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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세미나]오제본기 7번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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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용재 작성일15-04-14 23:36 조회2,8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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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탕왕과 재상 이윤

 


오늘은 은본기이다. 은나라는 탕임금이 세웠지만 나라가 만들어질 때는 시조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설이나 신화가 만들어진다. 시조의 태생은 평범하게 태어나서는 안 된다. 탕의 신화는 황제의 손자부터 시작된다. 탕의 모친은 황제 손자의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인지, 계비인지는 알 수 없다. 제비가 날아가다 알을 떨어뜨렸는데 그녀가 통째로 받아먹고 탕의 아버지 설을 낳았다. 엄마가 제비의 알을 삼켜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화는 정상적인 남녀 관계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탕의 증조할아버지는 황제이고 아버지는 제비 알에서 태어났으니 탕임금 역시 평범한 자손은 아니게 된다.


그리고 탕하면 정복의 파트너로서 이윤을 떠올려야 한다. 이윤에 대해서는 맹자에도 여러 번 나온다. 이윤의 이름은 아영이다. 사실 아영은 관직이름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국무총리 즉 수상이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아영이 직책이름이 되었다. 이윤의 원래 이름은 이지이다. 이윤은 몇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첫 번째 버전은 탕에게 인정받고 싶었는데 줄이 없었다는 이야기. 이걸 보면 이윤의 신분이 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회작전을 써서 신씨(莘氏)의 잉신(媵臣)이 되었다. 탕임금이 신씨족의 여자를 와이프로 삼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갔다. 왜 갔을까? 그때는 결혼할 때 여자가 신하를 같이 보냈는데 거기에 합류하기 위함이다. 사기에는 잉신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잉신이란 신부를 따라가는 레벨이 낮은 신하이다. 요리사, 옷 짓는 사람, 심부름꾼 그리고 스파이 같은 역할로 따라가서 신부의 집에 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윤은 정()과 조()를 지고 갔는데 그것은 솥과 도마를 지고 간 것으로 이윤에게 요리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자미(滋味)로 탕임금을 기쁘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자미는 요즘으로 치면 재미이다. 즉 맛있는 요리로 탕임금을 꼬셨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탕임금을 기쁘게 만들어 출세한 것이다. 또 다른 버전은 이윤이 처사였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제야의 지식인이라는 것인데 말이 좋아 지식인이지 신분은 낮았다. 좋은 조건으로 탕이 이윤을 초빙했는데 다섯 번이나 거절한 이후에 탕을 따랐다는 설도 있다.


이윤이 탕에게 구주지사(九主之事)라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치론을 이야기했다. 구주지사는 아홉 가지 유형의 군주를 말한다.

법군(法君)-법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군주,

전군(專君)-독단적인 군주,

수군(授君)-다른 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한 군주,

로군(勞君)-천하를 위해서 일하는 군주,

등군(等君)-농공행상을 공정하게 시행하는 군주,

기군(寄君)-빈대처럼 놀고먹으며 백성을 빨아먹고 사는 군주,

파군(破君)-나라를 말아먹는 군주,

국군(國君)-부국강병에만 힘쓰고 덕을 쌓지 않는 군주,

사군(三歲社君)-어린나이에 군주가 된 군주이다.

 


탕은 이론가가 아니지만 이윤은 대단한 이론가였다. 탕은 이윤을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개혁정치를 하려면 기존 세력과는 도모가 어렵다. 기존세력은 지금이 안정적이라 그 자리를 고수하려하지 개혁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격적으로 밑에 있는 사람 혹은 다른 나라 사람을 쓴 것이다. 이럴 때 파격적으로 써야 개혁에 성공한다. 기존세력을 다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강 힘을 실어 주면 개혁하려는 사람이 죽게 된다. 개혁이란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그 사람은 목숨을 걸고 개혁을 하는 것이다.


하나라 걸 임금이 학정음황(虐政淫荒) , 잔악한 정치를 했다. 이는 형벌을 과도하게 시행하고, 세금을 많이 걷고, 시도 때도 없이 전쟁하는 것을 말한다. 백성을 살 수 없게 만들면 다 학정이다. 음황은 군주의 도덕성을 말한다. ()은 여색에 빠진다는 것으로 호색, 매일 놀고, 술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은 사냥을 의미하고 요새말로 골프와 같다. , 음은 여자와 파티, 황은 사냥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게 음황에 빠지면 나라 일을 안 한다. 탕이 군대를 이끌고 갈 때 이윤도 탕을 쫓아갔다. 탕이 스스로 도끼(斧鉞:부월)를 들고 앞장섰다. 고대일수록 전쟁 때 도끼류의 무기를 들고 나가고 후대로 갈수록 창이 나온다. 지도자들은 도끼, 병사들은 절굿공이농기구 등을 들고 싸웠다. 기원전 1000년 무렵이니까 무기가 그렇게 훌륭하거나 세련되지 않았다.


정복자는 상제의 명을 받았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후대에 가면 상제가 아니라 천명이라는 말로 바뀌게 된다. 상제의 명을 받았는데 내가 정복을 안 하다면 내가 벌을 받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내가 그를 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복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니 나를 믿어라. 나는 식언(食言)하지 않는다고 탕은 말한다. 하나라의 죄가 커 하늘이 명하여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라가 기울어 갈 때 이 해가 언제나 사라지려나? 우리가 너와 더불어 망하리라라는 노래가 나온다. 여기서 해는 임금을 말한다.

정복할 때 많은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다. 궁궐을 쳐서 임금을 죽이거나 쫓아내면 그걸로 승리한다. 궁이나 임금은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뜨리면 그걸로 모든 것은 끝이다. 그래서 전쟁할 때 주변으로 가지 않고 바로 궁궐로 직행하는 것이다. 하나라를 정복한 후 탕은 정복한 땅에 있지 않고 자기가 원래 있던 박 땅으로 돌아왔다. 이 당시는 정복하면 귀중품과 노비로 쓸 사람을 챙기는 약탈전으로 끝났지 점령은 하지 않았다. 점령하려면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이 없기에 다 폐허로 만들고 챙길 것만 챙겨서 오는 것이다. 멸망시키고 다스리는 시스템으로 바뀌기 시작할 때는 진시황시대부터이다. 도로망이 있어야 시스템이 가능하다. 유목민은 시스템이 없으므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온다는 뜻에서 ()’자로 표기되고 있다.


탕이 거론하는 사람은 무와 고요와 후직이다. 특히 후직을 강조하고 있다. 농업의 생산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은나라는 갑골문의 나라이다. 은이 하력지금의 음력달력을 만들었다. 은나라 달력은 제사 스케줄로 은나라가 제사를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은나라가 농경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탕은 달력과 공무원 복색의 색깔, 흰색을 숭상하고 조회시간을 바꾸었는데 이것은 시스템의 변경을 의미한다. 이 시대에 왕조가 바뀌면 반드시 달력을 손보았다. 황제란 시간을 관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위대함을 강조하려면 태생부터 달랐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시대로 보면 탕임금은 귀족의 피를 물려받은 사생아의 자손이고, 이윤은 가진 것 없는 미천한 신분에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탕임금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했고, 이윤은 탕임금을 보좌하여 나라를 개혁하고 비전을 알려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탕이나 이윤은 썩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팔자타령을 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스스로 열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길은 열리지 않는다. 내가 절실한 만큼 하늘과 사람도 돕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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