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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시즌2 . 세번째(1/19)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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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모 작성일15-01-26 13:13 조회2,50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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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단 지난번 카프카의 소송에 나온 <법앞에서>라는 우화로 진지하게 시작 했습니다.
 
<법앞에서>는 카프카가 상당히 아낀 단편으로 여러 지인들에게 낭송도 해주었고, <시골의사>라는 단편집에서 실었다고 합니다. 특히 <법앞에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소송>작품 전체를 해석하는 전제가 된다고 합니다.
우화 전체가 법의 실체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며, 문지기가 시골사람에게 걸상을 내놓은 것은 소송의 절차로 볼 수 있으며, 빛의 광채를 통해 계속 헛된 희망을 주면서도 끊임없이 지연시켜서 오히려 지치게 만든다는 것, 문지기는 법전을 의미하며 문지기를 통해서만 법에 다가갈 수 있으나 우리는 법의 실체엔 영원히 도달할 수 없고 그저 법의 대리인들=발현물들(법전, 소송, 법원, 법원직원 등)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등의 얘기가 있었구요.
다음은 시골사람이 실패한 사람이라는 통념을 뒤엎은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독특한 해석입니다. 약샘은 정치철학자 아감벤이 이를 '시골사람의 승리'라고 해석했다며, 모든 사람들이 법의 효과에 사로잡혀서 법 앞으로 들어가려 하는 반면, 시골사람은 물신주의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앞에서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서 법이 스스로 문 닫게 만들었다고 했지요.
 
다음은 제가 수유너머 위클리에서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퍼온 글이라 원문을 보시려면 이쪽으로 이동하세요.http://suyunomo.net/?p=5051
근대 생명의 정치, 무엇보다 주권의 패러다임으로부터의 ‘엑소더스’가 가능할까.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에 대한 아감벤의 독특한 해석은 이 점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소설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신에게 열려 있는 ‘법의 문’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평생 들어가지 못한 채 죽은 시골사람의 이야기다. 들어가고 싶은 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두고 많은 해석자들이 시골사람의 실패를 말했는데, 아감벤은 그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시골사람은 비록 죽음을 맞았지만 결국 ‘열려있던’ 법의 문을 닫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이 주장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아감벤은 15세기 유대교의 필사본에 있는 작은 그림을 제시한다. 그 그림은 카프카의 소설과 매우 흡사한 장면을 담고 있다. 메시아로 보이는 인물이 선지자로 보이는 청년의 안내를 받으며 도시에 들어오려 한다. 성문은 열려 있고 위에는 문지기도 보인다. 그런데 이미 열려있는 성문 쪽으로 청년은 메시아의 진입을 준비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열려 있는 문에 무엇을 하려고 그는 다가서는 것일까. 그것은 성의 문, 법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메시아는 문이 닫힌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기에.” 실제로 카프카는 이와 비슷한 수수께끼 문장을 남겼다. “메시아는 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도래할 것이다. … 그는 최후의 날에 오지 않고, 그가 오는 날이 최후의 날일 것이다.” 법이 중단되는 곳, 법의 효력이 멈추는 곳, 법이 불능화된 곳, 거기에 메시아가 온다.
“법이 하나의 순수 형식으로 유지되는 곳에서  법은 법 앞에 헐벗은 삶을 존속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법을 불활성화하고 불능화하는 힘은 ‘삶의 역량’에서 나온다. ‘삶이 그 형식에서 분리될 수 없는 삶’, 헐벗은 삶처럼 고립되지 않는, 공통의 집합적인 삶에서 그런 힘이 나온다. 법 앞에서 적나라하게 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한 생명체’로 고립되지 않고, ‘단지 드러난 바 그대로의 현실태’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능력, 공동체가 필연적으로 갖는 잠재성 속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가지 개념들: 아감벤의 호모사케르, 근대 생명 정치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아감벤은 그런 추방된 삶의 형상을 로마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서 발견한다. ‘신성한 삶’이란 뜻을 가진 ‘호모 사케르’는 겉 뜻과는 달리, 신에게 봉헌할 수 없는 어떤 오염된 존재였다. 신성한 것에서 배척된 그 존재는 인간의 사법 질서에서도 배제된다. 누군가 그를 살해해도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법이든, 인간의 법이든 그 바깥에서 아무런 보호도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히 무력하게 내던져진 삶은 그것을 다루는 절대적 권력과 상응한다.
법 바깥에 서 있는 절대적 권력이 사실은 법을 가능케 하고 법을 실효적으로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법 안에서 작동하는 그 힘은 유일하게 법 바깥에 있는 힘이고, 뒤집어 말하면 법 바깥에 있으면서 법질서에 속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이 ‘위법성 없이’ 가능한 곳이 수용소다. 모든 것이 가능한 절대적 권력의 존재는 동시에 모든 보호가 해제된 채 적나라하게 노출된 생명의 존재를 함축한다. 아감벤은 수용소라는 ‘예외적 공간’이 사실은 “근대성의 정치적 공간 자체를 결정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본다. 이곳에서야말로 근대 생명의 정치를 떠받치는 주권 구조, 벌거벗은 삶에 근거한 권리의 구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감벤은 수용소를 ‘근대 생명의 정치의 패러다임’이라고 불렀다.
 
2. 다음은 성서 중 모세5경에 대해 논의했어요.
특히 엑소더스(출애굽기)는 들뢰즈의 탈영토화 개념과 관련해서 정밀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하네요.
들뢰즈는 성서 속의 언어적 힘이나 배치와 구조에 주목했고 구약의 뜻인 '오래된 약속'은 계약이라는 언어이며, 언어의 명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왕국은 <법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계속 지연되며 지연자체가 하나의  이데아이다. 하나님은 모세라는 문지기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고 그 실체와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법과 같은 존재이다.
 
토라=가르침이란 뜻, 두루마리로 된 히브리어 율법서.
구약 처음의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펜타투크(그리스말로 5권의 책)
모세오경
 
3.모세5경의 구조
 
히브리어
영어
창세기
Bereshith(처음에)
Genesis(창조, 발생, 기원)
1~10장: 우주와 만물의 시작
12~50장:아브라함~요셉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사상을 형성해 가는 역사
출애굽기
Weelleh Shemoth(이들이 이름이다)
애급(이집트)→애굽
Exodus(탈출)
1~15장 21절: 이집트 탈출과 홍해 건넌 후
15장 22절~18장: 홍해 건넌 후 ~ 시나이산
19~40장: 시나이산에서 가나안으로
民數記
Bemidbar(~의 광야에서)
Numbers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을 떠나 가나안(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간 광야를 방황할 때 일어난 일(인구조사)
레위기
Wayyigra
(그리고 그는 부르시다)
Leuitikon
이스라엘의 종교의식, 예배,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율법 등을 기록
申命기
Elleh Had Debarim
(이는 말씀이시다)
Deuteronomy
(거듭하는 명령의 기록)
모세가 죽기 전에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모든 말을 다시 한번 요약해 들려주는 한 편의 긴 연설문 형식
"지극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문장이 핵심
 
다음 시간(5회)에는 출애굽기부터 계속하기로 했어요.
댓글목록

약선생님의 댓글

약선생 작성일

모모샘 후기는 뭔가 우리가 공부한 것 이상을 정리해주시는군요. 잘 보았습니다!

나디아님의 댓글

나디아 작성일

헉. 두번째 후기를 올려야 할 최승아입니다. 자꾸 깜빡하네요. 내일까지 꼭 올리겠습니다^^;; 이따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