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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세미나] 두번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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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수 작성일15-03-10 14:57 조회2,7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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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에는 순이 문조(文祖)에서 요세(堯世)의 종말을 이어받은 이후부터의 내용을 읽었다.문조는 제사를 모시는 사당인데, 이 시기에는 제사가 아주 중요한 의례였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순은 왜 요의 사당에서 제사를 이어받게 되었을까? 순이 바로 요임금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순의 칭찬이 자자할 때 이 소식을 접한 요임금이 이미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낸 바 있다. 그래서 요-순이 ‘선양’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데릴사위에게 물려준 것! (일본의 경우 데릴사위는 부인 집안의 성씨로 바꾼다. 그래야 그 집안의 사람으로서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는 순에게 정치를 대신 맡기고 순이 잘 하는지 어쩐지 지켜본다. 순이 선기옥형(璿璣玉衡)으로 열심히 측정했다는 문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선기옥형은 별을 관측하는 도구이다. 혼천의와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된다. 이렇게 별의 관측을 통해 칠정(七政)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칠정이란 일월과 오성[日月金木水火土]이다. 그렇다. 달력에서 보던 일주일이다. 왜 순은 제위에 오르자마자 관측했다는 기록부터 나올까?

고대인들은 천자가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시간의 주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는 시간, 즉 절기에 맞춰 진행되었다. 여기에 ‘齊’자를 쓴 것은 1/n로 정함으로써 시공간을 가지런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후에는 제사 종류가 나오는데, 이것은 선생님께서 다시 설명해주시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사’가 무척 중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순은 정월, 5월, 8월, 11월에 각각 동쪽, 남쪽, 서쪽, 북쪽을 순수(巡狩)했다. 순수는 ‘사냥을 다니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 천자가 다스리는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도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데, 이 ‘순수’가 그 ‘순수’이다. 순수하는 그 달이 원문에는 정월이라고 나오고, 까치판 번역본에는 2월이라고 나온다. 이거 오자 아닌가 싶은 분도 있겠지만, 틀린 해석은 아니다. 하의 역법(曆法)에서는 2월이 寅月이고, 5월이 巳月, 8월이 申月, 11월이 亥月이다. 2월은 입춘과 설(구정)이 있는 달로 이 달이 곧 정월이기 때문이다.

천자는 동지가 되면 달력을 배포했다. 제후들과 대부들은 천자가 있는 곳에 와서 달력을 받아갔는데, 받아온 달력은 제사를 지낸 후 오픈식을 가졌다. 이것이 ‘망궐례’(望闕禮)이다. 이때의 ‘望’은 천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로 쓰였다.

또, 형벌에 대한 기록도 있다. 그 당시에는 죄를 지어도 감옥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형무소는 없고 구치소만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몸으로 때우거나 돈으로 해결했다. 형무소를 운영하려면 많은 인력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집행은 엄격하게 했으나 정상참작을 많이 했다. 때문에 고의가 아닌 경우 용서받았는데, 재범일 경우에는 고의로 인정해서 벌을 받았다. 처벌을 할 때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글자가 바로 ‘欽’(흠)이다. 다산의 『흠흠신서』에 나오는 그 ‘흠’자이다.
 
물론 순을 추천하기 전, 대신들이 추천했던 인물들도 있다. 공공, 곤이 그들인데 대신들의 추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 순이 이어받게 된 것이다. 순이 순수를 하던 중 ‘삼묘’(三苗)가 난을 일으키고, 순이 돌아와 이를 평정한다. 이때 ‘묘’는 묘족 공동체이다. 그들은 양자강과 회수강 사이, 초나라 땅에 살고 있었다. 현재는 운남성 쪽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데, 이주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역시 기록의 힘은 놀랍다!)

이처럼 순임금이 제위에 오르고 난 후 요하 문명권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부족들이 순에 의해 동서남북으로 밀려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순임금이 독자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요임금의 결재를 받고 진행된 것이었다. 그래서 밀려나는 이들의 이름이 1명이 아닌, 한 부족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묘와 ‘단주’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단주는 요의 아들이다. 신하들이 다음 왕으로 단주를 추천하자 요는 그가 포악하다며 완강히 거절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완강하고 고집스럽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글자다. 堯曰 : “吁! 凶, 不用.” /舜父瞽叟. 여기에서 보이듯 요가 아들에게 쓴 글자 ‘頑’은 순의 아버지인 고수를 표현할 때 쓰는 글자와 같다.

결국 단주는 그곳을 떠나 ‘삼묘족’과 작당하여 난을 일으킨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요가 순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이 아니라 순이 요를 정복했기에 어쩔 수 없이 물려주게 된 것이라는 버전도 있다. 정복당하면서 일부는 순의 부족과 연합했고, 일부는 남쪽으로 내려가 묘족과 연맹을 맺은 것! 묘족이 사는 곳에는 단주의 사당이 있고 그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이 버전도 꽤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기』에는 이야기의 버전이 여러 가지 들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순에 대한 기록이 그렇다. 진본기나 진시황 부분은 중복되는 부분이 거의 없는데, 오제본기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워낙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하는 방대한 기록이다 보니 기록해두고 퇴고를 미처 다 하지 못한 게 아닐까라고, 우쌤이 추리하셨다.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도 『사기』를 읽는 재미 요소인듯!

