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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영어주역 시즌5-2주차 뇌풍항괘 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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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음일양 작성일24-04-03 07:43 조회67회 댓글0건

본문

주역의 하경은 함과 항으로 시작합니다. 존재하는 만물의 근원인 하늘과 땅으로 상경이 시작한 것에 비추어 생각하면, 모든 삶의 관계의 시작은 느끼고 관계를 맺어 항상성을 가진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역에서 만나는 항상성이 무엇인지, 그 난이도는 어떠한지, 후기 시작하겠습니다.

 

32. 雷風恒뇌풍항 / Hêng / Duration 지속

The strong trigram Chên is above, the weak trigram Sun below. This hexagram is the inverse of the preceding one. In the latter we have influence, here we have union as an enduring condition. The two images are thunder and wind, which are likewise constantly paired phenomena. The lower trigram indicates gentleness within; the upper, movement without.

In the sphere of social relationships, the hexagram represents the institution of marriage as the enduring union of the sexes. During courtship the young man subordinates himself to the girl, but in marriage, which is represented by the coming together of the eldest son and the eldest daughter, the husband is the directing and moving force outside, while the wife, inside, is gentle and submissive.

양괘인 진은 위에 있고, 음괘인 손은 아래에 있다. 이 괘는 앞의 괘(택산함)를 뒤집어놓은 것이다. 앞의 택산함에 감응을 했고 여기는 결합이 있다. 두 개의 이미지는 우레와 바람이다. 이것은 한 쌍의 현상으로입니다. 아래의 괘()은 내면의 온화함을 가르키고, 위의 괘()은 바깥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사회적 관계의 영역에서 이 괘는 결혼의 제도를 나타내는데, 남녀의 지속적인 결합으로써의 결합을 나타낸다. 구애동안은 젊은 남자가 여자보다 아래에 자신을 두지만, 결혼은 장남과 장녀가 함께 하는 것으로 대표 된다. 남편은 지휘하고 밖에 움직이고, 반면 아내는 안에서 온순하고 순종한다.

이번 시즌에 새로이 참여하신 도반님들이 계셔서 복희씨는 세심하게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감응하는 것은 막내 아들과 막내 딸의 자리에 있지만, 결혼은 장남과 장녀의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 것. 이는 결혼 후에는 감정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성장을 포함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천 년 전에도 결혼은 지난한 일이었음을 알고 묘한 연대감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번개와 바람! 이 둘의 결합이 결혼이라니 어찌 평온하고 아름다울 수만 있겠습니까?일상 속에서 우르릉 쾅쾅거리고 태풍 휘몰아치는 일들이 다뱐사죠. 이제 그런 마음이 들면, 번개와 바람이 만나는 시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번개가 지속되지 않듯 잠깐 기다림을 가져야겠네요

 

THE JUDGMENT 괘사

DURATION. Success. No blame. , , 無咎 항상성, 형통하고 허물이 없다.
Perseverance furthers. 利貞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It furthers one to have somewhere to go. 利有攸往 걸곳을 두는 것이 이롭다.

Duration is a state whose movement is not worn down by hindrances. It is not a state of rest, for mere standstill is regression. Duration is rather the self-contained and therefore self-renewing movement of an organized, firmly integrated whole, taking place in accordance with immutable laws and beginning anew at every ending. The end is reached by an inward movement, by inhalation, systole, contraction, and this movement turns into a new beginning, in which the movement is directed outward, in exhalation, diastole, expansion.

Heavenly bodies exemplify duration. They move in their fixed orbits, and because of this their light-giving power endures. The seasons of the year follow a fixed law of change and transformation, hence can produce effects that endure.

So likewise the dedicated man embodies an enduring meaning in his way of life, and thereby the world is formed. In that which gives things their duration, we can come to understand the nature of all beings in heaven and on earth.

항상성은 그 움직임이 방해에 의해 없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그것은 휴식의 상태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지는 후퇴이기 때문이다. 항상성은 오히려 자립적이고 확고하고 자생적인 움직임이고, 불변의 법칙에 따라 발생하는 움직임. 모든 끝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움직임이다. 끝 또는 목표는 내부를 향하는 수축에 의해 도달되고, 이 움직은 새로운 시작으로 변화는데 이 새로운 시작은 움직임이 바깥으로 향하고 내쉬기를 합니다. 천체는 항상성을 예시로 보여준다. 천채는 그들의 고정된 고도에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천채에 빛을 주는 힘은 계속된다. 일년의 사계절은 변화와 변형의 고정된 법직을 따른다. 따라서 지속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헌신적인 인간은 지속적인 의미를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구현하고 그것에 의해 세상이 형성된다. 사물에게 그것의 항상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우리는 천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게 될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의 In that which gives things their duration 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계절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자연, 천채의 운동 원리와 같이 가만히 두면 바람이 빠지는 공의 속성으로 이해하면 좀 쉽게 다가 올 듯합니다. 주란샘은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주는 항상성의 의미인데, 우리의 편견은 항이라는 것을 멈춤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꽃샘 추위에도 피어나는 꽃, 등 각자가 느끼는 다양한 항상성이 나왔습니다.

