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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자유의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2-14 09:43
조회 : 664  

 <청공터 에세이>



| 자유의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

 

서다윤

 

 

 

칸트가 말하는 자유란..?

 

 감이당에는 초봄과 늦가을에 한 번씩 열리는 행사가 있다. 이름은 그때마다 달라졌지만 지금은 고물섬이라 불리는 행사다. 고물섬이라는 것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집에 있지만 잘 안 쓰는 물건을 보내달라고 홍보하고, 온 물건들을 분류, 진열하여 약 5일간 매장을 여는 프로젝트다. 나는 이 행사를 몇 번 했었는데 이번엔 바쁘기도 해서 손님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다들 나와 같은 이유로 하지 않으려 했다. 다들 하지 않으려 하니 나도 굳이 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도 안 하면 고물섬이 사라질 것 같았다. 사라지면 손님으로 갈 기회조차 없어져 버린다. 안 하자니 뭔가 아쉬워서 이번에만 내가 고물섬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마음을 먹고 시작하니 의외로 사람들이 모였다. 몇 번 해본 행사라서 그런지 어떻게든 진행도 되었다. 다만 나 빼고 전부 고물섬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책임감과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뭔가 더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런 마음은 당연히 행동으로 드러났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들 편의를 봐주면서 일했다. 그래도 ‘나랑 같이 일해 주는 사람들이 고맙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일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 일이 제대로 터졌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마지막 날의 고물섬 정리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한 친구는 그 때 가족여행 간다고 말하는 걸 깜빡했다면서 뒤늦게 알려줘서 그 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세 명이서 정리를 했다. 그러던 도중 느닷없이 베어하우스에서 긴급회의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언니들은 당황했고 나도 덩달아 당황해서 어서 가보라고 했다. 잠깐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걸 다 정리할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하니 지쳤다. 언니들을 왜 그냥 보냈는지, 베어에서는 왜 언니들을 불렀는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하며 지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위로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상황에 휩쓸려 행동해버린 스스로가 멍청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그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윤리21』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자유는 주체적인 것과 같은 뜻”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이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나는 상황에 휩쓸리며 다녔지 주체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주체적으로 행동하면 상황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주체성을 가지고 싶어졌다. 그런데 『윤리21』에서는 자유롭게 살려면 “사실상 자유가 없었음에도 자유였던 것처럼 간주되어야 합니다”(『윤리21』 도서출판b, 가라타니 고진, 78쪽)라고 말했다.

 

  나는 자유가 없는데 자꾸 자유로 간주하라는 말을 보고 화가 났지만 보다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자유도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마음이 생기니까 ‘나는 그 때 쌤들을 베어로 보내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보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판단이 아주 그럴싸하다고 믿었다.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면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러면 좀 더 수월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라 여겼다. 이 상황을 발판 삼아서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해서 이런 상황이 다시 왔을 때 자유롭게 대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만 마음을 바꿔 먹으면 된다고 믿었다. 이게 ‘정신승리법과 뭐가 다르냐’는 에세이 코멘트를 듣기 전까지 말이다. 책을 오독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듣고, 다시금 생각에 빠졌다. 자유와 아Q의 정신승리법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적어도 아Q가 하고 있는 행동 양상이 자유라고 보긴 어렵다. 그런데 나는 이 둘을 구분 없이 썼다. 대체 칸트는 어떻게 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는 걸까?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을 따르려면

 

  나는 칸트의 자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그전에 나는 자유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자유라는 말을 ‘바쁨 속의 일탈’ 아니면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고물섬을 할 때 같이 하는 거니까 가지 말라고 거침없이 얘기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자유라 생각한 것과 거리가 먼 짓을 했다.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억압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자유고, 칸트는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자유란 자기 원인적이라는 것, 자율적이라는 것, 주체적이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유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그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자유로워지라”는 지상명령에서 발견해냅니다. 

-위의 책, 78-79쪽

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의무)을 통해서만 존재합니다. 바꿔 말해 그것은 결정론적 인과성을 괄호에 넣으라는 명령입니다. 

