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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리포트]뎅기열을 공부하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0-27 17:04
조회 : 177  




뎅기열을 공부하다



김 해 완

9월의 뻬스끼싸

9월 하순, 동맥 해부학을 막 끝내고 우리 모두 죽어가는 얼굴로 정맥 해부학에 돌입하던 무렵이었다. 갑자기 희소식이 들렸다. 수업을 잠시 멈추고 뻬스끼싸(Pesquisa)에 돌입하겠다고 학교가 공표했던 것이다.

뻬스끼싸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문의, 탐구, 조사를 뜻한다. 그러나 쿠바의 의대에서 ‘뻬스끼싸’를 한다는 것은 연구실에 앉아서 신체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게 아니다. 할당된 지역에 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각 가정의 건강에 대해 문의하고 보고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 지역에 전염병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뻬스끼싸란 당국의 입장에서는 학사일정을 멈추고 학생들을 동원할 만큼 전염병 사태가 심각하다는 소리다.

1학년 때도 뻬스끼싸를 몇 번 했었다. 뻬스끼싸 때문에 일주일이나 학교를 쉬었을 때는 얼씨구나 어깨춤을 추면서 밀린 공부를 몰아서 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뭔가 촉이 왔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개학한 지 겨우 3주차였다. 2주차에도 우리는 당일치기 뻬스끼싸를 했었다. 아바나의 쁠라야(Playa) 지역에서 뎅게(Dengue), 한국어로는 뎅기열이 퍼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우 일주일 만에 또 다시 뻬스끼싸에 소집되었다는 것은,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동원된다는 것은 사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문도 흉흉했다. 석유 부족 사태 때문에 소독차가 예전처럼 자주 다니지 못해서 이 사단이 났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다가 아바나 대학교에서는 중국인 유학생이 뎅기열로 실제로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물론 이 친구가 원래부터 몸이 약했고, 출혈성 뎅기열 증상을 지병이었던 기관지염의 증상과 착각하는 바람에 병원에 늦게 도착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뎅기열이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서 기세를 떨쳤던 적은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 갑작스러운 일탈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순환계를 공부하다가 토하기 일보 직전까지 간 찰나였다. (다들 신경계나 내분비계보다 순환계가 더 쉽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ㅠㅠ.) 뻬스끼싸 덕분에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오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정맥 해부학을 예습해놓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뻬스끼싸 기간 동안 나와 함께 자주 공부하는 브라질 친구 라리사의 집에 가서 매일 공부를 했다. 그렇게 뻬스끼싸도 정맥 공부도 무사히 끝난 토요일 밤, 우리는 가깝게 지내는 앙골라 친구인 아비가일과 그녀의 남자친구를 초대해서 다 함께 프로젝터로 <기생충> 영화를 관람했다. 쿠바에서 포르투갈 자막을 깔고 한국 영화를 보는 것, 그것도 삼대륙(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온 다양한 관중들과 <기생충>을 함께 보는 경험은 신선하기 그지 없었다. 다들 영화에 충격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학기 초에 찾아온 일주일의 노동기간이 알차게 끝나가는 듯 했다.

10월의 뎅기열

뻬스끼싸가 끝났어야 하는 그 주 주말, 우리는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뻬스끼싸가 일주일 더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뻬스끼싸를 이주일이나 하게 되다니! 이제는 수업을 쉰다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니었다. 몇 년 전에는 전염병이 너무 심해서 뻬스끼싸가 한 달 동안이나 진행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수업을 막무가내로 쉬어버리면 이 빈 구멍은 오롯이 학생들의 부담이 된다. 수업 일수가 줄었다고 해서 커리큘럼을 줄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으니 이번에는 심장만 배우고 폐는 스킵하자고 의대생들에게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눈에 훤했다. 교수들은 두세 개의 강의를 한 강의 안에 우겨넣을 것이고, 그것을 소화하는 것은 우리 몫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 불평을 알았던 것일까. 나는 이주차 뻬스끼싸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못하게 되었다. 내가 바로 뎅게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증상은 화요일에 시작되었다. 오전에 뻬스끼싸를 마치고 집에 와서 점심을 해먹었다. 오후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던 터라 그 전까지 공부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왔다. 아니, 기습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 정도로 느닷없는 노곤함이었다. 우선 낮잠을 자보기로 했다. 낮잠을 두 시간이나 잤지만,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선잠을 자는 내내 바위가 몸 전체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온 몸에서 고열이 났다. 체온계 없이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열이었다. 열! 뻬스끼싸를 하면서 우리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열증! 감기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뎅게일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도 넘게 매일 같이 뎅게 발생지역을 쑤시고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뎅게에 걸렸다고? 매년 뻬스끼싸를 하다가 도리어 뻬스끼싸 대상자가 되어버리는 바보 같은 의대생들 중 한 명이 되었다고?

