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임신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산부인과에서 아주 작은 난황을 확인했을 뿐인데, 나는 그때부터 공식적인 ‘임산부’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임신했는데 오히려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즐거워했다. 혼전임신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다들 들떠있었다. 연구실 선생님들께서는 임신을 확인한 그날 이후로 무거운 물건을 대신 들어주시기도 하고 서로 밥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한 선생님은 임부복을 선물해주시기도 하고 아직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유모차, 아기 띠, 수유쿠션 등을 받게 되었다. 나라에서도 임신했다며 집으로 음식을 보내주었다. 쌀, 계란, 콩, 김, 미역, 우유 등을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집 앞까지 배달해주었다. 또 보건소에선 임산부 등록을 하자 엽산제와 철분제, 손목 보호대 등도 지급해주었다. 마치 아기가 생기길 기다렸던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산부인과에 다녀오면 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임신&출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에게 있어 임신&출산의 과정은 남자들의 군대 경험만큼이나 생생하고 재미있다. 선생님들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임신&출산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산모교실이나 산부인과에 가지 않아도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중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해보자면, 감이당에 Y선생님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셨단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정 분만이 가능하다니! 선생님은 한 10년 전쯤 조산사와 집에서 출산하셨는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편안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하셨다. 다른 선생님은 아가를 낳을 때 힘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며 “엄청나게 큰 똥을 누듯이”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출산이 왠지 쉽게(?) 느껴졌다. 또 임신인 줄 모르고 술자리 약속을 잡았다가 뭔가 이상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했더니 임신이 확인되어서 눈 딱 감고 소주 두 잔만 드신 선생님도 계셨고, 또 임신 막달에 너무 많이 돌아다니셔서 입원해서 꼼짝없이 누워계신 선생님 등등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