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불경에 관한 것이다. 불경이란 붓다께서 설하신 진리의 말씀을 담은 거룩한 책이다. 그런데 불경에는 붓다만 등장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얘기일까? 붓다야말로 상대의 처지와 심리상태, 지적 수준 등을 고려한 맞춤형 대화, 이른바 ‘대기설법’의 달인! 붓다의 맞은편에는 늘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누굴까? 그는 어떤 문제로 붓다께 찾아왔을까? 무슨 복이 있어 붓다의 말씀을 듣는 행운을 누렸을까?
붓다와 동시대를 살았던 행운의 주인공들은 정말 다양하다. 창녀, 살인자, 귀족, 사냥꾼, 학자, 광인, 왕과 왕자들 등등. 그뿐 아니라 인간 아닌 비(非)인간- 여러 층위의 천계에 사는 다종다양한 천신, 야차, 마라 등도 자주 출몰한다. 코끼리, 원숭이, 사자, 뱀, 까마귀, 사슴, 물고기 등의 동물 등이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찮다. 아, ‘나무’를 빠뜨리면 안 된다! 붓다의 탄생을 도운 산파로, 정각(正覺)의 수호자로, 열반을 지켜본 목격자로서 나무는 붓다 생애의 중요한 순간을 늘 함께 해왔다.
이들은 각각의 사연과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있다. 우리처럼 말이다. 그 가운데에는 가르침을 듣기 위해 긴 세월을 기다려온 자도 있고, 토론에서 이겨 붓다를 꺾으려는 마음으로 온 자들도 있다. 먼길을 찾아온 자도 있고, 붓다께서 직접 찾아간 자도 있다. 붓다를 위협한 코끼리도 있고 붓다 곁을 떠나야 하는 슬픔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코끼리도 있다. 말씀을 듣고 단박에 깨우친 존재들도 있고, 화를 내며 떠나버린 자들도 있다. 붓다와 동시대를 살고, 붓다와 직접 인연이 닿았으되 그 양태는 천차만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