 

THE IMAGE 대상전

Thunder and wind: the image of DURATION. 우레와 바람, 항상성의 이미지

Thus the superior man stands firm 군자는 굳건히 서있고
And does not change his direction. 방향을 잡으먼 변화하지 않는다.

Thunder rolls, and the wind blows; both are examples of extreme mobility and so are seemingly the very opposite of duration, but the laws governing their appearance and subsidence, their coming and going, endure. In the same way the independence of the superior man is not based on rigidity and immobility of character. He always keeps abreast of the time and changes with it. What endures is the unswerving directive, the inner law of his being, which determines all his actions.

우레는 파동치고, 바람은 분다. 이 두가지는 극단적인 변덕스러움의 예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는 항상성과 반대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은 그들의 출현과 가라앉음, 오고 감과 지속을 결정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군자의 자주성은 그의 인품에 완고하고 고정됨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시세를 잘 따라가고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 지속한다는 것은 확고한 방향성이고. 그 존재의 내적 법칙이고, 이러한 것이 그의 행동에 지속성을 유지하도록 결정한다.

수업 중 대상전에 대해 별다른 논의는 없었으나, 저는 궁금했습니다. 항상성을 말하는데 그 이미지가 왜 번개와 바람인지가. 빌헬름의 생각처럼 이 두 가지는 극단적인 변덕스러움의 대표 선수 같거든요. 힌트는 확고한 방향성(unswerving directive)에 있는 것 같습니다. 때를 따르고 시대와 변화하더라도 그 자신만의 내적 법칙인 확고한 방향성이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인가 봅니다. 대상전의 한자 不易方군자는 방향을 바꾸지 아니한다라는 뜻만 있을 듯 한데, 빌헬름의 해석 유연한 흔들림속에 방향을 잃지 않는 항상성은 어쩐지 색다르게 멋진것 같습니다.~~

 

THE LINES 효사

Six at the beginning means: 초육효의 의미는

Seeking duration too hastily brings misfortune persistently.

너무 성급하게 지속을 추구하는 것은 끊임없이 불운을 가져온다.

Nothing that would further.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

Whatever endures can be created only gradually by long-continued work and careful reflection. In the same sense Lao-tse says: "If we wish to compress something, we must first let it fully expand." He who demands too much at once is acting precipitately, and because he attempts too much, he ends by succeeding in nothing.(손호진)

인내하는 것은 오직 점진적인 작업과 세심한 성찰에 의해서만 무엇인던 창조될수 있다. 같은 의미로 노자는 말했다. 어떤 것을 압축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것을 확장될수 있도록 펴주어야한다고. 한 번에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성급하게 행동한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호진샘은 여기에 언급된 노자의 말씀, "If we wish to compress something, we must first let it fully expand.", 도덕경 36將欲歙之, 必固張之(장욕흡지, 필고장지 장차)가 왜 여기에 언급되었는지를 살펴보다가. 微明(미명)<세심하게 살핌>으로 이해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호진샘의 일상으로 이 문구를 가져가 보면 시작할 때 준비를 너무 철저히 해서 지쳐서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초효를 보면서 시작함의 경계의 말로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명수샘도 노자의 문구에 감명을 받았는데, 일상의 문제에서 내가 솔직히 펼쳐서 다시 살펴보지 않으면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등을 포함하여 다양하게 일상생활로 설명해 주셨고, 정은샘은 비약과 생략의 두 단어를 이해 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혼자 읽을 때 생각조차 하지 못한 부분인데 두 분 덕분에 저의 상상과 사고도 잠시 확장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Nine in the second place means: 구이효는 의미한다.

Remorse disappears. 뉘우침이 사라진다.

The situation is abnormal. A man's force of character is greater than the available material power. Thus he might be afraid of allowing himself to attempt something beyond his strength. However, since it is the time of DURATION, it is possible for him to control his inner strength and so to avoid excess. Cause for remorse then disappears.(양해성)

상황이 비정상적이다. 사람의 성정의 힘은 가용한 실질적인 권력보다 크다. 따라서 그는 어떤 것을 시도하는 것에 있어 자신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항상성의 때이기에 자신의 내적인 힘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지나침을 멀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후회할 일이 사라진다.

현재 미국 거주 중이신 해성샘이 발제를 맡으셨습니다. 구이효는 不正이지만 의 자리이기에 항상성을 지킬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후회할 일은 사라진다고 합니다. 저는 he might be afraid of allowing himself to attempt something beyond his strength.의 상황이 쉽게 그려지지 않아서 질문 하나로 남겨두었습니다.

