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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푸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 자기 정신과 고독을 즐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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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깜장토끼 작성일13-03-05 22:38 조회3,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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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정신과 고독을 즐기는 자 


자유. 나는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설레고, 내 삶에서 지속해서 획득되어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난 니체를 만나기 전까지 자유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의 만족했고, 사랑했으며, 그래서 그 행복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그것이 과연 행복이었을까? 행복을 지속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오히려 나를 억압하지 않았는가? 그 행복이란 것이 실제 나로부터 우러나온 소망이었던가?


니체는 내가 행복이라고 불렀고, 소망했던 것이 내 안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외부의 가치가 행복인 양 소망했고, 내면화하여 실천했으며, 저 스스로 짐을 잔뜩 이고 가는 한 마리의 나귀였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전제로부터 떠나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는데, 그때 찾아온 첫 번째 감정이 고독이었다. 홀로 있음. 예전에 고독이란 감정이 들면 나는 외롭다는 말로 표현했었다. 홀로 있다는 느낌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을 찾고, 일을 찾고, 봉사로 그것을 극복하려 했다. 이전에 내 전제에선 고독이란 감정은 부정돼야 하는 것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에 수록된 “산허리에 있는 나무에 대하여”를 보면 한 젊은이가 나온다. 이 자도 나와 같이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무리에서 나온 자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원망의 말들이 새어 나오고 자신에 대한 경멸과 동경이 함께 성장한다. 


“ 차라투스라여, 그대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높이 오르려고 마음먹은 후 나 자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지 않게 되었지요. 어떻게 하여 이리되었는지요? 

 높이 올라와 보면 나는 언제나 혼자랍니다.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고독이라는 한기만이 나를 떨게 만들지요. 그런데도 나 이 높은 곳에 올라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나의 경멸과 나의 동경은 함께 성장하지요. 

  오르고 있는, 비틀비틀하고 있는 내 꼴이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나 얼마나 나의 가쁜 숨결을 비웃는지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들을 나 얼마나 미워하는지요! 높은 곳에 오르면 나는 왜 그리도 피곤한지요! ”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말을 듣고 자유를 찾아 헤매고 있는 이 자의 사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고독한 싸움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또한, 그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 가운데 정신 안에 있는 허다한 감옥과 곰팡이를 정화해야 함을 당부한다. 


“너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너는 아직 자유를 꿈꾸고 있는, 갇혀 있는 자에 불과하다. 아, 이처럼 갇혀 있는 자의 영혼은 영리해지기 마련이다. 교활해지기도 하며 천해지기도    한다.

 정신의 해방을 쟁취한 자는 자기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아직도 허다한 감옥과 곰팡이가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 또한 깨끗해야 한다.

 그렇다. 나 네가 처한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청하노니 부디 너의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말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본능을 깨워 자유의 삶’을 살라는 니체의 논의를 다분히 쾌락주의적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말에 화를 내고,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 또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고결한 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의 대해 말한다. 



“ 고결한 자의 위험은 그가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고 뻔뻔스러운 자, 냉소적인 자, 또 파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나 자신의 최고의 희망을 잃어버린 고결한 자들을 알고 있다. 이제 와서 저들은 높은 희망을 모두 비방하게 되었지.

 이후 저들은 뻔뻔스럽게도 덧없는 환락에 빠져 살았고 일상적 삶 이상의 목표는 거의 세우지도 못했지. 

‘정신 또한 관능적 쾌락이다.’ 저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저들의 정신의 날개는 부러지고 말았지. 그리하여 저들의 정신은 주변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이것저것을 물어뜯어 가며 몸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한때 저들은 영웅이 되려 했다. 그런 저들이 이제 탕아가 되고 만 것이다. 저들에게 영웅이란 이제 원망과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청하노니, 네 영혼 속에 있는 영웅들을 몰아내지 말라! 너의 더없이 숭고한 희망을 신성하게 유지하도록 하라!”


자유를 찾는 고결한 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나는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가르치는 “위버멘쉬”라는 새로운 인간상이 자신의 정신의 날개가 부러져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데 만족하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년 동안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던 차라투스트라처럼 나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는 자로 매 순간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가 그 넘치는 지혜를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했을 때, 그것이 자신의 몰락임을 알았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 스스로의  몰락을 감행하게 될 때에 두려움 없이 기투하고 싶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에 수록된 “산허리에 있는 나무에 대하여” 본문 중,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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