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덕으로 비워라
도창법(倒倉法) 장위(腸胃)는 마치 시장과 같아서 모든 물건이 다 들어가지만 그중 곡식이 제일 많기 때문에 ‘창(倉,곳집)’이라고 한다. ‘도(倒)’는 오랫동안 쌓여있던 것을 뒤집어 쏟아서 깨끗하게 씻는다는 뜻이다. 음식에 심하게 상한 일은 없다고 하여도 정체된 담(痰)과 어혈(瘀血)은 날마다 쌓이고 달마다 심해져서 중궁(中宮, 脾胃)은 깨끗할 수 없고 토덕(土德, 소화작용)은 순조롭질 못하게 된다. 속에 병이 있으면 밖으로 나타나니 탄탄(癱瘓), 노채(勞瘵), 고창(蠱脹), 전질(癲疾)이나 이름모를 기이한 병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선철(先哲)들이 만든 萬病元, 溫白元등의 처방은 공(攻)하고 보(補)하는 작용을 겸하여 공교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도창법(倒倉法)의 빠른 효과보다는 못하다. (「잡병편』, ‘토(吐)’, 1006쪽)
위장은 창고처럼 음식물이 거쳐 가는 곳. 제아무리 잘 소화시켜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찌꺼기가 끼어서 뭉치게 마련이다. 하수구에 때가 끼듯이. 하물며 음식을 많이 먹거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여 생기는 식적(食積)도 있을 것이다. 또 분노 등 여러 감정들에 의해 열이 나면 수액이 마르면서 담이 되기 쉽다. 어혈은 혈액이 돌지 못하여 뭉친 것이다. 이들을 제거하는데 위장을 뒤집듯 씻어내는 도창법이 효과 만점이라니 어떤 처방일까?
살찐 황소의 고기 20근, 또는 15근을 큰 가마에 넣고 강물을 부은 다음 삶는데, 물이 다 졸아들면 다시 끓는 물을 더 붓고 삶아야지 찬 물을 써서는 안된다. 그렇게 고기가 푹 삶겨서 끓는 물에 넣으면 다 풀어진 정도가 되었을 때 무명자루에 넣고 짜서 찌거기를 버리고 즙을 받아 다시 가마에 넣고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에 호박 빛이 나도록 졸이면 된다. 복용법은 매번 한 종지씩 마시되 조금 있다가 또 마시고, 조금 있다가 또 마셔서 이와 같이 수십 종지를 마신다. 겨울에는 중탕(重湯)하여 따뜻하게 해서 마셔야 한다. 병이 상초(上焦)에 있으면 흔히 토하게 하고 하초(下焦)에 있으면 흔히 설사시키며 중초(中焦)에 있으면 흔히 토하는 것과 설사시키는 것을 동시에 행하는데, 이것을 사람의 체력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나온 것을 보아서 병의 뿌리가 빠졌으면 그만한다. (위의 책, 1006쪽)
알고 보니 별게 아니다. 소고기를 달인 국물이 아닌가? 먹기도 편할 것 같다. 특이한 게 있다면 강물을 넣어서 끓이는 것. 강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물이다. 그 흐르는 기운으로 찌꺼기들을 몰아내려는 전략이리라. 그런데 왜 하필 소고기일까? “무릇 소라는 것은 곤토를 상징하고 황색은 토의 빛이다. 순한 것을 덕으로 삼고 굳센 것을 본받아 공으로 삼는 것은 황소의 용이다.(1007쪽)” 소는 성질이 유순하고 무거운 걷을 싣는다는 속성에 따라 땅의 성질을 닮았다. 황색 또한 오행상 땅을 뜻한다. 땅은 신체에서는 소화기관 즉 위장이다. 그러니 “고깃국물이 장위에 들어가서는 마치 홍수가 범람하는 것같이 하여 떠도는 것, 걸려있는 것, 묵은 것, 썩은 것들을 다 쓸어”낼 수가 있다. 형체는 사라져도 기운은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소의 덕은 또 있다. 소고기는 위에 좋고 ‘중후하고 화순한 성질을 구비하여’ 허한 기운을 보해준다. 담음을 쓸어낼 때는 진기도 같이 빠져서 허해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보충해준다. 새삼 누런 황소가 고맙게 느껴진다. 자신의 살점까지 다 인간에게 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소. 그러나 아직은 효과를 보기에는 이르다. 이어지는 처방 하나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