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때 취한 방식은 육이효에 가깝다. 육이효는 지위로는 다른 효들보다 결코 높지 않다. 단 중정(中正)한 자리에 있다. 누드글쓰기의 튜터란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음효인 이효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주인공(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자기 길을 가도록 안내한다. 단, 강력한 상대와 상대할 때는 그의 살에 내 코가 파묻힐 만큼 깊숙이 물어뜯는다(六二 噬膚 滅鼻). 오~ 이것은 살벌한 동시에 에로틱한 표현이 아닌가! 루쉰이 묘사한 적수끼리의 피 마르는 대결이 그렇듯, 온 힘을 다한 공격은 자기를 잊는 몰아의 경지와 상통한다. 코는 얼굴에서 가장 높고 중심에 있는 것, 그 코가 적수의 살에 파묻힐 지경이면 서로간의 경계선 또한 뒤죽박죽 헝클어진다. 씹어 삼키기 이전 물어뜯는 단계에서 이미 섞이고 있다! 이것이 서합의 시대, 강력한 초효를 타고 앉은 이효의 관계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과연 이렇게 열렬히 그를 물어뜯었던가? 거기까진 자신 없다. 하지만 나름 필사적으로 이빨을 박았다.^^;;; 이대로라면 모든 멤버들이 그라는 전문가에게 의존하려들 테고 그래서야 이 프로그램의 의미가 없다. 멤버들에게 질문 이전에 자기 말로 풀라고 강조하고, 그분의 진단(?)에 대해서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분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 왜 저한테는 공격적이신 거죠?” 헉, 예상치 못한 솔직한 질문이었다. 나도 뒷걸음치지 않고 맞받았다. “선생님은 프로이시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의존하고 싶어져요. 저는 그렇게 둘 수 없구요. 제 태도가 그래서 좀 공격적이었나봐요.”
서합괘는 화뢰서합, 즉 불과 번개로 이뤄진 괘다. 불은 밝게 보는 지혜를, 번개는 행동 혹은 힘을 뜻한다. 상황을 환히 보면서 분명하고 적절하게 힘을 써야 할 때라는 말이다. 그는 이곳에 전문가가 아니라 배움을 구하는 학인으로 찾아왔으나 저도 모르게 익숙한 포지션을 취했고, 나는 튜터로서 물러서지 않고 성의껏 그 지점을 물어뜯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코를 박으며 깊숙이! 그 결과는 예상보다 상쾌했다. 서부 멸비 무구(噬膚 滅鼻 无咎), 허물이 없어지도다! 모두 앞에서 펀치를 한 방씩 주고받았지만, 그 후로 우리는 한결 편해졌다. 나는 진행자로서, 그는 프로로서 갖고 있던 자의식에서 놓여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