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잠깐인 이 시간이 나에게는 완전 전쟁이다. 두 개의 신체가 부딪쳐서 무언가를 같이한다는 것. 그건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S는 손발을 못 쓰니 쉴새없이 말을 한다.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이런 말이 나중에는 편하게 말한다는 게 이거 해, 저거 해…… 이렇게 된다. 암만 돈 받고 일하는 거라지만 나는 계속 듣고만 있어야 하고 누군가 끊임없이 나에게 명령과 요구를 하는 상황이 처음에 몹시 힘들었다. 게다가 S는 예의, 체면 이런 거 전혀 신경 안 쓰고 거두절미 본론만 공격적으로 말한다. 내가 흥분하면 손짓을 막 하면서 말하듯이, 손을 못 쓰는 S는 발길질을 막 하면서 말을 한다. 손가락질을 당해도 기분 나쁜데 누군가 나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말하는 걸 계속 들어야 하는 상황이란 게…… 아, S는 손 대신 발을 쓰니까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생각 이전에 불쾌한 감정이 먼저 확 올라와 버리기 때문에 이걸 억지로 참자니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 S랑 같이 활동하면서 내가 얼마나 남의 말 듣기 싫어하는 신체인가를 알았다. S의 말에 따라 내가 S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것. 이건 내가 다른 신체가 되는 변화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이에서 몸 섞으며 산 적이 없다. 언제나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예의와 격식 뒤에서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S는 벌거숭이 알몸으로 내 삶에 뛰어들었다. S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S가 처음 보는 내 앞에서 “오줌!” 하면서, 대뜸 엉덩이를 훌렁 까서 내밀었을 때, 나는 눈앞의 어떤 휘장 같은 것이 확 걷히는 느낌이었다.”
타인의 신체, 다른 삶과의 만남
― 초보 활보가 몸으로 만난 새로운 세상 이야기 도처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집이건 직장이건, 길거리건 카페건.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SNS며 하다못해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조차 쉼 없이 만남은 이루어진다. 대개 “언제나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예의와 격식 뒤에서”(51쪽)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만남도 있다. 초면이고 뭐고 “‘오줌!’ 하면서, 대뜸 엉덩이를 훌렁 까서”(51쪽) 내미는, 눈뜨고 처음 나누는 인사가 “안녕”이 아닌 “오줌!”인 만남. 이 책 『활보 활보 : 초보 장애인활동보조의 좌충우돌 분투기』(이하 『활보 활보』)는 이런 야생적인(?)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이 이렇게밖에 만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은이인 정경미는 ‘활보’이고, 지은이의 활보를 받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친구들(S, J, H)은 모두 혼자서는 몸 가누기조차 힘든 1급 뇌병변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활보란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줄임말(활보제도 전반에 대해서는 204쪽 ‘용어해설’ 참조)로, 말 그대로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조해 주는 직업이다. 먹거나 씻는 것에서부터 요리, 청소, 양육, 쇼핑 등의 가사활동과 등하교, 출퇴근 등을 비롯한 외출에 심지어는 금전 관리까지도 보조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장애인들은 활동보조서비스의 ‘이용자’가, 활보는 ‘제공자’가 된다)와 이용자 사이라면 이들의 만남이라고 뭐 별다를 게 있겠는가. 하지만 이들의 만남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활보 일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신체가 한 몸이 되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활동”(18쪽)이기 때문이다(이 책이 바로 그 “새로운 활동”의 가장 큰 산물이다).
제가 몸이 굉장히 건강한데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으니까 다 쓰지 않은 힘이 자기를 공격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우울하고 침울하고 그랬었는데, 일을 하면서 몸이 굉장히 건강해졌어요. 또, 이 일 자체가 다른 사람하고 일심동체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다른 사람하고, 다른 신체하고 호흡을 맞추는 게 안 되면 같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활보 일 하면서 다른 사람하고 호흡을 맞춰서 움직이는 몸으로, 몸이 좀 바뀐 것 같아요. 몸이 유연해진 것 같아요.(에필로그_저자 정경미 인터뷰 中 201~201쪽)
지은이는 몸은 멀쩡하지만,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는 마음의 장애를 가진 화병쟁이이다. 뜻을 풀면 간(肝)의 기운이 뭉쳐 있다는 뜻인데, 한의학에서 간은 ‘소통’의 장부다. 한마디로 간기울결이란 소통을 거부한 몸이 울화 덩어리로 변해 버린 것. 그러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이었던 지은이였건만 “책을 읽을 수가 없고,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문자를 보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 다 귀찮다! 남의 말 다 듣기 싫다! 하면서 하루 종일 깜깜한 동굴 같은 데 웅크리고 있다가, 누가 건드리면 격렬한...
