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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3] 화지진(火地晉), 혼자서는 결코 빛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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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4-03-04 10:06 조회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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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지진(火地晉), 혼자서는 결코 빛날 수 없다!

고 영 주(글공방나루)

火地晉(화지진)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진, 강후, 용석마번서, 주일삼접.

진괘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제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하는 것이다.

 

初六, 晉如摧如, 貞吉, 罔孚, 裕无咎. 초육, 진여최여, 정길, 망부, 유무구.

초육효, 나아가거나 물러남에 올바르면 길하다. 주변에서 믿어주지 않더라도 여유로우면 허물이 없다.

 

六二晉如愁如貞吉受茲介福于其王母육이진여수여정길수자개복우기왕모.

육이효나아가려다 근심하는 것이지만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니 왕모에게서 큰 복을 받는다.

 

六三, 衆允, 悔亡. 육삼, 중윤, 회망.

육삼효, 무리가 믿고 따르니 후회가 없어진다.

 

九四, 晉如鼫鼠, 貞厲. 구사, 진여석서, 정려.

구사효, 나아가는 것이 다람쥐와 같으니 계속 고수하면 위태롭다.

 

六五, 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육오, 회망, 실득물휼, 왕길, 무불리.

육오효, 후회가 없게 된다. 득실을 근심하지 말아야 하니 나아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上九, 晉其角, 維用伐邑, 厲吉, 无咎, 貞吝. 상구, 진기각, 유용벌읍, 려길, 무구, 정린.

상구효, 그 뿔에까지 나아가니 오직 자기 자신을 강하게 단속하는 데에 사용하면 엄격하더라도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저녁 6시 40분이면 어김없이 온라인(Online)으로 ‘2023년 퇴근길 주역’ 강좌를 함께 하는 학인들을 기다렸다. 작년 초부터 강좌 매니저를 맡아 왔고, 하반기에는 강의까지 하게 되어 월요일은 항상 긴장과 바쁨의 날이었다. 홀가분함과 아쉬움 속에서 어느덧 강좌가 무사히 종강 되었다. 돌이켜보면, 『주역』 책을 펴놓고 강의 준비를 했던 지난 날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처음 깨봉(서울 남산에 위치한 공부 공동체)에 접속해 띄엄 띄엄 공부를 했을 때와는 다르게 공부가 제법 성장했고, 나름 성대하게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주역』에도 밝고 성대하게 나아가는 괘(卦)가 있다. 바로 화지진(火地晉)괘다. “‘()’이란 나아감이다.”라는 「서괘전」의 내용을 정이천 선생님은 이렇게 풀이한다. 모든 것이 강성해진 끝에 가서 멈추는 이치는 없으니강성해졌다면 반드시 나아가므로 진괘가 대장(大壯)괘를 이었다.”(정이천주역글 항아리, 699상괘(上卦)는 불을 상징하는 이(離)괘가, 하괘(下卦)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자리한 화지진의 상(象)은 밝은 태양이 땅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하여 ‘晉(진)’에는 단순히 앞으로만 전진하는 ‘進(진)’과는 달리 밝고 성대하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진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누구보다도 밝고 성대한 덕(德)을 갖추고 있는 ‘강후(康侯)’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강후를 강후로서 밝고 성대하게 해주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수많은 인연들과의 ‘만남’이다.

그동안 깨봉에서 여러 세미나를 했고, ‘감이당-대중지성’(고전을 읽고, 쓰고, 낭송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읽고 쓰는 공부의 근력을 키웠다. 정규직이라 비록 일요일 주말 하루뿐이었지만, 깨봉과의 만남으로부터 내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그러다 우연히! 2022년 초에 ‘글공방 나루’(물길이 열리는 나루터라는 뜻으로 현재 내가 공부 훈련을 하고 있는 곳이다.)와 접속하게 되었다. 스승과 도반, 그리고 공부로 활동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열리게 된 것이다.

진괘의 강후가 첫 번째로 만나는 사람은 바로 왕이다. 나라를 안정되게 다스리려면 누구보다도 왕과의 관계가 두터워야 한다. 그러자면 강후에게 꼭 필요한 태도가 있다. 바로 ‘순종’이다. 다시 진괘의 상으로 돌아가 보면, 마치 밝은 왕에게 순종하는 제후의 모습처럼 리(離)괘의 밝음[明]에 곤(坤)괘의 순종[順]함이 붙어 있는 모습이다. 새로운 네트워크에 접속한 만큼 나 또한 나루 선생님들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까지도 나에게 있어 나루 선생님들은 밝음의 주체다. 순종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만 앞으로의 공부가 밝아지고 성대하게 나아갈 수 있으며, 공부 공동체의 윤리와 깨봉에서 만나는 인연들에게 마음을 다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진괘의 강후가 왕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강할 때, 왕은 ‘용석마번서(用錫馬蕃庶)’, 제후에게 말을 하사하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번성시키려고 한다. 공부 공동체이니만큼 텍스트와의 만남도 매우 중요한데, 나루에서 만난 첫 책이 바로 『주역』이었다. 『주역』이 나의 일상에서 부유해지고, 나루의 관계 안에서 밝고 성대하게 번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어렵고 낯선 64괘의 기호와 괘사(卦辭), 그리고 효사(爻辭)를 필사하고 암기했다. 공부가 한층 성장하려면 텍스트와 친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루 도반들까지 나서서 부족하고 어설픈 한자를 체크해 주었다. ‘내가 이 정도로 공부를 할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 덕분에 생소했던 『주역』이 안정되어갔고 나루에서의 공부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강의였다. ‘내가 강의라고?’ ‘그것도 『주역』으로?’ 당시 나루에서는 ‘2022년 암송 주역’ 프로그램 개강을 앞두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나루 선생님들과 도반들이 『주역』의 64괘를 나누어 강의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강의를 듣기만 했지, 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의를 준비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근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진괘 육이효의 처지가 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진여수여(晉如愁如), 정길(貞吉), 나아가려다 근심하는 것이지만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다.’ 수(愁)란 ‘근심하다’라는 뜻이다. 육이효는 밝고 성대하게 나아가는 때에 아직은 괘의 하체에 있고, 음(陰)이라 덕(德)이 강하지 못해 강직한 힘을 쓸 수 없어 근심하고 있는 중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나루와 접속한 첫해라 아직은 배워야 할 위치라 생각했다. 거기다 사실 이전까지의 공부는 나 혼자만 열심히 읽고 쓰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강의는 단순히 『주역』 열심히 외우고 쓴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강후가 왕에게 받은 말을 ‘번서(蕃庶)’한다는 것은 왕뿐만 아니라 백성과의 만남까지도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나루와의 만남으로부터 나의 공부가 밝고 진솔하게 또 다른 만남으로 번져갈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강의로 근심하고 있던 와중에 어째서인지 나루 도반들과의 공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암송 주역’ 개강 첫날부터 순탄하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공부가 진전되지 않으면서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 것이다. 계속되는 실수 때문인지, 시절 인연 때문인지 함께 공부하던 도반들이 하나 둘 씩 나루를 떠나갔다.