순의 고난(?)은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첫 번째 버전은 순이 전처 소생이라는 내용이 있고, 두 번째는 전처 소생이라는 말이 없다. 사마천은 이 두 가지 버전을 놓고 고민하다 결국 두 개 모두 남겨둔 것이다. 순의 아버지 이름은 ‘고수’. ‘고’자는 눈이 안 보인다는 뜻이고, ‘수’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름 그대로 맹인이라고 해석하기에는, 이 아버지의 활동이 너무 활발발하다. 창고 지붕을 수리하러 간 아들을 죽이기 위해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지르고, 우물을 파라고 한 다음 우물을 메워 암매장 하려 하고...그래서 그 이름의 의미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좋을 듯 하다.  

『사기』에서 등장 인물의 이름이 주는 정보는 무척 다양하다. 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고, 부족의 이름이기도 한데, 순의 배다른 동생이 상(象)은 아마 코끼리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일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중국에도 코끼리가 살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집온 어머니가 이 부족 출신인 셈이다. 지금은 중국에서 코끼리를 보기 어려운데, 기후나 지형의 변동으로 인해 태국 쪽으로 이사 간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암튼 순이 왕위를 물려받는 부분에서 눈에 띄는 것은 ‘中國’이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나라의 중심이라는 의미인데, 나라의 중심에 도읍지가 있고, 이곳에 천자가 있으니 ‘천하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후에 이것이 나라이름으로 사용된 것.

순의 두 번째 버전은 약간 다르다. 순이 효로 유명해지면서 요에게 부인과 창고 등을 받고 재산이 늘어나자, 가족들이 재산을 노리고 그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동생 상은 도읍지에서 온 아리따운 두 형수들이 탐났고, 부모는 순이 받은 창고와 양, 소가 탐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죽이려고 하는데, 창고 지붕을 수리하러 올라갔을 때 불을 지른 이야기가 여기에서 나온다. 순은 삿갓을 이용해 안전하게 착륙하는데...그럼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삿갓을 가지고 올라간 것인지? 어떻게 안전하게 내려온 것인지?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 ㅎㅎ

그래서 어떤 버전에서는 순이 사용한 것이 삿갓이 아닌 겨드랑이에 난 작은 날개라고도 한다. 순의 성이 ‘우’인데, 이 부족들에게는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는 것. 어쩐지 판타스틱한 모습이 떠오른다. 우물을 파면서 비밀구멍을 만들어놓아서 여기서도 살아난 순! 이처럼 구비전승에서는 상승-하강의 방향성을 지닌 이야기가 짝을 이뤄 나온다.

두 번째 이야기 속 순은 유랑민인데 어딜 가도 잘 적응하고, 뭘 잘 만들어서 마치 ‘김병만 족장’ 같은 사람이다.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그릇도 만드는 등등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맹자』에서는 순을 ‘대효’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부모와 동생을 지극한 마음으로 감화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순처럼 효자 되기는 참 어렵다. 일단 나를 죽이려는 부모와 형제가 있어야 하니까. ㅎㅎ 그런데 순이 요의 두 딸과 결혼한 시기가 유랑민 시절이었다면, 부모에게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못 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맹자는 순의 형편이 불가피했을 것이기에 이런 것은 너그러이 보자고 한다.

우물에서 탈출해 도망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순. 자신을 죽이려 했던 동생이 자신의 집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허걱’한 동생은 급하게 형이 죽은 줄만 알았다, 그동안 걱정했다는 말을 한다. 순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화해한다. 순은 정말 대인배다! 그랬기에 부모와 상 역시 바뀌게 된 것이겠지? 하지만 순이 부모나 형제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벌판에 나가 통곡을 했다는 대목이 떠오른다. 그렇게 한풀이를 했기 때문에 자신 안에 억울함이나 분노가 없었으리라.

여기서 ‘형사취수제’ 이야기가 나왔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님과 결혼하는 관습인데, 형수가 친정으로 돌아가버리면 지참금과 같은 재산분배 문제가 발생했기에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시선으로 이것을 이상하다고 볼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에는 후처가 낳은 여동생 ‘과수’ 이야기가 빠졌다. 여성 등장인물들은 『사기』에는 누락된 경우가 많고 대부분 민간전승으로만 이어졌다. 아마 남성 위주로 정리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과수는 순이 사냥을 해 오면 그것을 벽화로 남긴 최초의 인물이다. 즉, 최초의 아티스트임 셈! 이러한 이야기들은 위옌커의 『중국신화전설』에 남아있으니, 『사기』와 함께 읽어야 그때의 이야기들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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