타인의 신체, 다른 삶과의 만남
― 초보 활보가 몸으로 만난 새로운 세상 이야기
도처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 집이건 직장이건, 길거리건 카페건.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SNS며 하다못해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조차 쉼 없이 만남은 이루어진다. 대개 “언제나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예의와 격식 뒤에서”(51쪽)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만남도 있다. 초면이고 뭐고 “‘오줌!’ 하면서, 대뜸 엉덩이를 훌렁 까서”(51쪽) 내미는, 눈뜨고 처음 나누는 인사가 “안녕”이 아닌 “오줌!”인 만남. 이 책 『활보 활보 : 초보 장애인활동보조의 좌충우돌 분투기』(이하 『활보 활보』)는 이런 야생적인(?)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이 이렇게밖에 만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은이인 정경미는 ‘활보’이고, 지은이의 활보를 받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친구들(S, J, H)은 모두 혼자서는 몸 가누기조차 힘든 1급 뇌병변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활보란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줄임말(활보제도 전반에 대해서는 204쪽 ‘용어해설’ 참조)로, 말 그대로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조해 주는 직업이다. 먹거나 씻는 것에서부터 요리, 청소, 양육, 쇼핑 등의 가사활동과 등하교, 출퇴근 등을 비롯한 외출에 심지어는 금전 관리까지도 보조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장애인들은 활동보조서비스의 ‘이용자’가, 활보는 ‘제공자’가 된다)와 이용자 사이라면 이들의 만남이라고 뭐 별다를 게 있겠는가. 하지만 이들의 만남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활보 일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신체가 한 몸이 되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활동”(18쪽)이기 때문이다(이 책이 바로 그 “새로운 활동”의 가장 큰 산물이다).
제가 몸이 굉장히 건강한데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으니까 다 쓰지 않은 힘이 자기를 공격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우울하고 침울하고 그랬었는데, 일을 하면서 몸이 굉장히 건강해졌어요. 또, 이 일 자체가 다른 사람하고 일심동체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다른 사람하고, 다른 신체하고 호흡을 맞추는 게 안 되면 같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활보 일 하면서 다른 사람하고 호흡을 맞춰서 움직이는 몸으로, 몸이 좀 바뀐 것 같아요. 몸이 유연해진 것 같아요.(에필로그_저자 정경미 인터뷰 中 201~201쪽)
지은이는 몸은 멀쩡하지만,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는 마음의 장애를 가진 화병쟁이이다. 뜻을 풀면 간(肝)의 기운이 뭉쳐 있다는 뜻인데, 한의학에서 간은 ‘소통’의 장부다. 한마디로 간기울결이란 소통을 거부한 몸이 울화 덩어리로 변해 버린 것. 그러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이었던 지은이였건만 “책을 읽을 수가 없고,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문자를 보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 다 귀찮다! 남의 말 다 듣기 싫다! 하면서 하루 종일 깜깜한 동굴 같은 데 웅크리고 있다가, 누가 건드리면 격렬한 발작 증세를 보이”(프롤로그 13~14쪽)기까지 했다.
그랬던 지은이가 달라졌다. “너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웃긴다”(6쪽) 게다가 “몸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5쪽)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시급 6,400원 정도에 불과한 중노동인데도 “세상에나 만상에나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하루하루가 신기하다. S, J, H와의 활보(闊步)가 너무 신난다. 글자만 봐도 토할 것 같았는데 그녀들과의 활보를 날마다 글로 토해 내고 나면 너무 시원하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내 글을 보고 배꼽을 잡는다. 출판사 블로그
(bookdramang.com)에서 내 글을 읽은 독자들도 재미있다고 아우성이다. S, J, H와 지은이는 함께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된 걸까?
활보는 부딪치는 것!― 똑 부러지는 S와의 활동
S는 지은이가 8개월간 아침 활보를 하며 만났던 친구. 아침 활보의 일은 주로 “잠자리에서 일으켜 주고, 화장실에 가고, 씻고, 아침을 먹는 일을 도와주”(21쪽)는 일이다. S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생활력! 한 달 수입 6~70만 원 중 50만 원 넘게 저축을 한다. 자립을 위해서다.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서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S는 패셔니스트다. 옷장을 열면 옷에 액세서리에 없는 것이 없다. 게다가 활보 세 명을 먹여 살리는가 하면 자신의 활보 중 가장 가난한 지은이에게 라면이나 칫솔 같은 생필품들을 챙겨 주기도 한다. 자기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그런 S지만 지은이는 S와 ‘싸우는 활동’을 가장 많이 했다고 회상한다. 커피 타 달라는데 못 들은 척 청소를 하고, 손 대신 발을 쓰는 S는 흥분해서 발을 휘두르고, 그러면 S의 발길질에 또 빈정이 상해 더더욱 딴청을 부리고……. 하지만 이런 싸움이 소모적인 것만은 아니다.
