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숙(금요대중지성)
水雷 屯 ䷂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初九, 磐桓, 利居貞, 利建侯.
六二, 屯如, 邅如. 乘馬班如, 匪寇婚媾, 女子貞不字, 十年乃字.
六三, 卽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幾, 不如舍, 往吝.
六四, 乘馬班如, 求婚媾, 往吉, 无不利.
九五, 屯其膏. 小貞, 吉, 大貞, 凶.
上六, 乘馬班如, 泣血漣如.
창원에서 인문학공부 공간을 열려고 준비할 때, 곰샘(고미숙 선생님)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든 너의 비전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몇 개월 또는 몇 년 하다가 흐지부지 그만두고 만다고. 아직 시작도 못한 마당에 비전이라니. 그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을 모으고 세미나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전이란 것도 공간 확장을 위한 몇 단계에 걸친 계획 정도로만 들렸다.
그러다 00회에서 진행하는 책읽기 소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주로 서양 철학책을 읽는 모임이었는데, 퇴임한 철학과교수가 아줌마들의 철학책 읽기에 조력자로 참여했다. ‘철학과교수’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아니면 ‘서양철학’이라는 장르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 첫 모임 때 내 마음이 이상했다. 3~4명으로 진행하는 창이지에서의 세미나와 20여명이 참석하는 이 소모임의 규모를 비교하며 질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소소하게 일구고 있던 내 작은 텃밭(창이지)은 언제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이 아니었나? 그냥 내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인가? 그제야 공부모임을 계속하려면 너의 비전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는 곰샘의 말씀이 생각났다.
수뢰둔(水雷屯)은 혼돈의 괘이다. 모든 것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할 때, 하늘과 땅 사이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감(坎)괘를 상징하는 구름과 진(震)괘가 상징하는 우레가 함께 일어나 음과 양이 막 교류하기 시작하나 아직 소통되어 펼쳐지지는 못했으니 둔이다. 그러니 둔괘는 어떤 일이 막 시작된 초창기의 험난함에 대한 이야기다. 초목이 막 돋아났을 때, 학생이 막 사회에 나갔을 때, 단체가 막 활동하기 시작할 때의 혼돈.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이지 시작 무렵에 겪은 이야기다 보니, 둔괘 중에서도 특히 초효, 혼돈의 시작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