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에게 『동의보감』 텍스트가 왔다. 처음엔 깜놀! 이천오백 쪽이 넘는 분량에다 글자들은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차는 100p가 넘었고, 책은 살상 무기로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비주얼을 자랑했다. 그래서 며칠간은 책을 펼칠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 목차를 지나 ‘신형장부도’를 보게 됐다. 그걸 본 순간 푸핫! 둥글둥글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등장하는 것이다. 코에는 피어싱 같은 걸 하고 있고, 배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몸에는 요상한 무늬들이 있는.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책장을 넘겼다. 책 속의 내용 또한 편견처럼 고리타분하며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신비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펼쳐진 ‘신세계’였다.
『동의보감』을 만나면서 내 ‘몸’을 떠듬떠듬 관찰하기 시작했다. 정(精), 기(氣), 신(神), 오장육부, 혈, 진액, 담음…, 오줌과 똥까지. 새로운 언어를 통해 몸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몸속에는 다양한 것들이 우글우글 좌충우돌 뒤섞여 작동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체가 완전 무질서하고 뒤죽박죽인 건 아니었다. 물리 법칙과 원리가 존재했다. 그리고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식생활과 운동량, 생활 리듬과 감정 패턴 등을 몸의 반응과 매칭시켜 본다. 내 몸은 하나의 텍스트가 되었고, 나는 몸과의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몸 자체가 무언가와 ‘연결’되고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은 심장을 돕고, 심장은 폐를 제어하고, 비장은 폐를 돕고, 신장은 심장을 제어한다…. 상생과 상극 작용을 통해 오장육부는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다.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기관은 없었다. 그래서 하나에 이상이 생기면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오장육부만일까? 아니다.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우주와 연결된 존재이다. 하늘과 머리, 땅과 발, 사계절과 사지, 오행과 오장, 육극과 육부, 샘물과 혈 등이 서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몸은 얼마나 접속을 원할까? 생명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자의식과 인정 욕망에서 벗어나 타자와 소통하고 접속하는 삶의 기예를 『동의보감』을 통해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