S랑 같이 활동하면서 내가 얼마나 남의 말 듣기 싫어하는 신체인가를 알았다. S의 말에 따라 내가 S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것. 이건 내가 다른 신체가 되는 변화이다. 오랫동안 한 번도 나 자신을 떠나 본 적이 없는 고집불통의 내 몸은 그 변화를 두려워한다.(‘쿠쿠, 비닐공주’ 24쪽)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된다는 것이라니……. 잠시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은이가 S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억지로라도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꾹꾹 눌러 참을 것인가, 뒷일은 뒷일이고 일단 붙어서 싸워 볼 것인가. S와 지은이는 싸운다. “둘 다 분이 덜 풀려서 씩씩거리는 채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더라도 싸운다. 그래서 지은이는 화병을 고쳤다. “착한 척하고 사느라 속에 쌓인 울화 덩어리가 S랑 싸우면서 다 터졌다”(17쪽)고 한다. 부딪치고 터뜨리고 털어내는 것, “태평양 가운데 혼자 던져놔도 살” S는 그걸 가르쳐 주고 떠났다.
활보는 즐거운 것!― 알콩달콩 J(제이) 이야기
지은이가 활보를 하게 된 계기는 생계였다. 간기울결이 극에 달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다 정말 먹고살 길이 막막해져서 시작하게 된 일이 활보, 그리고 제이는 활보를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다. 다시 말하면 제이는 지은이의 첫번째 밥줄이다. 사소한 오해로 이 밥줄이 끊어질 뻔한 것을 지은이가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붙잡게 됐다(14쪽). 안타깝게도 이 밥줄은 그리 튼튼하지가 않았는데 이후 두어 번의 위기 때마다 지은이는 이 밥줄을 사납게 움켜잡으며 포효했다. 왜냐하면 활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고로 혼자서는 밥이 생기지 않으므로. 그리고 또 이제는 제이와 함께하는 것 자체가 즐거우므로.
제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가씨다. 일찍이 조숙하여 남들이 다 대학가겠다고 할 때 “대학은 왜 가? 난 시집갈래!” 하며 큰소릴 뻥뻥 쳤다. 공공시설에는 장애인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래야 멋진 남자가 나타나서 자신을 안고 계단을 올라 줄 것이므로. 지은이는 S와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제이하고도 싸울 때가 있다. 둘은 싸우기 위해 카페로 간다. 제이는 주문하면서 “라떼에 거품을 하트 모양으로 해주세요” 한다. 그러면 완전 싸움 해제. 그래서 제이랑 있는 건 즐겁다. 지은이에게 시간은 “혼자 있을 땐 꽝꽝 얼어붙어 있다가 제이의 휠체어 꼬리에 매달리는 순간 파닥파닥 되살아나는 것 같”(94쪽)단다. 그만큼 제이와의 시간은 활기차다.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제이는 지은이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하고 맞춰서 활동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상대였을 뿐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먹고, 떠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해준 사람이다. 어쩌면 제이는 지은이에게 앞으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할 때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까지 심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활보는 호흡을 맞추는 것!― 노숙한 신생아 H와의 만남
‘땜빵’ 활보로 만났다가 이제는 아침마다 만나게 된 H는 자기 나이를 “17개월”이라고 말한다. H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할머니에 의해 길가에 버려졌다고 한다. 혼자 길을 헤매다 기찻길을 건너게 됐는데 그만 기차에 치였다. 여기서 죽지 않은 것도 다행인데, 기차 바퀴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다 지나갔나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꽝! 그 다음 기억은 없다고 한다. 이때 뇌를 크게 다쳐 온몸의 신경근육이 마비되고 오그라붙었다. H를 수술비를 후원해 준 미국인 부부의 도움 덕분에 수술을 받고 시설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다가 자립을 위해 나왔다. 그래서 나이를 묻는 사람에게 “이제 17개월 됐어요”라고 말하는 것. ‘자기의 삶’을 시작한 지 17개월이 됐다는 뜻이다. 실제 나이는 마흔아홉 살이라지만, 이것도 확실하진 않다. 이름도, 생년월일도, 하다못해 키와 몸무게도 알 수가 없다. 신상정보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존재 이유는 너무나 확실하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H가 여기까지 온 것은 세상에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일 텐데, 내가 아침 활보를 함으로써 그 일의 일부에 잠깐이라도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영광스럽게 생각되는 것이다.(‘누룽지’ 103쪽)
