하였다. 진단법으로 망(望:오색을 보고 그 병을 안다), 문(聞: 오음을 듣고 그 병을 구분한다), 문(問 : 그 바라는 바의 오미를 물어서 병이 일어난 곳을 안다), 절(切:촌구를 살펴 허실을 보아서 병과 병이 생긴 장부의 위치를 안다)의 사진(四診)법을 처음 거론한 것이다. 난경에서는 십이경맥의 오유(五兪)를 중시했는데, 십이경맥 각각으로부터 다섯 개씩 뽑아낸 급소, 정(井), 형(滎), 유(兪), 경(經), 합(合)이다. 정(井)혈은 수족상단, 물의 원천이고, 경기가 출발하는 부위. 형(荥)혈은 물의 미약한 흐름에 비유, 종기(终气)가 나오는 부위, 수혈(输穴)은 물의 흐름이 작음에서 커지는 것에 비유, 천부에서 심부로 주입, 경기는 점차 왕성하는 부위, 경(經)혈은 물의 흐름이 점차 넓어지는데 비유, 기가 왕성한 부위, 합(合)혈은 강물흐름은 바다에 비유, 경기는 심입하여 장부에 회합한다. (166p표 혈자리 이름이 다른 부분 있음)『난경』은 오유혈 66개만 골라서 자법(刺法)을 논했는데 육부에 있어 원(原)이라 불리는 급소가 삼초의 기가 머무는 곳이라 해서 중히 여겼다. 오장의 경우는 유(兪)혈이 원(原)혈이 되며 <오장육부에 병이 있을 때는 그 원(原)을 취해 침을 놓는다>하였다.[66난]
 
제 9장 임상의학의 확립 - 『상한론(傷寒論)』(169~199p)
후한 말 장중경의 저작 『상한잡병론』의 출현은 중국의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① 실재한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최초의 의서이고, ② 체계적인 구성원리에 입각한 최초의 임상의학서이며 ③ 내복약(탕액)을 중심으로 하는 요법과 약의 처방 집성, 탕법 성과의 결정체였고 ④ 진단법과 약물을 주체로 하는 치료법을 긴밀히 결합한 최초의 임상의학서 (맥증을 유형화해서 거기에 치료법을 긴밀하게 대응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상한잡병론은 3가지 구성요소로 되어 있는데 (1) 맥론 및 상한의 병리학과 진단법 (2) 상한의 맥증(맥상과 증후), 치료법(장중경의 최대공헌) (3) 상한 이외 소위 잡병의 맥증과 치료법이 그것이다. 이로써 육경변증(六經辯証)이라는 진단(=치료)방법이 명백해졌고 그것이 오늘날 중국의학을 특징 짓는 변증논치(辯証論治)의 방법으로 발전했다.
 
의학의 길의 <방법>이 완전히 갖춰진 것은 중경이후이다. 그 때문에 세간에서는 중경을 <방법>의 터를 닦은 사람이라 부른다. <방법>의 방은 처방(=치료법), 법은 진단법을 의미한다. 상한론은 397법, 130방을 갖추고 있는데 <중경보다 앞에는 법이 있고 방이 없었으며, 중경보다 뒤에는 방이 있고 법이 없었다. 방법을 갖춘 것은 다만 중경의 이 책뿐인 것이다.> 상한론조변(傷寒論條弁, 방유집)   
 
그러나 이러한 장중경의 책은 산실됐고 왕숙화가 유문을 채집해서 상한론을 재편집했다. 그는 다른 책에서도 채록했고 자신의 의견이나 문장을 덧붙였다. 이후 상한론은 모습을 바꾸어서 세 번 출현하여 텍스트를 남겼는데 ① 금대의 『주해상한론』 ② 당대 손사막의 『천금익방』 9,10권에 수록된 상한 ③ 위의 왕숙화가 쓴 맥경의 권7과 8에 나타난다. 이 3가지 텍스트는 각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상한론』이다. 이들은 모두 다른 눈으로 『상한론』을 보았다. 역사가 후세에 남긴 것은 각 시대 사람들이 보고 느낀 『상한론』, 말하자면 <풍경으로서의 『상한론』>이다. 상한론에서는 경맥간의 병이행이 맥증의 큰 변화를 의미하고, 그것에 따라 약의 유형도 크게 변한다고 보았다.『상한론(傷寒論)』은 <맥증-약명증-약>의 3중 구조에 의해 이론적으로는 진행성 상한의 모든 국면을 철저하게 망라함으로써 적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맥증=약>이라는 등식 전체가 진료방법으로서의 육경변증이다.
 
