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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마음세미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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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경미 작성일11-02-24 23:28 조회4,2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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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이라는 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이 말이


심오한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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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理는 우주의 이치


사事는 우리가 몸 담고 살고 있는 세상


그러니까 불교에서


이판理判은 깨달음의 세계를 가리키고


사판事判은 속계俗界를 가리킵니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와 사가 하나 되어 분별이 없으니”


 


법성게에서는 이 ‘이판’과 ‘사판’이 다르지 않다,


생사와 열반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라고 합니다.


이판과 사판, 명백하게 글자가 다르고 뜻도 다른데


둘이 아니고 하나라니


먼지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고


1은 2이기도 하고 10이기도 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법성게가 전하는 화엄의 이치는


알쏭달쏭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합니다.


 


 


* 2011년 2월 23일 마음 세미나 강의 시간에 들은 내용입니다.


 


불교 공부


추상적으로 개념적으로 접근하면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다


나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푸는 공부가 되어야


지금 나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가 뭔가


그걸 실마리로 잡아서 나아가라


 


탐욕보다 어리석음이 더 인생을 망친다


어리석음은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침몰시킨다


헤어나질 못한다


탐욕이나 분노의 인과는 금세 돌아와서


그건 오히려 극복하기가 쉽다


근데 어리석음에 물드는 거는 잘 보이지 않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침잠해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내 안에 얼마나 큰 이기심이 있는지 보지 못하게 된다


 


시간 안 지키는 거


이게 큰 어리석음이다


한 시대의 스승 치고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없다


정확하게 시간 지킨다


그 시간 안에 새로운 시공간을 총력을 다해 펼친다


약속 어기면서 공부 제대로 하는 사람 없다


어리석음 속에서 뭐가 나오는 거는 단 하나도 없다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말을 정확하게 하는 거


이게 공부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런데 내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힘


돈이나 칼, 이런 거에 휘둘려서


자기가 한 약속을 무시한다


이건, 자기 존중감이 없는 거야


늪에 빠진 거야


이게 업장이다


나를 침몰시키는 거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괴로운지


잠겨 있어서 잘 안 보인다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보라


괴로움 겪으면 질문이 자연, 툭, 튀어나온다


화두라는 게 그거다


온 힘을 다해 이 질문을 풀겠다라고 하는 것-


그런 절실한 의문에 내 존재의 무게 중심을 실었을 때


뭐가 보인다


세상의 이치, 살아가는 지혜 같은 거


그런데 보통 우리들의 삶은


뭔가 잡다한 것들에 묻혀 있어서


나태와 방만 때문에 쌓아 놓고 있는 것


거기 묻혀서


문제가 안 보인다


그게 진짜 문제


 


연못 물이 흐려질 때


명상해서


진흙 가라앉히는 게 깨달음 아냐


진흙을 뽑아내서


아예 물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내가 가진 거 다 버려야


내 존재의 근거라고 믿고 있었던 거


쥐고 있었던 거


그거 다 없어도 내가 흔들림이 없어야


 


죽음이 괴로운 이유


죽음은 나쁜 거라는 전제 때문이다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거


이거 우리 알음알이로 안다


그래도 죽음은 두렵다


몸에서 감정이 너무 멀어


이 간극 만큼이 번뇌


이걸 합치는 게 수행이고 정혜쌍수


감정의 회로 바꾸는 훈련을 해야


그거 안 하고


변하지 않겠다는


죽기 싫다는 고집 그 만큼이


그 사람이 죽을 때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연암이 그랬다 : 신선이 별 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 신선이다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가진 게 없어도


최후로 몸뚱아리에 대한 집착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고민해라


뭘 잘 모르겠다 하는 걸 구체적으로


내가 지금 뭐 때문에 괴로운가를 구체적으로


 


얼마 전 한 친구 어머니가 자살을 하셨다


여기에 대해서 정화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죽음도 나쁜 죽음은 없다, 죽음은 죽음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거


그것도 자살을 하신 거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엄마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자책감, 죄의식


