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보기. 아니면 마트나 백화점에서 쇼핑하기. 대부분 커플이 하는 지극히 평범한 데이트 코스다. 한 친구는 말했다. 이제 최근에 개봉한 영화는 더는 볼 게 없다고. 데이트할 때마다 영화를 보니 온갖 극장을 섭렵한 그였다. 그래도 만나서 영화라도 보면 다행이다. 남친의 친구 중에는 여친이 영화 보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여친과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단다. 우리는 이 익숙하고도 진부한 코스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어느 가게, 어떤 영화인지만 바뀌었을 뿐, 패턴은 매번 똑같은 연애! 더 맛있는 집, 더 색다른 데이트를 찾아 헤매는 것도 지겨웠다. 자본주의에 더는 놀아나지 않으리!
첫 데이트에는 각자가 쓴 글을 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카페에 앉아 얘기하는 다른 커플들 사이에서 A4 용지를 잔뜩 펼쳐놓고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매주 곰샘의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에로스』를 함께 읽기로 했다. 감이당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던 남친은 내 에세이도 봐주었다. 미리 글을 제출하기 전에 남친의 코멘트를 받고 수정했다. 내가 에세이로 쓰는 책을 남친도 읽었고, 안 풀리는 부분을 같이 고민해주었다. 읽은 책이 많아질수록 이야기할 거리는 더 다양해졌다.
우리는 매주 등산을 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사이로 산에 올랐다. 등산하면 할수록 쌓인 감정이 풀리는 것 같아 좋았다. 사지(四肢)를 움직이면 그 장부와 연결된 생각 또한 변한다는 사실을 이미 동의보감을 통해 배웠던 터였다. 신기한 건 산은 매주 가도 질리지 않았다. 그날의 바람, 꽃이 피고 지는 정도, 또 산을 오가는 사람들까지, 자연은 1년 365일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무엇보다 등산 후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게다가 등산 데이트에 필요한 건 오직 등산화와 간식뿐! 돈도 절약되고, 묵은 감정도 풀고, 또 매주 갈 곳이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합리적인 데이트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