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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건트 유니버스가 내게 남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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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영 작성일11-12-11 01:13 조회3,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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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건트 유니버스를 읽으며 일견 매혹되기도 했지만 자꾸만 드는 ‘이런 걸 읽어서 지금 뭐하자는 거지’라는 회의를 멈추기 힘들었다. 낯선 과학의 세계가 불교와 언뜻 같은 맥락을 보일 때 라든가, 현대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편견과 과학이 어긋날 때, 과학이 인간 심리나 종교와 접점을 마주치는 것을 볼 때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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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마지막 세미나 시간에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은 과학과 일상이 아주 멀리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극도로 거대한 세상을 설명하는 우주론 상대성원리와 초미세한 세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이론은 합의를 못이끌어내서 수년간 논쟁을 거듭하고 현재도 서로를 배척하는 듯도 보이지만 초끈이론을 통해 새로운 합의점을 만나는 것도 같다. 양자는 다르지만 결국 대칭을 이루면서 쌍을 이루는 짝과 같은 것이라고.(맞나?)


 


한 여성분이 발제한 모태속의 기억들... 본인이나 여러 도반들은 박장대소했지만 심리학, 정신분석, 영성개발같은 곳에서는 긍정하고 그렇게하도록 격려한다. 아주 작은 상처에 대해서도 민감해지도록 훈련하고, 외부자가 보기에 얼핏 사기같지만 내부에서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상처에 관해 오만해지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자기가 만든 지옥에 빠지지 말라고.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라는 틀에 갖혀 오만하게 그 틀을 벗어나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예 배제해버리는 타인에 대한 폭력! 고선생님의 갈(喝)은 큰 울림이 있었다.


예전에 상담할 때 질문했던 것! 난 객관적 환경을 보았을 때 현재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나보다 조건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데, 난 왤케 불행할까. 그것이 참을 수 없이 억울했다. 왜 이모양으로 태어난 것인가라고 절망했는데, 절망도 일종의 교만이라고 한다.


그래그래 상담선생님과 고선생님의 견지는 그렇게 통한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강간에 대한 이야기. 예전 명상시간에 용서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성폭행으로 나아가면서 엄청난 토론을 불러왔다.(평소 명상시간은 토론장이 아니라 설법시간과 감상나누기 같은 분위기이다) 용서의 단계가 처음엔 당시 피해자였던 자신을 위로하기(여기까진 OK), 그 다음으로 가해자, 당시 환경, 현재까지 그 상처에 대해 놓지않는 자신을 용서하기, 뭐 그런 것이었는데 당시 난리가 났다. 명명백백한 가해자를 어찌 용서하느냐, 그 상처를 잊지 못하는 피해자를 어떻게 용서할 대상, 가해자로 보느냐 등등. 현재를 살아라, 늘상 깨어있어라 라는 점에서 상담선생님과 고선생님의 견지는 여기서도 그렇게 통했다.


 


내가 경험했던 상담, 명상과 마음세미나는 그렇게 일견 다른 듯 보이면서 쫘악 하고 서로 관통하는 데가 있다.


상담, 명상은 자신이 무시하고 가볍게 지나치길 원했던 자신의 감정, 연약함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게 나를 도왔고, 마음세미나는 그것을 너무 크게 보지말도록 나를 도왔다.(정신과는 별 도움이 안됬다. 현재 우리나라 주류 정신과는 약물복용을 전제로 한 치료라서 약을 먹고 토하거나 약을 거부한 사람에겐 별 희망을 주진 못하는 듯하다.)


 


상처난 맘을 살포시 보듬으면서 은근슬적 채찍질하는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과 상처난 맘에 대놓고 소금을 뿌리며 호통치며 일어나라고 갈(喝)하는 마음세미나... 둘다 아닌 듯 하면서 닮은 것이 꼭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론 같다. 이렇게 현대물리학을 읽는 의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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