제 10장 의학의 전개와 성숙 – 위‧진‧남북조‧수‧당의 의서 (200~225p)
* 한대의 의학을 종합한 대표적인 의서가 왕숙화의 『맥경』, 황보밀의 『침구갑을경』이다.
『맥경』은 진단법 책으로 맥법과 맥론 및 진단의 실제에 대해 서술하고 치료법도 어느 정도 언급했다. 황제내경, 상한론, 편작의 맥법과 진단법 수록했는데 한 대 당시까지의 의학 전체를 넓게 멀리 보고 망라한 책이다. 왕숙화의 공헌은 2가지인데 (1) 24종의 맥상을 확정하고(이후 명대에 28맥으로 완성됨) (2) 좌우 양손의 촌, 관, 척 삼부를 각각 장부에 대응시켜 진맥하는 방법(좌:심,간,신 우:폐,비,명문)을 확립한 것이다.『침구갑을경』은 황제 내경에 수록된 문장을 분야별 및 문제별로 정리하고 편집하여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 공헌은 ① 황제내경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해서 고친 것이고 ② 공혈(孔穴) 총람 게재한 것이다. 349개 혈위의 위치, 소속경락, 특성, 주치증 등의 내용이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임상과 이론연구에 현실적 구체성을 제공하여 침구학이 이론에 그치지 않고 임상현장에서의 경험과 상호작용하며 계속 발전해갈 수 있는 토대가 제공되었다.
 
* 약물 요법의 임상의학서
진(晉)에서 남북조시대에는 약물요법을 주로 다룬 임상의학서 많이 나타났는데 전쟁으로 인한 대이동으로 풍토와 생활의 변화가 병을 일상화했다. 의서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지방수령과 같은 하급 귀족이나 관료들이 담당했다. 불교 승려나 도교 도사들 역시 의학을 겸수(兼修)했으나 당시 의서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갈홍은 무질서하게 섞여있고 급병에 대한 내용이 불충분한 당시 의서를 비판, 스스로 두 종류의 책 100권 『옥함방』을 편찬했다. 병명에 따라 나누고, 같은 종류의 것은 이어서 나열하여 섞이지 않게 했다. 그 중『구졸』3권에서는 간단하게 약물을 이용하는 손쉬운 처방과 많은 급병에 대한 처방을 다루었다.
 
*『주후방』
갈홍의『구졸』 86수(조목)를 200여년 뒤 양나라 도홍경이 개정‧증보(86수를 79수로 줄이고 22수를 늘려 101방으로)하여『주후백일방』을 저술했다. 이것은 (1) 명의의 기술(記述), 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양방(良方), 널리 효능이 알려진 것, 실제로 이용해서 효력이 있었던 중요한 것만 뽑아서 채록하고, 요점을 게재해서 각 조의 제목으로 정함했는데 수진본의서로 얇아서 휴대하기 편하다. (2) 긴급한 경우에 검색하기 쉽게 조문의 배열을 고쳤고 (3) 3권의 구성이 장부‧경락에서 생기는 <내병>, 사지구규가 밖과 접해서 생기는 <외발병>, 타물로 인해 상해를 입는 <타범>이 각각 1권씩으로 되어 있다. 내병과 외발병이 병인(病因)이 아니라 발병부위에 근거했기에 후세의 삼인론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병의 3가지 분류의 선구임은 분명하다.
 
* 『경방소품』에는 중국에서 의서가 어떻게 공적(公的)으로 기록되고 보존되었으며 그리고 어떻게 사회적으로 인지되고 권위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미리 처방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모두 질병에 직면했을 때 그 원인을 순서대로 서술하고 증후를 관찰한 뒤 약성에 따라 처방한 것, 병자가 나을 수 있다면 즉시 집중적으로 치료하여 그것을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서술하여 처방 증명서를 만든 후 관부에 진상했다.”
 
저자인 진연지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의서가 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의학을 배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원리부터 풀어나간 본격적인 임상의학서를 따라 공들여 음미하면서 읽고 적절한 방식에 따라약을 조제하고 침구를 놓아야 하지만 이것을 배우려 하지 않고 다만 몸 주위에 준비해두고 긴급한 경우에 대처하려는 사람은 처방규정에 따라야 하며 일부를 읽는 것이 긴요하다. <소품>의서의 역할은 가정상비용‧비급용이었고 의학입문서였다. 의학의 입장에서 볼 때 <대품>과 <소품>의 큰 차이중 하나는 진단법에 있다. 도홍경도 『주후백일방』에서 맥진법을 이용하지 않았다. 진연지도 맥진을 중시했지만 『경방소품』은 거의 맥진을 사용하지 않고 병자의 성별과 연령을 묻고 처방설명서에 따라 처방의 설명과 병의 증후가 대략 일치하면 그것을 복용시키도록 한다. 다만 약의 분량을 어떻게 가감하는가의 판단기준으로 병자의 건강정도, 연령, 병의 깊이, 경과시간, 진행정도 등을 조합한 여덟 유형을 나타내고, 그 위에 풍토, 여성, 허약한 사람 등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뜸은 사용하지만, 침은 쓰지 않는다. 침은 그만큼 고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 중국 의학의 성숙기
수‧당 하의 의서 저술은 남북조 시대에 배양되고 넓혀진 의학의 기반 위에서 눈부신 전개를 보였는데 개인들의 처방집 저작은 활발했으나 그 책들은 모두 소실되었다. 북위에서는 국가적 의서 편찬사업이 활발했는데 『사해유취방』 2600권, 『사해유취단요방』 300권 편찬, 『소씨제병원후론』 은 1720가지 병의 병인과 병리와 증후를 논했는데 병리학이라는 전문분과가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에는 의서편찬의 국가사업이 본초를 대상으로 했는데 도홍경의 『집주본초』를 개정, 증보하여 『신수본초』 54권 완성함. 현종과 덕종은 민중후생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로 『광제방』 5권을 반포하고 군현의 수령에게 그 중 긴요한 것을 뽑아 큰 판에 써서 주요 길목에 고찰을 세우게 했다. 관료제도로 정부의 의약부분이 정착되었는데 당대에 황제의 진찰 시약을 관장하는 상약국에 의사와 약제사 84명, 의료행정과 관료의 진찰, 의학연구를 담당하는 태의서에 의사와 약제사 222명, 학생 119명이 있었는데 학생은 의(醫), 침(鍼), 안마, 주금(呪禁) 등 각 과로 나뉘어져 교육받고 시험을 통해 진급하고 졸업이 인정되면 중앙과 지방의 정부기관에 배속되었다.
 