 

Nine in the third place means: 구삼효는 의미한다.

He who does not give duration to his character 인품애 향상성을 주지 않으면
Meets with disgrace.불명예를 만나고
Persistent humiliation. 고수하면 부끄러울 것이다.

If a man remains at the mercy of moods of hope or fear aroused by the outer world, he loses his inner consistency of character. Such inconsistency invariably leads to distressing experiences. These humiliations often come from an unforeseen quarter. Such experiences are not merely effects produced by the external world, but logical consequences evoked by his own nature.

만약 바깥 세상에 의해 희망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감사와 일어나는 두려움이 남아있다면, 그는 내부의 성정의 항구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한 비항구적인 변함없이 비참한 경험으로 이끈다. 이러한 굴욕은 종종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온다.. 이러한 경험은 단지 외부 세계에 의해 효과가 만들어지지 결과일 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의해 일깨워진 결과이다.

초육효에서 항상성은 방향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내적인 것이나 외적인 것의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온다고 강조하는 듯 합니다.

 

Nine in the fourth place means: 구사효는 의미한다.

No game in the field. 들판에 사냥감이 없다.

If we are in pursuit of game and want to get a shot at a quarry, we must set about it in the right way. A man who persists in stalking game in a place where there is none may wait forever without finding any. Persistence in search is not enough. What is not sought in the right way is not found.

만약에 우리가 사냥감을 쫓고 사냥감을 얻기를 원한다면, 올바른 방법으로 저격해야 합니다. 사냥감을 살며시 다가가 잡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어떤 것도 찾지 못한채로 영원히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찾는 것에 대한 고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찾지 않는 것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넓은 들판은 사냥감을 기다리고 잡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닙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사냥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왕부지는 구사효에서 수주대토(守株待兎)로 풀이한다고 호진샘은 부언하셨습니다. 예습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짝짝짝!!!

 

Six in the fifth place means:육오효는 의미한다.

Giving duration to one's character through perseverance.

올바름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에 지속성을 주는 것은

This is good fortune for a woman, misfortune for a man.

여성은 길하고 남성은 흉하다.

A woman should follow a man her whole life long, but a man should at all times hold to what is his duty at the given moment. Should he persistently seek to conform to the woman, it would be a mistake for him. Accordingly it is altogether right for a woman to hold conservatively to tradition, but a man must always be flexible and adaptable and allow himself to be guided solely by what his duty requires of him at the moment.

여성은 한 평생을 남자를 따라야한다. 그러나 남자는 항상 주어진 순간마다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 그것을 지켜야만 합니다. 그가 고집스럽게 여성에게 순응하려고 하면, 그는 실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 전통을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남성은 탄력적이고 적응적이어야 합니다. 그 자신 바로 지금 이 순간 스스로 단독으로 자신을 인도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본분이 다름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요즘 사회에서는 당연히 반발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의미로 들어가면 사람은 저마다 남성성, 여성성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그 자신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주역다운 해석이라고 상헌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약간의 기분 나쁜 오해가 폭넓은 이해로 관점이 변경되는 순간이었습니다.

 

Six at the top means: 상육효는 의미한다.

Restlessness as an enduring condition brings misfortune.

지속적인 조건에서 불안, 초초는 흉함을 가져온다.

There are people who live in a state of perpetual hurry without ever attaininginner composure. Restlessness not only prevents all thoroughness but actuallybecomes a danger if it is dominant in places of authority.

내면의 평정없이 끊임없이 서두르는 상태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안,초조는 모는 사고를 방해할 뿐 아니라 권위의 장에서 그것이 지배적이 되면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권위의 장‘in places of authority’있이 왜 나왔을까에 대해 질문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불안, 초조가 있을 수 있지만, 집안의 어른이 불안하면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라고 상헌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에 수민샘은 요즈음 상황에서 어른들의 불안이 아이들과 생황을 모두 위험하게 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떠올라 감명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뇌풍항괘 수업은 마무리합니다. 저는 여느 괘보다 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머무름이 아니라, 천채가 도는 것처럼 방향성을 가지고 일정하게 도는 것, 딱 괘사까지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대상전에서 번개와 바람의 이미지부터 각 효사들이 계속 의문이 생깁니다. 다른 괘들도 아하! 이런 건 별로 없었지만, 억지로 꿰맞추면 그런거구나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항상성은 그마음조차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 효를 완전 정복에 나서지 않으려 합니다. 벌판에 사냥감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야말로 올바른 방법과 때가 아님을 느낍니다. 다만 주역을 통해 삶을 폭넓게 해석하고 싶다는 이 방향성을 잃지 말자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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