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나는 부모님과 싸우고 대차게 집을 나왔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에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가급적 빨리 나가기 위해. 그렇게 나 혼자 살게 되었다. 억울해서라도 잘 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온갖 인테리어 이미지를 보고 방을 최대한 예쁘게 꾸몄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독립’된 나만의 공간으로! 그렇지만 웬걸, 현실은 ‘고립’에 가까웠다. 일상은 늘 혼밥이었다. 집-회사를 오가며 중간에 들르는 밥집이 달라지는 정도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를 쓰고 꾸민 방에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혼자 잘 살 거야!’ 하며 의지를 불태운 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몸을 경직시켰다. 나만의 공간은커녕, 점점 들어가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다. 관계하지 않는 편안함도 잠시뿐이었다.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릿속에는 별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자! 하지만 그 끝에 도착하는 곳은 늘 쇼핑몰이었다. 백화점, 화장품 가게, 대형마트까지. 집을 나서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사러 가야만 했다. 이 회로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공허함과 외로움이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뭔가 다른 삶을,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다 감이당&남산강학원에 접속했다. 그곳에서 만난 『동의보감』은 그런 내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생명’이라는 이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