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명을 듣자, 나는 전생의 강주초가 이렇게 생겼겠구나, 라며 그 초목의 자태를 눈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눈물과 기침이라, 기침은 폐가 약하다는 것이고 폐는 슬픔을 주관하니 대옥에겐 천성적으로 슬픔의 정서가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다. 대옥이는 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며, 아무 일도 아닌데 눈물을 흘려댄다. 외할머니 집에 얹혀 있다고 눈치를 보며 울고, 보옥오빠의 행동을 오해하면서 울고, 보옥 오빠의 마음을 알아도 운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우는, 그야말로 ‘청승’ 그 자체라고나 할까?
대옥은 보옥과 한 집에서 크기 때문에,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면서 맨날 울 일을 만들어내는데, 대개는 대옥이가 오해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경우다. 대옥의 다른 면모에는 시도 잘 짓고, 꿰뚫어 보듯 날카롭게 말하는 영리한 면도 있지만, 자꾸만 자기 비하를 하면서 눈치를 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못 표현하는 걸 보면 나는 고구마 10개를 혼자 먹은 듯 했다. 결국 보옥이가 자기가 아닌 이종사촌 누나와 결혼을 하게 되자, 보옥이가 결혼을 하는 날, 피를 토하고(폐병) 울부짖으며 죽는다(슬픔).
울기로 작정을 하고 태어났으니, 울다가 죽었다. 홍루몽에서는 대옥이 뿐 아니라 금릉의 훌륭한 여자 12명이 모두 비극적으로 삶이 정해져 있는 채로 이 세상에 왔다. 그보다 조금 덜 훌륭한 다른 여인들과, 그보다 쬐금 더 떨어지는 시녀 급의 여자아이들도 어떤 삶을 살지 이미 책으로 정해져 있다. 그 책은 이생의 풍류사건을 주관하는 경환선녀가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번 생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인가? 피할 수 없이 전생의 업보대로 살라는 건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눈물로 되갚아드리겠다고 하고 인간세상에 왔으니, 대옥이는 보옥이와 결혼했어도 울었을 것이고, 어떤 다른 일을 만들어서라도 울다가 죽었을 것이다. 오, 젠장.
이렇게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하면, 내가 우연이라고 생각한 모든 일들 역시 필연적인 것이다. 아침에 점을 쳤더니, 귀인을 만날 운이 나오고, 정말로 길에서 누군가가 척 나타나 도움을 준다는 것 같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필연성을 모를 뿐인 것이다.
이 말을 믿건 안 믿건, 이 쯤 되면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나의 전생은 뭐였을까? 나는 어떤 바램을 가지고 삶을 얻었기에 지금 이 모냥 이 꼴로 살고 있는가!? 그게 뭐였든 간에, 그럼 이번 생은 이대로? 쳇, 흥이다.
나는 홍루몽을 처음 읽었을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것이 궁금했다. 금릉12차 여인들의 앞으로 펼쳐질 비극적 숙명이 1권 앞부분에 죽 나열된 것이 참 낯설었다. 미리 정해진 것도, 그것이 모조리 비극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