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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헤름영어주역 월요반[시즌2]3주차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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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강 작성일23-08-16 16:39 조회1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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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風天小畜 / Hsiao Ch'u / The Taming Power of the Small



“작은 것의 길들이는 힘”

바삭바삭 건조한 공기와 살갗에 닿으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태양 빛, 우르르 쾅쾅 하늘을 때리는 천둥과 번개를 일주일에 서너 번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변화무쌍한 텍사스의 날씨는 '도대체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혼란까지는 아니지만, 정체성 인식 정도는 하게 만들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텍사스에 있으면서 낯선 자연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처음에는 서양인과 동양인이 외형적으로 무엇이 다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는 뻔한 말을 체감하면서 어느 날은 육체적인 차이를 관찰하다가, 또 어느 날은 미국 넷플릭스와 한국 넷플릭스의 프로그램 차이에 집중하기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로컬 맥주의 차이의 향연에 정신 못 차리기도 하면서 이방인의 호기심을 채워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이 식어갈 즈음에 어느 날 문득 '여기서 사귄 미국 친구가 나에게 동양에 관해서 물어보면 나는 어떻게 대답하지?'라는 쓸데없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동양에 관해 물어본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가 도대체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런! 정말 나는 동양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나의 무지를 제대로 인식한 순간이 온 것이었다. 무지를 인식하니 그 순간 뭐라도 배워야지 이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감이당 영어 주역'을 주저 없이 덜렁 신청하게 되었다. '점을 치는 오래된 책' 정도로만 알고 있던 주역을 미국 텍사스라는 공간에서 영어로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료해지기 시작한 일상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주역의 기본 개념이 없는 나로서는 <I Ching>을 접하면서 처음에는 두 가지 정도의 재미있는 태도를 발견했다. 한자 원문을 유튜브로 미리 공부하고 영어로 읽을 때는 한자와 영어의 표현 차이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자 원문을 공부하지 못한 채로 <I Ching>을 바로 읽으면 이 괘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마치 전자는 책을 공부하면서 한자와 영어와 내가 존재한다면, 후자는 영어와 나만이 존재하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더 집중하는 태도를 발견하면서 각각의 괘마다 다양한 배움의 경험이 가능할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물론, 이건 나의 공부에 관한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만, <I Ching>이 한자로 된 주역을 빌헬름이 독일어로 번역하고, 베인즈가 다시 영어로 번역한 책이라는 점은 이미 텍스트에 관한 그들만의 다양한 해석이 들어있기에 가능한 재미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후기를 써야 하는 '풍천소축괘'을 공부할 때는 한자 원문에 관한 공부 없이 바로 영어로 된 괘를 만났다. 좀 더 이 괘의 내용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이 태도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작은 것의 길들이는 힘(The Taming Power of the Small)'을 의미하는 이 괘에서는 유일하게 1개의 '음'이 나머지 5개의 '양'을 통제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나의 흥미를 끌었다. 강한 5개의 양의 기운을 약하고 부드러운 1개의 음의 기운이 다룬다고? 그리고 바람과 구름이라는 자연의 이미지에 빗대어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때는 약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짙고 두꺼운 구름을 가로지르며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뭔가 이 괘를 통해 나에게 부족한 어떤 힘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도 생기게 하였다. 

그리고 바람과 구름은 '중천건괘'에서 '구름은 하늘의 숨으로 용을 따르고, 바람은 땅의 숨으로 호랑이를 따른다(Clouds (the breath of heaven) follow the dragon, wind (the breath of earth) follows the tiger.)' 는 구절에서 이미 언급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구절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중천건괘'를 공부할 당시는 텍사스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고, 그때는 틈나면 뒷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뒷마당에서 매일 바라본 하늘 속 구름의 변화와 정방형의 작은 정원에 부는 바람의 변화를 이 구절로 인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구름과 바람이 하늘과 땅의 숨결'이라고 상상하면서 매일 뒷마당에서 천지의 숨결을 느끼는 기분은 '그리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저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하게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새롭게 세상을 의식하는 그 기분은 지금 생각해 봐도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랬던 바람과 구름이 이 괘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개인적으로 재미난 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풍천소축괘'의 각각의 효사 중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해 보겠다. 


초구효에서는, 

Therefore he returns to the way suited to his situation, where he is free to advance or to retreat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길로 되돌아가라, 그러면 그곳에서 자유롭게 나아가거나 물러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 여겼다. 진퇴를 결정할 수 없을 때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결정하면 된다는 의미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길'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기가 떠오르면서 지금의 나의 고민과 연결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이제 어디로 가지? 무엇을 하지?' 그런 나에게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나에게 맞는 길로 다시 돌아가서 자유롭게 생각해 보라는 말로 다가왔다.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 길 위에서는 내가 놓쳐버린 중요한 순간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일을 시작했던, 2016년 어느 저녁 안산 중앙역 카페가 바로 '나의 상황에 맞는 길'이었다. 그때 느꼈던 설렘, 불안, 기대, 걱정이 지금 내가 하려는 선택의 길 위에도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구이효에서는,

In such a case, if the effort to push forward is not in harmony with the time, a reasonable and resolute man will not expose himself to a personal rebuff, but will retreat with others of like mind. (만약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면, 합리적이고 단호한 사람은 개인적인 거절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물러날 것이다.)

