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한다. 거울을 본다. 나름 예쁘다. 이 정도면 크게 꿀리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와의 만남에 있어 ‘꿀리지 않는’ 건 아주 중요하다. 만나서도 계속 신경을 쓴다. ‘내 이야기가 별로인 건 아닐까?’, ‘내 인생을 후지게 보고 있지는 않나?’ 이러니 누구 하나 만나는 일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만나기 전부터 후까지 검열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24시간 붙어있는 내 안의 ‘나’에게 말이다.
검열자는 도처에서 기능했다. 그는 늘 나 자신을 ‘부족한 존재’로 몰아세웠다. 행동 하나, 말 하나마다 후회가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했는가 하면, 것도 아니다. 그냥 부족한 그 자체가 ‘나’였다. 그게 ‘나’인데, 어쩔?
이런 ‘나’의 세계에 『안티 오이디푸스』가 침입했다. 첫 장부터 충격과 공포였다. ‘젖가슴은 젖을 생산하는 기계이고, 입은 이 기계에 짝지어진 기계이다.’ 철학책이라면서 ‘나’는 안 보고 내 몸의 일부를 본다. 왜??? 게다가 내 입과 가슴이 ‘기계’란다. 사람인 내가 기계라고? 왜????? 엄청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책은 철학책이긴 했다. 하지만 한동안 나는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다. 나를 조각조각 잘라진 것으로,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보게 만드는 SF호러…….
그렇게 ‘내’가 ‘기계들’이 되자, 내 안의 검열자는 졸지에 백수가 됐다. 이제는 딱히 그가 처리할 문제가 없었다. 내가 뭔가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기계들이 벌이는 짝짓기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기계들은 늘 다양한 짝짓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순간마다 무수한 조합들이 생겨났다. 이른바 기계들의 짝짓기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