H가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남들에게도 자신처럼 살아야 할 이유를 나누어 주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삶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활보들과 함께 활동하는 하나의 ‘장소’로 대한다. 몸이라는 장소에 맞게 활보들은 활동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H의 몸은 여러 활보들의 활동 장소이다. 아침에 목욕을 하기 위해 H는 내 앞에서 알몸이 되어야 하는데, H는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H는 다리 근육이 비틀려져 있어서 다리와 사타구니 사이 살이 접힌 부분이 항상 가렵다. H는 거기를 박박 문질러 씻어 달라고 한다 …… 이런 행동들이 저기 탁자 위에 있는 컵을 여기로 갖다 달라고 하는 일처럼 자연스럽다. 누가 내 신경 조금 건드리는 거 못 참는 나로서는 자기의 몸을 여럿이 함께 활동하는 하나의 ‘장소’로 대하는 H가 놀랍다.(‘감자 먹는 사람들’ 172~173쪽)
H는 스스로 몸을 쓰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몸을 누구를 통해 어떻게 쓰면 되는지 알고 있다. S가 “오줌!”이라고 먼저 자신의 요구사항부터 제시하는 타입이라면 H는 화장실에 가기 전 먼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타입이다. 자신의 몸이라는 장소에서 타인의 몸을 어떻게 만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지에 대해 터득했다고나 할까. 활보인 지은이는 지금도 H를 통해 그 자연스러움을 터득하는 방법을 전수받는 중이다.
몸과 몸의 만남, 우리가 아는 장애란 없다
제이는 작년(2012년)에 장애인 인권강사 양성 아카데미(208쪽 ‘용어 해설’ 참조)를 졸업했다. 마지막 수업시간,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강의 실습을 해야 했는데, 주제는 ‘난 환자가 아니야’였다. 내용은 장애인은 환자가 아닌 엄연히 자율적인 존재라는 것. 제이는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강의를 잘했지만 활보인 지은이는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궁금한 건 장애인을 환자 취급하면 왜 기분이 나쁠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나는 화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뭘 해도 화가 난다. 기뻐도 화가 나고, 슬퍼도 화가 나고, 뭘 해도 화가 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내 앞에서 “난 환자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제이한테 어쩐지 난 조금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 지금까지 나는 모든 일에, 모든 사람들한테 화를 내면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나의 이 화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그냥 나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마음의 장애’가 아닐까? 환자라서 제이한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가 나는 점차 같은 장애인으로서 제이에게 연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난 환자가 아니야!(‘난 환자가 아니야’ 143~144쪽)
뿐만 아니라 중증장애로 발음이 분명치 않은 제이의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돕겠다며 나선 지은이는 정작 제이는 통화로 약속을 성사시키고 자신은 실패한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제이가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나 알아보는 것. 이 조사를 하려면 방문할 학교에 전화해서 특수학급 관련 교사와 통화를 해서, 만날 시간 약속을 정해야 한다. …… 세 건은 제이가 통화하고, 한 건은 내가 통화했다. 그런데 제이는 세 건의 약속을 모두 성사시켰는데, 내가 한 전화는 거절당했다. 나는 분명히 제이보다 말을 잘하는데 어째서 나는 실패하고 제이는 성공했을까.(머리말 7쪽)
지은이의 결론은 ‘내 말을 꼭 들어 주세요’라는 제이의 절박함이 전화기 저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마음을 움직이는 건 화려한 언변이나 분명한 발음이 아님을 절감한 사건이다.
이렇듯 이 책 『활보 활보』는, 초보 장애인활동보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지은이가 1급 중증장애인들을 몸으로 만나 변화하는 자기 삶에 대해 쓴 이야기이지만, 함께 미소짓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응원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게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질문하게 만든다.
활보와 장애인의 만남에서 보살핌을 받는 존재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은이의 경우가 모든 활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또한 역시 활보와 장애인이 서로를 보살피는 존재임을, 사실 사람과 사람의 구체적 만남은 그 보살핌과 배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안다. 몸과 몸이 부딪쳐서 이루어내는, 이 원초적이고 그렇기에 가장 리얼한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생겨난 사람 인(人) 자를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서로가 기대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에 우리가 아는(안다고 생각하는) ‘장애’란 없음을, 모든 삶이란 원래 그렇게 기대어 사는 것임을, 이 책 『활보 활보』는 ‘웃음’과 ‘역설’ 속에서 어느 이론서보다 어느 사회비평서보다 우리로 하여금 절감하도록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 책사러 가요~~~^^(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