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와 달리 연암은 여행을 하며 매순간 쓴 메모와 원고들로 보따리를 가득 채워간다. 청나라 사람들이 똥덩어리처럼 하찮은 물건을 다루는 모습부터 황제의 스승 판첸라마를 만나고 길거리에서 기묘한 마술쇼를 보던 이야기까지! 뭔가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연암을 상상해보다가 문득 나 자신이 글에 대해 가졌던 조바심을 떠올렸다. 정신이 확 들었다. 연암은 자신이 만나는 세상 자체가 글쓸거리였다. 연암의 시선은 언제나 남들을 향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은커녕, 오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움켜질 생각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동안 나는 내가 지내고 있는 연구실, 남산강학원과 감이당 생활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4년이 다 되어가는 연구실 생활은 익숙하고 안전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적게 벌지만 내 생활을 감당할 수도 있었고, 공부는 평생해도 끝나지 않을 양이었다. 그에 비해, 연구실 바깥은 전혀 살만해 보이지 않았다. 혼밥, 혼술이 너무 흔할만큼 사람들은 외롭고 각박해 보였다. 거기다 요즘은 취직도 힘들고, 운이 좋게 취직을 한다 해도 바로 퇴사생각을 하고, 언제 그만둘지 몰라 불안해 보였다. 그런 세계로 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연구실 생활을 놓치면 나는 이 애매한 나이에 취직은커녕 알바자리만 전전하다가 비참한 끝을 맞이할 것 같았다.
헉, 그럴 순 없었다. 나는 연구실 안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 내 가치를 인정받아야 했다. 내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스펙 쌓듯 나를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더 많은 것들을 했다. 더 많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활동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늘 다음, 그 다음을 생각하느라 주위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는 궁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시간은 물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조금만 길어지면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면서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전전긍긍했다. 내 평판이 어떤지는 신경써야했기 때문이다. 피곤했다. 얼른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만을 향한 세상에는 오로지 불안과 긴장, 그리고 피곤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