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장자처럼 조르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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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5-01-18 17:49 조회5,937회 댓글1건본문
그림 이억배 화백 |
내 서재 속 고전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펴냄(2012)
장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연암서가 펴냄(2010)
그들이 추구한 자유는
수동적 도피나 체념이 아니라
두려움과 쾌락으로부터의 해방
진정한 생명과 자유의 경지 조르바가 야심차게 기획한 사업이 완전 박살나자 둘은 깨끗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5년, 그사이에 전세계의 국경선이 아코디언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격변이 휩쓸고 지나갔다. 어느날 두목의 꿈에 조르바가 나타났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열정에 휩싸여 두목은 미친 듯이 글쓰기를 한다. 그것은 이전에 했던 추상과 관념이 아니었다. 오장육부로부터 솟구치는 기(氣) 혹은 에너지의 유동적 흐름이었다. 조르바에 대한 스토리가 완성되는 순간,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 엽서가 도착한다. 두 개의 포물선, 곧 조르바의 육신과 두목의 정신이 마침내 하나로 융합된 것이다. 육신이 말이 되고 텍스트가 되는 과정, 그것이 <그리스인 조르바>의 기본 줄거리다. 텍스트의 탄생 과정이 ‘텍스트’가 된 셈이다. 그럼 조르바가 두목이 된 것인가? 두목이 조르바가 된 것인가? 문득 이 대목에서 <장자>의 나비에 대한 비유가 떠올랐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장자>는 ‘초월적 피세’ ‘호방한 상징’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장자는 오히려 이 카오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상이 아무리 한심하고 구질구질하고 역겹고 난감하더라도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운명이라도 사랑하면서 그 운명을 껴안고 한바탕 노는 능력”을 터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세상의 어떤 운명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의 어떤 삶이라도 다시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절대자유의 삶이”(이희경 편, <낭송 장자>) 아니겠는가. 이것이 장자가 전하는 ‘삶의 기예’다. 조르바의 경지와 여러 모로 상통한다. 장자의 주해서는 100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것은 장자가 난해하다는 증거도 되지만 그만큼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다성적 텍스트”라는 뜻도 된다. 달리 말하면, 누구든, 아무렇게든 읽어도 된다는 뜻일 터, 그것이 진정 장자가 원한 독법이 아니었을지. 그러고 보니 장자의 언설 구조도 <그리스인 조르바>와 닮은 데가 있다. 장자가 조르바라면, 두목은 장자에 나오는 공자를 비롯한 유자들이다. 공자와 안회 등은 명분과 이상에 사로잡혀 있다. 어떻게 인의를 구현하고 왕도정치를 실현할 것인가? 하지만 장자는 말한다. 그런 식의 이념이 세상을 바꾼 적은 없다고. 범죄와 형벌이 넘쳐나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어떤 명분과 가치도 생명과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것보다 더 위대할 수는 없다. 이걸 잊으면 외적 성취에 사로잡히고 그러면 번잡해져서 불안에 빠져버린다. 그 순간 한편으로 난폭해지고, 다른 한편 쾌락을 쫓게 된다. 두려움과 쾌락에 빠진다면 제명에 죽기 어렵다. 자기 명도 지키지 못하면서 세상을 구하겠다는 설정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조르바에게서 배운 것이리라. 아니, 조르바와 그의 경계가 사라졌으니 그런 말조차 무색하다. 두려움과 쾌락으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자유의 경지다. 이것은 결코 수동적 도피나 체념이 아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생명’과 ‘자연’이 깨어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한 ‘지복’의 세계다. 발칸전쟁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전장터를 누비고, 프란체스코 성인과 붓다를 동시에 가로지른 카잔차키스의 편력이나 천지만물과 소통하고자 모든 인위적인 가치들과 사상적 전투를 쉬지 않았던 장자의 궤적이 그 증거다.
(2015. 1. 15)
댓글목록
후안님의 댓글
후안 작성일너무도 좋은 글입니다, 이런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리스인 조르바와 장자를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을 안해본것은 아니지만 이렇듯 그 둘의 상관관계를 이렇듯 설득력있게 기술할수 있는 내공은 어떻게 해야 달성될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곳에 와서 글을 읽을때마다 끝도 없는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대단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