이 구절은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면 나아가기보다는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구절을 좀 더 파고들어 가 보면 물러나기를 결정하기까지는 먼저 검토해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이 과연 적절한 타이밍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누구인지를 찾고, 만약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면 무리하게 설익은 생각을 노출하면서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나아가기를 감행하기보다는 잠시 물러나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과 고충을 나누고 생각을 발전시키면서 상황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 이것은 도망가는 것과는 다른 현명한 물러나기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단순히 진퇴의 결정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기발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물러날지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렇게 이 구절을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은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고 주변에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공감의 시간을 좀 더 갖기 위해서는 물러나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방향으로 나의 고민이 정리되었다. 


구삼효에서는, 

Here an attempt is made to press forward forcibly, in the consciousness that the obstructing power is slight. But since, under the circumstances, power actually lies with the weak, this sudden offensive is doomed to failure. External conditions hinder the advance, just as loss of the wheel spokes stops the progress of a wagon. (여기서는 방해하는 힘이 경미하다는 의식하에 무리하게 앞으로 밀어붙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힘은 실제로 음(약자)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갑작스러운 공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치 바큇살이 빠져 마차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듯이, 외부적인 조건이 전진을 방해한다.) 

이는 구이효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무리하게 나아가는 것을 강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마차의 바큇살이 빠져버리면 마차가 멈춰버리는 것에 빗대어 무조건 나아가려는 '양의 폭주'를 경계하였다. 


비로소 이 괘를 관장하는 힘의 원천이자 유일한 음의 효인 육사효를 살펴보면, 

Nonetheless, the power of disinterested truth is greater than all these obstacles. It carries such weight that the end is achieved, and all danger of bloodshed and all fear disappear.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장애물보다 사심 없는 진심의 힘은 더욱 크다. 그 사심 없는 진심은 일의 마무리를 이룰 때까지 책임을 지며, 이때 모든 유혈사태의 위험과 공포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 육사효에서 이야기하는 '사심 없는 진심'은 과연 무엇일까? 해석보다는 이것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 세미나 때 질문을 하기도 했다. 공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 개인적 욕심에 치우치지 않는 것, 공명정대한 것 등 보편적인 대답이 있었지만, 육사효는 음효라는 점에 주목하여 '사심 없는 진심'을 한 번 더 고민해 보았다. '중지곤괘'에서 나온 음의 속성인 모든 것을 수용하고 키우는 점과 이후에 나오는 구오효에서 음은 '헌신(devotion)'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은 '신뢰성(trustworthiness)'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언급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여기서 '사심 없는 진심'은 자기 일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나아가려는 양의 기운의 형태보다는 뒤에서 일의 마무리를 위해 끝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하는 음의 '헌신'의 형태와 좀 더 닮아있는 것 같다. 앞장서서 끌고 가는 양의 힘 못지않게 상황에 순응하고 마무리하는 음의 모습, 그림자 같은 그런 모습을 나는 그동안 그다지 주목해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오직 강하게 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이러한 육사효의 '사심 없는 진심'에 비추어 선택한 적이 있는지 자문해 보면 나에게 이러한 '헌신'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힘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힘에 주목한다면 다른 선택이 나오지 않을까? 무조건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히 마무리에 힘을 쏟고 완수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이고 적절한 타이밍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과연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마무리에 관해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구오효에서는,

This relation of mutual reinforcement leads to a true wealth that is all the more apparent because it is not selfishly hoarded but is shared with friends. Pleasure shared is pleasure doubled. (이러한 상호 강화의 관계(음과 양의 상호 보완 관계)는 이기적으로 혼자 갖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나누기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명백한 진정한 부(가치)로 이어진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

친구와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될 뿐만 아니라 진정한 가치가 된다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말이며, 무엇보다 공유를 통해 부의 진정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지점은 곱씹어 볼 만한 구절이라 여겨진다. 

 

상구효에서는, 

The dark power in the moon is strongest when the moon is almost full. When it is full and directly opposite the sun, its waning is inevitable. Under such circumstances one must be content with what has been achieved. To advance any further, before the appropriate time has come, would lead to misfortune. (달의 어두운 힘은 달이 거의 가득 찼을 때 가장 강하다. 달이 가득 차고 해와 반대편에 일직선으로 있을 때가 되면, 달이 이지러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은 그동안 성취한 것에 만족해야 한다. 만약 적절한 시기가 오기 전에 더 나아간다면, 불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득 차오른 보름달을 보면 이내 곧 기울어지고 이지러질 것이 떠오르며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나의 보름달을 완성하고 잠시 물러나서 다시 차오르는 새로운 달을 기다려 보는 것, 이 시기의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잘 음미해 보라고 이 '풍천소축괘'는 말하는 것 같다. 

주역을 아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지혜의 상징들이 가득한 검은 상자 하나가 생긴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검은 상자에 손을 넣어 우연히 잡은 괘는 현재 나의 고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지혜의 신탁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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