* 당대 의학의 유산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고전의 재편집과 주석작업이다. 왕빙이 재편집하고 주석을 가한 『황제소문』에서 삽입된 「운기칠편」은 새로운 이론인 <오운육기설>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오행의 운행과 육기의 변화를 통해 자연과 인체의 운동법칙성을 인식하려한 이것은 오대부터 송에 걸쳐 갑자기 부상하여 금‧원 이후 의학의 강력한 이론적 도구가 되었다. 당대 의학의 최대 유산은『천금방』과 『외대비요』인데 둘 다 위‧진 남북조에서 수‧당에 이르는 임상의 각과와 침구 의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지만 상당히 대조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천금방』은 재야 의사인 손사막이『비급천금요방』30권과 보유(補遺:빠진 것을 채워넣음)로 쓰여진『천금익방』30권을 가리킨다. 의(醫)의 논리를 설명하고 질병의 기재분야를 임신과 출산부터 시작해 양생법에 많은 쪽을 할애하는 등 저자의 강렬한 개성과 사상에 입각해서 저술된 『천금방』은 약물을 주로 하는 임상의학 외에 약법‧본초‧맥법‧침구부터 주금까지 일괄해서 전권을 대항목과 중항목으로 구성되었다.이에 반해『외대비요』는 태수 왕도가 편찬한 40권의 의서로 병리학의 체계를 따르고 『제병원후론』에 가깝다. 『외대비요』에 왕도는 거의 소실된 이전 시대(위,진,남북조,수,당)의 의서들에서 채록한 엄청난 문장에 하나하나 출전을 기록하고 게다가 원전의 권수까지 주기하였다.
 
맺음말 (227~228p)
중국의학은 전국시대에 탄생해서 후한말까지 대략 5세기동안 이론과 기술의 범형이 만들어짐으로써 독자적인 의학으로 확립되었다. 비유하자면 전국시대는 이륙기, 한대는 급상승기, 위‧진시대는 안전한 항로에 도달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응축된 시간이 있고 그 응축된 시간 속에서 응축된 고전이 결정되었다. 그로부터 역사는 고전의 응축된 내용을 읽어내고 그 뜻을 풀어 펼쳐가는 과정이었다. 해독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이었다. 각 시대 사람들은 고전 속에서 각각 다른 것을 보아 취하였다. 다른 시대에는 다른 고전의 풍경이 있었고, 고전의 풍경은 그대로 시대를 반영하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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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전세계 어느 문명권에서나 보편적으로 사용된 의학적 도구인 약물이외에도 "침구"라는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켜온 중국의학이 어떻게 변화 발전을 거듭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감이당 수업에서 계속 배우고 있는 한의학적 지식이 어느 시대, 어떤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의미있었다. 전체 내용 중에서는 맺음말에 나온 부분," 의학이라는 것 역시 각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해석"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우리가 세미나때마다 하나씩 배우면서 자기 몸에다 찔러 보고 있는 침법이 고도의 기술이어서 구급방에서는 다루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  아마도 예전에는 침을 가늘게 연마하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두껍고 큰 침(게다가 끝부분도 날카로운)을 찔러야해서 더욱더 자침하는데 기술이 요구되었던 게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댓글목록

깜장토끼님의 댓글

깜장토끼 작성일

1년 반 동안 들은 내용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꿰지고 정리되고 했던 것 같아요^^
예진과 풍쌤 은주쌤의 훌륭한 발제문 덕분에 일주일에 한 권! 넉근하게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ㅎㅎ 베리 굿~!

얼음마녀님의 댓글

얼음마녀 댓글의 댓글 작성일

씨앗문장을 쓰라고 했는데 발제문을 옮겼네요. 이것도 힘들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