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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위험한 책'은 왜 『에티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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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븐세븐 작성일14-12-18 14:42 조회3,019회 댓글3건

본문

   스피노자의 『에티카』 세미나를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을 넘었네요.

   세미나 초기에는 생소한 기하학적 구성에다 새로운 개념들 때문에 힘겨워했던 게 생생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정의/공리/정리/증명 등 구조에 익숙해지고 낯 익은 용어들도 많아지면서 조금은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발제 준비할 때는 여전히 머리를 싸매야 하지만 막힐 때마다 명쾌한 팁을 던져주는 시생샘과 혜경샘이 있어 든든하구요^^

     어제 동학샘이 제기했던 '왜 『에티카(윤리학)』인가?'라는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변이 되는 글이 있어 올립니다.  아직 2부 '정신의 본성 및 기원에 대하여' 를 공부하는 중이라 신(神)과 정신, 신체 등에 머물러 있지만 3부와 4부로 이어지면 우리 스스로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거라 생각됩니다.  시즌 1이 이제 두 번의 세미나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세미나에 꾸준하게 참석하는 '올림픽 정신'에 의미를 두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나름 자부심을 느낍니다. 시즌 1을 잘 마무리하고 시즌 2에도 지금처럼 가족같고 유익한 스누피들의 세미나가 되기를 기대할께요^^

http://blog.naver.com/goldenbreath/150186073288

<내용>

    윤리학은 스피노자에게 독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스피노자에게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어떻게 작동해서 어떻게 대상을 파악하고, 어떻게 오류를 범하고, 어떻게 감정을 갖거나 감정에 매이게 되고, 어떻게 욕망이라는 것이 생겨나는지, 나아가서 그 욕망을 어떻게 해야 하고, 욕망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이런 관심을 다루는 것이 '윤리학'인 거지요. 스피노자는 이것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책 제목이 『윤리학』인 것을 보면 이는 상당히 설득력을 갖습니다. 사실 스피노자의 문제설정에서는 근대철학의 꽃이었던 인식론이 따로 독립되어 있다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의 기본사상을 요약하자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어지며 이 양자는 서로 합일적(통일적)이라는 것입니다. 육체는 라틴어로 코르푸스(corpus), 영혼은 멘스(mens)라고 합니다. 알튀세르는 mens란 말은 영혼이나 정신으로 흔히 번역되지만 그런 식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corpus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힘fortitudo'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에티카』를 보면 육체와 정신을 모두 힘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 힘을 가장 중요한 원리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표현'이라는 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실체가 자신을 양태들로 '표현한다'고 할 때, '표현한다'는 말은 여기서 '활동한다' '산출한다'는 뜻입니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연구하는 기본원리는 '육체는 정신과 합일적이다'라는 명제입니다. 즉 육체와 정신의 결합체로서의 인간에게는 양자를 합일(통일)시키려는 코나투스(conatus)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상태를 '지속하려는 힘'이라고 합니다. 이 힘은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실체의 양태인 모든 것들, 즉 모든 개체들에 다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멈춰 있던 것을 계속 멈춘 상태에 두려고 하는 것, 운동하는 것을 계속 운동하려는 상태에 두려고 하는 것- '관성'이란 이런 힘의 대표적인 것이지요-을 일러 코나투스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육체와 영혼을 일치(합일)시키려는 힘이, 즉 코나투스가 있다고 합니다. 도식적인 예를 빌리면, 제가 넥타이를 매고 강단에 섰을 때나 운동화를 신고 공을 하나 들고 운동장에 서 있을 때의 정신적인 힘(mens)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시에 출근해 공장에서 기계에 맞춰 일을 하는 사람과 유치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의 멘탈리티 역시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신적인 힘은 육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그에 맞추어 변하며, 반대로 정신적 상태에 따라 육체가 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을 합일시키고 일치시키는 무의식적 힘이 바로 '코나투스'지요. 

 

이 코나투스가 정신과 관련되면 '의지'라고 물리고, 육체와 정신에 동시에 관련되면 '욕망'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예컨대 빠삐용처럼 갇힌 상태를 벗어나려는 강렬하고 끝없는 의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의지는 육체를 움직여냅니다. 계속 잡히고, 잡히는 횟수가 늘 때마다 고통과 신체구속은 더해 가는데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지요. '욕망'이라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성욕, 식욕이지요. 이는 일단 육체를 어떤 상태로 지속시키려는 욕구인데, 이러한 육체의 욕구에 따라서 정신적으로 성욕이나 식욕을 채우려는 힘이 발생하지요. 이처럼 육체와 정신을 합일시키려는 힘(코나투스)을 중심으로 스피노자는 윤리학의 문제를 연구합니다. (이러한 코나투스 개념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기

  氣'란 개념을 서양철학의 언어로 이해하는 데 가장 근사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라면 당연히 이성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할 이 '욕망'이 스피노자에겐 바로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게 됩니다. 육체와 정신을 합일시키려는 힘으로서 코나투스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처럼 그것을 억누르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억제하거나 통제하려는 것은 어쩌면 소용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프로이트라면 이 점에 관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얘기를 하고 있지요.

   한편 스피노자는 이 욕망이라는 것이 타자에게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욕망 역시 하나의 '양태'로서 타자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한양태'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합니다. 스피노자에게 유한하다는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한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양태들 각각은 모두 유한한 양태입니다. 어떤 개체가 취하는 모습-양태-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것에 의존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이것을 제 식으로 해석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른 인간과의 특정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이처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인간의 욕망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처럼 이성에 의해 욕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를 바꿈으로써, 즉 욕망을 만들어내는 조건을 바꿈으로써 욕망 자체를 전환시키는 게 훨씬 더 현실적으로 중요한 게 됩니다. 인간 간의 관계를 바꿈으로써 욕망 자체를 바꾸려고 해야지, 욕망을 억누르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윤리학적 계몽주의와는 전혀 상반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의미를 종합해 볼 때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란 일종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저는 정신-육체의 합일 속에서 파악된 새로운 무의식 개념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서, 제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생체무의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꿈에 대한 스피노자의 이야기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따르면 내가 꿈을 꾼다는 것은 내 의식과는 무관하게 내 육체와 정신의 상태  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안에서 작동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후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건 대개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무의식 개념에 의해 인간의 행동과 정서, 욕망과 정신 등을 사고하려 했던 결코 근대적이지 않은 사고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과 굴뚝 청소부/이진경>




    


 


   

댓글목록

동학님의 댓글

동학 작성일

'에티카' 본문의 수많은 정리와 증명사이에서 이해가 될듯 말듯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요.
인문학 강의를 통해 검증된 가르침을 쉽게 배우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서로 읽어가며 알아가는 '세미나'를 통해서 스스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함께 알아가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요!
우리 '스누피들'의 비타민같은 존재이신 세븐쌤의 개념정리를 읽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한라님의 댓글

한라 작성일

지속하려는 힘! 이게 코나투스였군요~~!  샘들이 얘기하실 때 코나? 뭐? 라면서 ㅋㅋ 못 알아 먹었었는데 드디어 알게 됐네요 ㅎㅎ

감이당님의 댓글

감이당 작성일

제일 열심히 책을 읽어오시는 동칠쌤 덕분에 세미나의 활기가 생겨요 ㅋㅋ 거기다 늘 이렇게 자료까지~~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