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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몸과 학문과 삶을 고민하는 공부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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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09-20 13:49 조회3,8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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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고전평론가와 그의 동료들이 이끄는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은 <동의보감>과 사주명리학을 비롯한 동양 의역학을 일반 인문학과 접목시켜 공부하는 터전이다. ‘공부 공동체’로 성공적인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중구 필동 감이당에서 15일 오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텍스트 삼은 ‘로드클래식’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화‘랑’] 공간과 사람

문화공간, 그곳
(27) 서울 필동 ‘감이당’

고미숙씨 주도 인문의역학연구소
10대부터 70대까지 참여자들 다양
함께 모여 토론하고 밥 먹고 청소
“몸이 아픈 분들 많이 찾아옵니다”

남산 자락에 몸과 의역학을 화두 삼은 ‘공부 마을’이 활짝 열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비롯한 동료 학인(배우는 사람)들이 이끄는 공부 공동체이자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이다.

감이당은 서울 중구 필동 깨봉빌딩에 터잡았지만,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남산 품을 파고든 필동 가파른 골목 여기저기 ‘점’조직처럼 점점이 ‘티지스쿨’, ‘풀하우스’ 같은 공부방이 새끼를 쳤다. 몸·삶·글을 모토로 하여 의역학과 인문학을 공부하고 ‘밥과 우정’을 나누는 이 공부 마을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들고 난다.

15일 오후 서울 충무로 전철역에서 걸어서 15분, 깨봉빌딩 2층. ‘감이당’ 문패가 붙은 방으로 들어가니, 둥그렇게 스무명쯤 모여 앉아 ‘로드클래식’ 세미나가 한창이다. 길 위의 삶, 동서양 여행기 공부 세미나다. <서유기> <돈 키호테>에 이어, 이날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함께 읽는다.

“조르바가 조국 위해 살아왔던 삶을 반추하는 대목이 있잖아요. 저도 조국이라면 몸바쳐야 할 것만 같았는데, 이 부분 읽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생각했어요. 뭔가에 가치를 두면 시야가 좁아지지 않나요?” 한 학인이 화두를 던지자, 이 세미나에 학인의 한명으로 참가하는 고미숙씨가 말한다.

“조국 위해 싸워야 한다, 그걸 내면화하면 자기 욕망이 되지요. 명분에서 시작했지만 명분일 수 없는 게 눈앞의 사람을 죽이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전쟁이 나는 겁니다. 조르바는 그 상황에서 조국의 이름으로 내면화된 분별심을 확 깨고 애국심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가, 나아가 신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 사람 죽이는 일을 했는데도 어찌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 순간, 제 몸의 세포를 억압하던 분별력을 확 깨고 어느 나라, 어느 종교에도 속하지 않고, 어느 집단에도 없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지 않았나 해요.”

그 방을 나와 3층으로 올라가면, 탁자가 여럿 놓인 트인 공간이 학인들이 함께 밥을 해먹는 식당이다. 감이당 모토 중 하나가 ‘함께 밥 먹고 청소하는’ 일이다. 고미숙·류시성·도담과 함께 감이당 ‘살림멤버’의 4인 중 1인이면서, 살림을 총괄하는 총매니저인 박장금씨와 잠시 식당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쉼없이 이런저런 강좌·세미나의 학인들이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이들은 10대 청소년부터 70대 노인까지, 특정 세대와 계층에 한정되지 않는다. 박장금 총매니저는 “주부와 백수, 퇴직자부터, 일반 직장인, 다큐 감독, 의사, 변호사, 기업체 대표, 전문경영인(CEO)까지 계층별로 정말 다양하다”고 말했다. 1주일을 기준으로 할 때, 줄잡아 500명이 넘은 이들이 학인으로서 감이당을 내 집처럼 ‘출몰’한다. 공부모임이 또다른 공부모임을 낳는 통에, 박장금 총매니저도 “정확한 숫자는 헤아려 보지 않아 알기 어렵다”고 했다.

감이당의 1년 이상 장기 프로그램은 주2회짜리 ‘대중지성’ 1·2·3학년 과정이 간판 격이다. 여기에 주1회(8시간) ‘수·목 대중지성’ 2개 과정과 중년 남성만을 위한 인문의역학 과정인 ‘중남미’, 직업 없는 이들을 위한 ‘나는 백수다’, 청소년 대상의 ‘청소년 비전 탐구’까지 과정마다 20~40여명씩, 1년 이상 프로그램에만 200명을 훌쩍 넘는다. ‘왕초보의 역학’을 비롯한 4개의 단기 강좌에 200여명, ‘로드클래식’을 비롯한 4개 세미나 팀이 100여명이다. 1년에 한두번 여는 4박5일 인문학캠프에는 100여명이 몰리는데 수도권은 물론 부산, 대구, 청주에서도, 멀리 외국에서도 온다고 한다.

감이당은 연구집단 ‘수유너머’에서 갈라져 나온 고미숙씨가 주축이 되어 2011년 9월에 문을 열었다. 고미숙씨는 “삶의 토대인 몸이라는 현장을 근본적으로 보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일을 하는데 왜 영혼은 쉬질 못할까, 자신이 억압당하는데 타인의 해방을 위해 일할 수 있나, 몸과 지식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진 것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감이당이었다”고 했다.

감이당의 ‘성황’에 대해 수유너머 시절부터 함께해온 박장금 총매니저는 “몸이 아픈 분이 많이 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프지 않았으면 동의보감 세미나를 했을 리 없다. 예전에 문·사·철 인문학을 공부했다면, 감이당에선 인문학을 몸하고 연결시켜 인문·의역학을 공부하기에, 더 많은 분들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미숙씨는 “몸과 우주, 동양 고전은 어떤 것을 공부해도 인생의 지침이 된다. 특정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몸은 소중하고, 제 인생과 운명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분이 없고, 학벌 있다고 잘 아는 것 아니니까. 그래서 각자 자기 나이의 질문을 들고 오시는 것 같다. 사회과학적이거나 정치적 질문을 가진 분들보다는 그런 분들이 질문을 바꾸었을 때 감이당을 찾는 거다”고 말했다.

학인이 늘면서 감이당은 터전을 점점 늘려 왔다. 문 연 이듬해에 2층짜리 ‘티지스쿨’과 공부방 ‘베어하우스’, ‘풀하우스’를 열었다. 아예 일상까지 함께 하는 기숙사도 있다. ‘풀집’엔 여성 4명이, ‘곰집’엔 남성 7명이 산다. 박장금 총매니저는 “이른바 스위트 홈, 부-모-자녀의 가족 삼각형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이들 건물 혹은 방은 세를 들었는데, 이 비용은 감이당 수강료로 대고 있다.

감이당에서 계속 공부하는 이들은 ‘튜터’(강사)로 거듭난다. 사주명리학에 밝은 박장금씨를 비롯해 10여명이 대중지성 3년 과정을 마친 뒤 줄곧 공부를 해온 ‘포성’(포스트 대중지성)들이다. 이들은 공부하고, 가르치며, 책을 쓴다. 감이당과 긴밀히 연결된 출판사 북드라망과 작은길에서 펴내는 감이당 학인들의 책은 인문출판 불황 속에서도 4000~5000부 넘게 판매된다. 공부 프로그램을 통해 그 책들을 함께 읽고 다시 퍼져나가니, 감이당은 책과 공부와 삶이 선순환으로 살아 숨쉬는 터전인 셈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한겨레. 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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