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감이당 화요 대중지성)
어릴 때 의대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몸을 공부해서 아픈 사람을 구하는 일이 가장 보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성적으론 어림도 없어서 포기했다. 의대에 못 가면 의학은 공부하지 못하는 걸로 알았다. 의사는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고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했다. 첫 아이를 출산할 때 의사가 수술을 권하면서 서비스처럼 맹장을 떼어 주겠다고 했을 때 감사하게 받아들였을 정도다. 의학은 어려운 것이어서 특별히 능력 있는 자가 아니면 할 수 없고 몸은 의사만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60이 넘어 감이당 화성에서 뜻밖에 『동의보감』을 만났다. 의학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거였어? 의아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내용에 접속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낯선 용어들과 방대한 이론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발제를 위해서는 찬찬히 읽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 어려운 와중에도 단박에 나의 눈길을 끌며 멈추게 하는 대목들이 간간이 나타났다. 그것은 임상 스토리였다. 누구에게 어디서 어떻게 병이 생겼고 어떻게 고쳤다는 스토리. 이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침과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들을 거뜬히 치유하는 걸 보여준다.
뱀이 코나 귓속으로 들어갔을 땐 뱀 꼬리에 뜸을 뜨거나 오줌을 싸서 빼내는 우습고도 오싹한 이야기, 우물에서 시체를 건져내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피난 갈 때 ‘소아의 울음을 멎게 하는 방법’, 흉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먹지 않고 넘기는 법’등 가슴 찡한 이야기도 있다. 부부가 질투하지 않는 법, 성욕에 시달리는 남성들에게는 ‘음경을 수축시키는 법’등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한 고단수의 처방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배가 아픈데 진찰해보니 삶은 계란을 많이 먹어서였다. 토하게 해보니 토사물엔 병아리의 눈, 코 형상이 새겨져 있다. 헉! 또 어떤 사람이 배가 아파 토하게 해보니 머리카락이었는데 이미 눈, 꼬리가 달린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벽에 걸어두니 머리카락만 남았다고. 언뜻 믿기지 않지만 이는 물질과 생명의 경계가 모호함을 말하는 게 아닐까? 동의보감식 생명공학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