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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세미나]숫타니파타 3주차 후기
 글쓴이 : 호호미 | 작성일 : 18-03-05 19:28
조회 : 145  

안녕하세요. 오늘 발제를 맡았던 이호정입니다.
후기를 안 쓰는 세미나로 알고 있어서 매우 좋아했는데...
이번 시즌부터 쓰기로 했다는 신선한 소식을 알게 되어 새롭네요

불교세미나는 처음인데,
초기불경이라 그런지 일단 불경 자체가 글씨도 크고 거부감이 많지 않아서
가능하면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불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미나에서도 계속 나오는 얘기인 '구체적 행동에 대한 지침'인데요. 
예를 들어 '잡담하지마라', '쓸데없는 말을 자제해라'하는 말들을
샘들과 다같이 곱씹어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들로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붓다의 마음을
다함께 느껴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걸 느끼는 와중에
우리가 얼마나 그 말들과 다르게 살고 있는지를 껄껄대며 얘기해보는 게
또 이 불새(불교세미나)의 맛이지요. 
매주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불교와 웃음이라니...부처님이 보시면...

불경은 저에게 '관찰의 눈'을 갖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세미나는 자칫 심오해질 수 있는 저의 관찰을
자꾸 가볍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호호.. 
오늘 썼던 발제를 올리며 이만 다음주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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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덟 게송의 초반부에는 순서대로 감각적 쾌락의 욕망, 동굴, 사악한 생각, 청정, 최상, 늙음에 대한 경이 나온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집착하게 되는 것들을 나타낸다. 도대체 그런 집착은 왜 생겨나게 되는 걸까? 그것은 여덟 게송의 첫 경구에 잘 드러나 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원할 때에 그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이루어지면, 갖고자 하는 것을 얻어서 그 사람은 참으로 기뻐합니다.”

(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4품 여덟 게송-1.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경)

 

참으로 기뻐함’, 여기에는 언제든 인간을 속박 당하게 할 수 있는 씨앗이 자리하고 있다. “욕망을 조건으로 존재의 환희에 묶인 자들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어떤 기쁨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욕망에 끌리고 좋아하는 것에 붙들린다면, 어떻게 자기의 견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 완전한 것이라고 완결지어 아는 것처럼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 4품 여덟 게송-3.사악한 생각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

 

붓다는 이 경구에서 사악한 생각을 두고 좋아하는 것에 붙들려 스스로 완결지은 사견이라 말하고 있다. 단지 좋아하는 것에 붙들릴 뿐인데 그것이 곧 사악하기까지 하다니? 그게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일까? 붓다가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최상에 대한 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최상이라는 견해 속에 지내며, 그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로 여깁니다.”

규범과 금계나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감지한 것 속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있다고 보면서, 그는 그 때에 그것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밖의 것은 모두 저열한 것으로 봅니다.”

(같은 책, 4품 여덟 게송-5.최상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

그리고 이제 이 부분에 이르러 나는, 나에게 있어 배움이란 것이 이렇게 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부하는 백수가 된 나는 공동체 생활과 더불어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렇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 즐거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이 공부에 대한 의혹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때의 공부란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람과 세상을 만나고 이해하고 살아가는 일을 말한다. ‘나의 공부가 위험한 일이 되어가고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은 나에게 종종 찾아오는 단골 화두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계속 찔려 마냥 눈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 물음에 이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터였다. 대체 나는 왜 계속해서 공부에 대한 의혹을 기어이 생산해내고야 마는 걸까?

여덟 게송의 경은 나와 그 물음을 다시 만나게 했다. 그리고 최상에 대한 경에 이르러서 나는 비로소 그게 공부에 대한 탐욕적인 집착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증세(?)를 보아하니 집착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 공동체에서 나가게 된 사람들에 대해 늘 관심이 많았다. 왜 나가는지도 궁금했고, 나가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려는 건지도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 사람의 삶을 내 기준으로 폄하하면서 끝이 났다. 그 사람의 삶에 안쓰러운 시선을 던지고는, 돌아와서 나의 공부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공부하며 사는 삶을 최상이라 여기며, 그 밖의 다른 것은 저열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배움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 데 쓰이기보다, 어떤 틀에 얽매이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얽매임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위험을 느꼈고, 의혹에 휩싸였다. 내가 만난 글에 묶이고, 새롭게 갖게 된 생각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최상을 만들어내고 또 만들고……. “이러한 집착 안에서 독단을 취하기도 하고 또한 버리기도하는 일을 반복하는 그것을 배움이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집착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여덟 게송을 여는 첫 경구는 그러한 집착의 씨앗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왜 인간을 집착에 이르게 하는가에 대한 구절인데, 나는 거기에서 붓다가 참으로 기뻐함을 말하고 있는 것에 걸려 넘어졌다. ‘배움을 대하는 나의 탐욕적인 태도의 원인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배움을 원하고 그게 이루어져서 기뻐함, 어쩌면 그 기뻐함의 지나침이 나를 집착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는 여기서 하는 공부를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좋아서 엉엉 울었다. 그 후로도,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글을 읽고 그걸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자주 감격했다. 이 공간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감사함을 느낀 나머지,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나와 같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행보까지 다다르게 된다. 오 마이 갓! 불경을 비추어보니 나의 이 과격함과 지나침이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들이 나를 집착의 우물에 빠트리고, 내 우물 속만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제 나는 조금 더 담백하고 담담하게 배우고 싶다. 그것을 대상화하여 집착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진짜 배우고 싶다. 끊임없는 의혹을 떨쳐버리고,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게 공부하면서 사는 삶을 꾸리고 싶다.

 

그는 보거나 듣거나 감지한 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일체의 것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렇게 보아서 열린 마음으로 행동하는데, 어찌 이 세상에서 그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같은 책, 4품 여덟 게송-4.청정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

 

나를 자유롭게 하는 공부란 무엇일까? 청정에 대한 경에서 나오는 위의 경구가 눈에 들어온다. ‘보거나 듣거나 감지한 그 어떠한 것과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 나의 경우에 빗대어보자면,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을 떠나 그것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는 걸 뜻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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