 -위의 책 82-83쪽

  자기 원인적인 것이, 자율적인 것이, 주체적인 것이, 자유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서 나오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론적 인과성을 괄호에 넣으면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을 따른 것과 같다고 말한다. 결정론적 인과성은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결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걸 괄호에 넣는다는 것은 결과만 보고 생각하지 않는다가 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자꾸 탓했다. 상황도 나빴고, 쟤도 나빠, 나는 그저 휩쓸린 것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니 나한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혼자 남게 되고 나서 베어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 전에는 베어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던 간에 이런 상황을 연출한(?) 베어 사람들이 나빴다고 원망했다. ‘베어 사람들이 한 긴급회의가 사실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미치니 더욱더 베어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머릿속 망상에 불과했다. 내가 결과적으로 혼자 남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베어가 연출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또한 내 멋대로 ‘그 긴급회의는 급한 것이 아니었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베어 사람들에게 피해 입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간주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나의 이런 원망은 결과만 보고 판단하려는 마음을 접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유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것뿐이지 더도 덜도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자유는 곧 책임지는 것이다

 

  나는 자기합리화랑 칸트가 말한 자유를 헛갈려했다. 그런데 자기합리화는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달라졌다고 믿는 척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가 말하는 자유는 상황은 비록 바뀌지는 않았지만, 결과만 보고 함부로 상황을 간주하지 않고, 다시 돌아봄으로써 주체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이 둘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책임은 우리가 자유, 즉 자기가 원인이라고 상정했을 때만 존재합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내가 어떤 의도로 행동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마치 자신이 원인인 것처럼 생각할 때에만 책임이 생겨납니다. (...) 바람직한 책임의 방식은 지난 과정을 남김없이 고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를 철저히 검증하고 인식하는 일. 이건 자기변호와는 다른 것입니다. 

-위의 책, 82-83쪽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상황이 이끄는 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 신세가 아니라, 진정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고 나아가고 싶어졌다. 그 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나는 지난 날, 고물섬을 할 때를 고찰해보기로 했다.

 

  고물섬을 하기 전에는 불안, 두려움을 느꼈다. 고물섬 같이 내가 주체가 돼서 하는 행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이끌어보는 건 처음이라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며 물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나가는 제법 희망찬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급하게 고물섬을 한다고 해서 시간이 촉박했다. 포스터고 뭐고 나는 서둘러서 만들었다. 내가 열자고 말한 거니까 내가 좀 더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바빠서 힘들었지만 내심 내가 남들보다 많이 일한다는 사실은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내가 일을 못해서 남들이 내 일까지 맡아서 한 적이 있다 보니 뿌듯함은 배가 되었다. 게다가 무작정 일을 벌였는데 그걸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다.

 

 

 

“같이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당시 내 입버릇이었다. 한두 번만 저런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 툭하면 했다. 같이 한다는 고마움의 표시였다. 나는 꽤 즐거웠고 기뻤으니 말이다. 나는 저 말을 할 때마다 함께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고물섬을 같이 열어가는 사람으로 생각했더라면 저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저 말은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나랑 활동을 같이하는 손님(?) 정도로 그들을 바라봤던 것이다. 그들도 하고 싶어서 고물섬을 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다른 일로 바빠할 때마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나는 그들이 다른 과제를 하면서 할 수 있도록 내가 더 일했다. 고물섬 물건 세팅을 새벽까지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오픈 준비를 하고 싶을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런데 다들 피곤한 기색이다. 나는 내가 한다고 했다.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니까 무리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이상하다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쳐서 고갈될 때까지 무리했다. 처음엔 베어를 원망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고갈되고, 또 무리한 이유는 다름 아닌 나 때문이었다. 같이 활동하고 싶었던 마음이 거짓은 아니었다. 같이 활동하고 싶었다. 다만 내가 더 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우위였기에 그런 것이었다. 내가 더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져서 그들과 같이 감당해야 하는 일을 내가 가져가버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마음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나는 당당하게 같이 하자고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멤버들에게 같이 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해도 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만 보고 나는 나의 행동을 ‘자유롭지 못한’ 행위로 보았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결과론적 인과성이었다. 자유로운 행동은 이런 것이라고 이미 정해놓고 이런 행동이 안 나오면 자유가 아니라고 정해놓았다. 나는 내가 자유라 생각한 것에조차 결과론적 인과성으로만 보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를 고찰한다는 것은 사건을 재구성한다는 것과 같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했는지를 인식하고 나니,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이미 과거의 일이지만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고 나아가고 싶어졌다. 이것이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자유란 곧 책임지는 것이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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