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K는 자신이 원했던 한 계단을 올라갔다. 남들에게는 별 것이 아닐지언정, 그에게는 분명히 상승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둘은 너무나 기뻐했고,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은 자세로 공부하며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요즘 내가 공부하고 있는 주역에 지풍승(地風升)괘가 있고, 지풍승괘 오효를 보면 “貞吉 升階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길하니, 계단을 오르는 듯하다.)” 라는 효사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뜻을 공자님은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길하니, 계단을 오르는 듯한 것은 뜻을 크게 얻는 것이다.(象曰 貞吉升階 大得志也)”고 풀고 있다. K는 지금까지 경제적 어려움과 2시간짜리 강사라는 사회적 평판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시험과 평가제도’라는 자신이 택한 분야의 연구를 성실하게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연구의 양을 늘리기 위해 스스로 연구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을 하지 않았고, 단 한 강좌의 강의를 위해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때론 비틀거렸지만, 결국 바른 길을 걸어왔다. K에게 일어난 오늘의 상승은 다름 아닌 그 동안 그의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한편 몇 년 동안 ‘대중지성’의 현장에 있었던 나 역시 나름 공부에 매진했다. ‘대중지성’의 현장에 자신만의 영역, 소위 전공은 없다. 나는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에서 ‘루쉰’, ‘푸코’, ‘공자’, ‘소세키’, ‘카잔차키스’, ‘연암’ 등을 공부했으며, ‘니체’, ‘주역’, ‘불교’는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나의 공부이다. 그 과정에서 ‘니체’와 ‘주역’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 역시 내 공부와 삶에서의 상승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상승을 원한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과 세상을 활기차게 만들고,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상승이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개인의 삶과 사회의 질서를 왜곡시키지 않으며, 그것을 보는 주변을 기쁘게 만들려면 지켜야할 윤리가 있다. 이 윤리를 『주역』은 잘 말해주고 있다.
지풍승(地風升)괘는 땅 가운데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다. 공자님은 이 상을 보고 “군자가 덕을 따라서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象曰 地中生木 升 君子以 順德 積小以高大)고 말하고 있다. 정이천은 좀더 자세히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 “선을 쌓지 않으면 명예를 이룰 수 가 없다. 학업의 충실함과 도덕의 숭고함이 모두 축적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작은 것을 축적한 것이 높고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근거이니, 이것이 상승의 뜻이다.”(정이천 주해/심의용 옮김, 『주역』, 921) 그렇다! 자신의 삶에서 상승을 원하는 사람은 ‘주역’의 가르침을 따라 ‘나무가 땅 속에서 생겨나, 성장하여 위로 상승’하는 자연의 이치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 모습을 잘 관찰하여 ‘때에 따라서 자신을 잘 수양하고, 작은 것을 바르게 누적한 사람만이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K의 삶이 이랬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질적으로 완성되기 전에 조급하게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지 않았다. K는 대학 교수라는 안정적인 지위보다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시험과 평가제도’가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한 편의 연구’와 ‘한 시간의 강의’가 더 중요함을 말하고 실천해 왔다. 그의 작은 상승은 이러한 실천의 성과이고, 그는 이를 계단 삼아 앞으로도 연구와 강의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그래서 그도 기쁘고 나도 기쁘다! ‘대중지성’이라는 광야로 나온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 내 공부와 삶은 대중이 지성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현장에 있다. 나는 앞으로도 대중이 전문가들의 지식에 의지하고, 그것을 감상하며 구경하는 것이 아닌 대중이 직접 지성의 현장으로 들어와 앎을 생산하고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공부와 삶의 현장에 있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한 권의 책’, ‘한 편의 글’, ‘한 시간의 세미나’가 중요하다는 자세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이런 나를 K도 기쁘게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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