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증치료라는 말이 있다. 대증(對症), 즉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구토를 하는 환자에게 항구토제를 투여한다거나,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를 주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요컨대 증상과 반대되는 처치를 함으로써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는 거다. 이는 때로 효과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보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여러 검사를 통해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려고 한다.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지 않은 채 증상만을 없애는 대증치료는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설령 그 원인을 파악하더라도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원인 또한 있다. 바로 노화다. 동물이 인간의 도시 생활에 동참하게 되면서 동물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고령화로 인한 질병 역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이가 많은 동물들은 인간처럼 심장이나 신장이 안 좋아진다거나, 연골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심지어는 암에도 흔히 걸린다. 고령화에 대처하는 치료들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치료나 예방이라도 노화라는 근본 원인을 없애버릴 순 없다. 노화에 맞서는 의학이란 결과적으로 대증치료가 될 수밖에 없다.
생명은 태어나서 나이를 먹고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른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로병사의 스텝을 밟아나간다는 건 하나도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생명을 살려내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병원에서랴. 동물병원을 찾아오는 동거-인간들도, 동물병원에 있는 치료-인간들도 죽어가는 동물들을 향해 하나라도 뭘 더 해주기 위해 애를 쓰지, 질병이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쉽게 생각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동물을 포기한다는 말에 지나지 않으니까. 병원이란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곳이지 버리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당연히 스러져 가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면 동물이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했다. 죽음이 임박한 동물에게 끝없는 치료는 오히려 동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