처음 나루에 접속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맴돌았다. 강의 준비를 함께 나눌 도반들이 없어 막막하기도 했고, 강의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초조해져만 갔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진괘의 육이효는 근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음의 자리에 음이 위치하고 있어 정(正)하다. 『주역』에서 ‘자리가 올바르다[正]’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육이효의 진여수여는 근심하는 것 위에서 밝고 성대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합당한 일이란 괘를 암기하고 소화한 만큼 강의안을 써 보면서 나루로부터 주어진 공부의 리듬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강의를 준비할 때 선생님들께서 요청하신 것은 단 하나!, 『주역』의 언어들을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나 혼자만 알고 곱씹었던 언어가 아닌 곧 마주할 학인들과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들을 고민하는 것이 나의 숙제였다. 육이효로부터 배울 수 있는 올바름이란, 밝고 성대해진 다음에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는 것 위에서 강의를 준비하며 인연을 확장 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그러니 육이효의 진여수여는 근심하는 것 위에서 밝고 성대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매주 괘 하나씩 강의를 준비했고, 선생님들께서는 일요일마다 강의를 체크를 해주셨다. 사실 그동안 주중에는 공부와의 마주침이 적었었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뿐 아니라 한문 강독, 스토리텔링, 목소리, 호흡까지 체크를 받아가며 강의 시연을 하면서 공부와의 만남이 예전보다 훨씬 빈번해 졌다. 마치 진괘의 왕과 제후가 하루에 세 번이나 마주하는 ‘주일삼접(晝日三接)’의 빈번함처럼 말이다. 빈번했지만 선생님들 앞에서의 강의 시연은 지금까지 에세이 발표나 렉쳐와는 전혀 다른 밀도와 긴장감을 받았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하반기에 들어서야 겨우 첫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던지 그때의 만남과 훈련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주역』으로 강의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육이효는 자리가 정할 뿐 아니라 하체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중(中)한 힘도 갖고 있다. 특히 곤괘의 중앙이라 자신과 응(應)하고 있는 오효를 향한 순종[順]함이 누구보다 강하다. 오효와의 관계를 떠나지 않고 순종함을 바탕으로 밝고 성대하게 나아갈 수 있기에 육이효의 길(吉)함은 구체적인 복(福)으로 확장된다. 수자개복우기왕모(受玆介福于其王母) 왕모에게서 큰 복을 받는다.’ 육오효는 군주이지만 음의 자질이라 왕모(王母)라 칭했고, 밝음의 주체인 이괘의 주효이기 때문에 진괘에서 누구보다도 밝다[明]. 육오효는 크게 밝은 군주로서 자신과 더불어 덕이 같은 육이효와 함께하려고 해서반드시 구하여 총애와 녹봉을 줄 것이니큰 복을 왕모에게 받는 것이다. ‘는 크다는 뜻이다.”(같은 책, 706) 오효는 군주의 자리로서 나에게는 나루의 선생님들이면서도, 음효의 자질로서는 부족한 나를 품어 주고 『주역』을 함께 공부해준 학인들이기도 하다. 이렇듯 ‘2023년 퇴근길 주역’은 수많은 인연들에게 받은 개복(介福)이라고 할 수 있다.

강좌를 준비하면서 프로그램 모집글을 처음 써보았다. 그동안 수많은 누군가의 모집글을 스쳐 보고 지나갔지만, 글을 쓰는 것 만큼이나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과 나의 배움 안에 다른 사람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느꼈다. 거기다 누군가를 이토록 기다려본 일이 또 있었을까. 커리큘럼이 올라오고 혹여나 강좌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없어 폐강이라도 되면 어쩌지 싶었다. 온갖 초조함과 긴장 속에서 강좌가 무사히 개강되었을 때는 너무나 기뻤고, 강사료를 받았을 때는 나의 비전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다. 진괘의 강후가 나라를 다스리는데에 아무리 밝고 성대하다 해도 말을 하사하고 빈번하게 만나줄 왕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나를 써주고 공부의 장(場)을 열어주는 인연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강좌 매니징을 하고 강의를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공부와 비전 또한 나루의 밝음과 수많은 인연들이 선물해준 큰 복(介福)이라고 확신한다. 나 또한 누군가를 강후로서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인연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화지진의 모습이다. 글을 다 쓰고 보니 전생에 무슨 복을 쌓았는지 나는 복도 많다.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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