아버지는 뭐했나 하는 원망 등등


어머니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거에 딸려나오는 이런 많은 감정과 생각들로


존재가 무거워진다


여기에는 실체가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그냥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여기에 많은 인과를 덧붙이는 데서 번뇌가 만들어진다


 


이런 방식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괴롭습니다, 라고 할 때


죽음은 죽음이다, 라고 대답하는 방식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니라


그 질문의 전제를 깨는 것이 불교다


 


하나의 죽음 안에도


엄청난 우연과 필연이 섞여 있다


자살도 엄마 혼자 한 것 같지만


수많은 인연이 겹쳐야


그런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 많은 원인들 중 어떤 것도 자성은 없다


이걸 다 풀어헤쳐야 엄마의 죽음을 바로 대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기준으로 모든 인과를 다시 봐야 한다


 


불교 : 전제를 바꾸는 행위를 통해 내 몸과 생각을 합치는 것


생각 자체가 없다 그러면


우주의 이치와 나 사이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우주가 창조된다


세상의 연기법과 내 몸 사이 괴리


여기에 지혜의 빛이 들어가


인연을 지어놓으면


이걸 기회로 내 몸의 회로 바꿀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질문은 구체적으로


이치는 우주적으로


우주적 인연법 바탕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면


내가 던지는 질문이 아무리 찌질해도 우주적이다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말


시공이 하나라는 것도


얼마나 큰 역설인가


우리의 통념, 분별지를 깨뜨리는 것인가


삼매에 들어가면 그동안 믿었던 거 다 깨지는 체험을 한다


 


수학에서 부분집안 안에 전체(멱집합)가 들어간다는 것도


얼마나 역설인가


시간과 공간이 하나라는 것도


공간이 중력에 의해 구부러질 때


그만큼이 시간


공간이 비틀리는 주름이 시간


역설인데 과학으로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공空 : 그냥 ‘비어 있다’가 아니다


색의 세계를 뛰어넘는 것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세계 속에


우리가 모르는 거가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자성이 없다는 거지


아무것도 없다가 아님


언어가 주는 이미지에 매여


공空을 무無라 생각하면 많은 걸 놓치게 된다


 


‘이판사판’이라는 말


‘막장까지 가본다’ ‘더이상 갈 데가 없을 때까지 간다’라는 뜻으로 흔히 쓰는 이 말에


심오한 이치가 있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 이와 사가 하나 되어 분별이 없으니”


법성게에서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같다고 한다


이판은 이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사판은 번뇌가 들끓는 속계俗界


생사와 열반이 다르지 않다는 뜻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와 자비가 핵심


지혜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고


자비는 그걸 실천하는 것이다


앎(인생과 우주의 이치 탐구)과 행(현장)이 하나라는 것


 


이판사판을 다 관통해야 깨달음이다


이판을 위해 출가를 해서


토굴수행, 천일기도 해서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사판에 와서


중생들의 저잣거리에서 실천되어야


토굴에서는 깨달았는데


저잣거리 와서는 바로 욕정에 휘둘리면


그건 깨달은 게 아냐


 


보살이 바로 그런 존재


깨달음을 얻고도 열반을 거부한다


이게 얼마나 큰 역설인가


깨달음을 얻고도 중생의 몸으로,


중생의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현장에서, 욕망이 들끓는 속에 살면서도


그 어떤 욕망에도 자유로운 존재


 


자혜와 자비가 같이 있어야


선불교, 무자비하다


모든 언어의 길 끊어놓는다


화두 깨치기 위해


소리지르고, 때리고, 손가락을 자르기도 한다


지혜라는 영역으로 갈 때까지


 


성철스님, 쓰레기통 약간 삐뚤어져 있으면 바로 목침을 던졌다


삼천배 하기 전에 안 만나줬다


깨달음이 딴 거 아니다


그렇게 사는 거다


무자비하고 괴팍하게 지혜를 향해 가는 거


자비라는 게 단순히 ‘잘해준다’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거다


승가라는 게 그런 공동체


불교는 봉사활동 안 해


알아서 자기를 구제하라!


불교의 자비는 무자비한 자비


스스로 깨쳐라!


