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원래 전기 전문 관련 사업을 하셨다. 그런데 사업이 실패하면서 현장잡부로 일을 하셨다. 찢어진 작업복을 입고, 덜컹거리는 중고트럭을 타고 지방 곳곳의 현장을 다니며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창피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일을 열심히 하신다. 그런데도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급식비를 마련해 주셨지만, 동생은 무료급식 대상자로 배식을 받을 만큼 사정이 어려웠다. 월세 집을 옮길 때마다 매번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돈을 빌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가족보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의 씀씀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집안 형편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어머니의 주사였다. 어머니는 술을 마시면 아버지와 늘 싸우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피해 집을 나가는 일이 잦았고, 나와 동생이 싸움의 잔해들을 치워야만 했다. 술을 마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분노로 가득 찼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학교공부는 아예 하지도 않았고 매일 친구들과 거리에서 방황을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반항이었다. 조용한 성격의 동생은 집에서 혼자 게임중독에 빠져 지냈다.
나는 하루빨리 부모님이 이혼하길 원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추석 명절날 어머니를 뺀 나머지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고, 나는 강력하게 부모님의 이혼을 주장했다. 그 후 나의 주장대로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하셨다.
누구보다도 부모님의 이혼을 원했던 것은 나였다. 그런데도 해체된 가족의 모습은 나에게 창피하고 숨겨야 할 콤플렉스였다. 습관처럼 친구들의 가족과 비교를 했고, 겉으로는 화목한 척, 아닌 척 남을 의식하면서 나의 가정사를 숨겼다. 다른 가족에 대한 열등감은 스위트 홈의 환상으로 전이되었다.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아버지와 가정적이고 자상한 어머니.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자녀들. 이렇게 4인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정상성에서 배제되었다는 억압은 스위트홈의 환상으로 바뀌었고, 이것들은 10대 내내 나의 무의식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