깨쳤으면 반드시 사판事判으로 돌아온다


중생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와서


중생의 몸으로


중생 그대로 부처로 산다


 


불교의 이런 가르침을


지식인들이 어설프게 흉내내는 게 ‘이론과 실천’


하지만 실제로는


아는 거 따로, 사는 거 따로


말로는 ‘실천적 지식’이라고 하면서


일상에서는 탐진치 고대로 가지고 있다


진짜 안다면


그 앎의 틀 밖에서


제도 바깥에서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 일상의 현장성 위에서


그 앎은 실험되어야


 


불교 공부할 때


거두절미하는 게 없으면


자기 질문을 가지고 온몸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사량분별에 빠지게 된다


불교의 사유체계 얼마나 엄밀하고 방대하고 정치한지


용어와 개념 익히는 데만도 여러 생 걸린다


지식을 하나로 꿰는 자기의 문제의식 없으면


공부를 할수록 흐리멍텅해진다


 


모든 사람들의 고민 : 어떻게 살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기 삶의 현장을 지켜라!”


현장 밖에 뭐가 있다는 거는 우상


매순간, 자기 발 밑을 보라


매순간 깨어 있어라


내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


그 안에 우주 법계가 다 들어 있다


여기가 아닌 저기에


따로 뭐가 있는 게 아냐


 


사람들은 흔히 일상의 현장을 떠나


권력이나 부를 좇는다


그런데 이런 식의 ‘사회적 성공’이라는 거


이것은 우주의 인연법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이 간극만큼 대가를 꼭 치르게 되어 있다


그 인과를 감당하겠다고 하면


자기 욕망에 진실하면 된다


욕망은 하면서


그 욕망에 따른 인과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가 문제


 


욕망 중에서 가장 큰 거 : 갈애渴愛


흔히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게 내 생명의 정기를 얼마나 소모시키는지 알면


사랑에 다들 그렇게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하지 않고


“나는 너를 갈애해”라고 할 때의 차이


언어 사용만 봐도


불교는 인간의 감정에 참 쿠울cool 해


어쨌거나, 이 사랑에도 자성은 없다


사랑도 오행이 순환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의 사랑은


이중 어느 한 단계에서 멈춘다는 게 문제가 된다


 


처음 만나서 마음이 확 일어나는 단계 : 木


못 만나 안달하고, 만나면 죽고 못사는 단계 : 火


 


보통 이 木火 단계에서 사랑이 멈춘다


金水 단계로 넘어가서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사랑의 쓴맛, 이별의 고통도 겪으면서


마디를 넘어야 하는데


좋은 거에서 딱 멈춘다


힘든 거 싫다 하고


대상을 바꿔서


목화 단계를 반복한다


 


그러니 이게 갈애가 아니고 뭔가


자기 안에서 순환하는 우주의 에너지를 만나지 못하고


대상에서 뭘 자꾸 구한다는 거는


결핍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오행이 순환해야 한다는 우주의 이치에 안 맞다


이러니 사랑이 ‘스트레스’가 된다


 


그토록 사랑했던 애인이 이제 끔찍해진다


사랑이 지겨운 습관, 피곤한 일, 자기를 억압하는 제도가 된다


이때 느끼는 불만족


끝없는 허기와 갈증


 


그러니 갈애하지 마!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애인을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할려면 목화토금수가 순환하는 건강한 사랑을 하라


이것이 우주의 이치-이판理判이다


 


이판의 원리를 알았으면


사판으로 와서


조화롭게 살아라


조화롭다는 건 : 목화토금수의 차서次序를 지킨다는 것


차서를 지킨다는 건 :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제때 하는 것


즉 다시 말해서, 약속 잘 지키라는 말이다


세미나 시간에 제발 좀 지각 좀 하지 마!

댓글목록

박장금님의 댓글

박장금 작성일

<p>음 다시&nbsp;정리가 되는 것 같네염~^^ 감사~ 담주엔 유식 30송&nbsp;절반 읽어 오시면 됩니다. 이제 봄이 완전 만연한 듯합니다. 이판사판으로 지금의 한계를 넘을 때 뭔가 보이지 않을지...수욜에 뵈어염~^^</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