뎅게에는 여러 증상이 있다. 고열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관절통이나 발진 같은 다른 증상들은 아직 내 몸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뎅게라고 확신할 수 없는 단계다. 나는 이것이 제발 뎅게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친구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뎅게가 맞다고 말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기 직전에 신분증과 여권, 의료보험증, 핸드폰 충전기, 그리고 시간을 죽일 때 읽을 책까지 가방에 집어넣은 것을 보면 사실 나는 내심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네 집은 멀지 않았다. 그 멀지 않은 길을 가는 와중, 두 번째 뎅게 증상이 나를 덮쳤다. 관절통이었다. 사람마다 관절통이 나타나는 양상이 다른데, 나 같은 경우는 엉치뼈로 왔다. 하체의 골반과 상체의 척추를 연결하는 우리 몸의 대들보와 같은 엉치뼈. 여기가 아프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리고 하필이면 엉치뼈의 ‘서든 어택’은 내가 쿠바의 마을버스인 구아구아를 타고 있을 때 찾아왔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여느 쿠바 운전수가 그렇듯이 거칠기 그지없는 ‘마초 운전 스타일’을 구현하고 있을 때 말이다.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생명도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아파서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이를 일부러 흔들어주는 이 사려 깊은 행위를 보라. 온 세상이 내게 나는 뎅게에 걸렸다고 말하는 듯했다.

구아구아에 내릴 때조차 나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고열, 근육통 및 관절통은 독한 몸살감기에 걸렸을 때도 나타는 증상이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그냥 몸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힘이 빠져서 길거리에 앉아있는 나를 잡으러 온 친구는 친절하게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너 지금 뎅게 걸린 거라고. 사실 그 즈음 되었을 때 내 몸에서는 이미 세 번째 증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높은 안압으로 인한 안구 통증이었다. 이 역시 뎅게의 특징이었다.

하필이면 엉치뼈의 ‘서든 어택’은 내가 쿠바의 마을버스인 구아구아를 타고 있을 때 찾아왔다

나는 울고 싶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뎅게 발생율이 치솟은 지금, 병원에 가면 나를 무조건 입원시킬 것이다. 뎅게 바이러스를 몸에 내재하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아직 감염되지 않은 모기에게 바이러스를 무료 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렇지만 입원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침대보도 없는 침대와 비누도 없는 화장실을 갖춘 병실로 보낼 것이었다. 그 병실을 9명의 쿠바인들과 나눠쓸 것이었다. 음식은 먹을 수 없는 수준으로 나올 것이었다. 9명의 쿠바인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동안, 가족이 없는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살기 위해 먹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쿠바 환자들처럼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뎅게가 호전되기 시작할 때까지 1주일 동안 죽은 듯이 집에서 지내면 될 것이었다. 모기가 못 들어오게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말이다. (이런 탈출 환자들 때문에 우리가 뻬스끼싸에 동원되는 것이다.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당사자가 되니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지만 곧 나는 이 생각을 접었다. 나 스스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열 때문에 정신이 흐려졌고, 허리 관절통은 마냥 심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집에 가봤자 결국 다시 병원에 실려가게 생겼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항생제와 진통제는 뎅게에 걸렸을 때는 써서는 안되는 것들뿐이었다.

결국 나는 외국인 전용 의료보험을 쓰기로 했다. (보험을 한 달 전에 사두었는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게 되었다.) 외국인 병원에 가면 나를 입원시킬지언정 최소한 침대보는 있는 병원으로 보낼 것이었다. 친구는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피검사를 하고 앰뷸런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한 시간 반 동안, 내 몸은 ‘뎅게’와의 전쟁을 요란하게 선언했다.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앉을 수도, 설 수도, 누울 수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간호사에게 사정해서 진통제 주사를 한 대 맞고 대기실 의자 위에 대자로 뻗고 말았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벽에 걸려서 붉은 빛으로 깜빡거리는 디지털 시계와 달력이 보였다. 오늘은 10월 1일이었다. 아, 10월이 시작되었구나. 참 이번 년도는 더디게도 가는 구나.

뎅게란 무엇인가?

여기서 잠깐 뎅게를 소개하겠다. 뎅게는 한국에는 없는 질병이다. 열대 기후에 사는 모기만 퍼트릴 수 있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염병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퍼지지 않고, 오직 모기와 사람 사이에서만 퍼질 수 있다. 그러나 뎅게 모기에게 물린 사람은 일주일 동안 뎅게 바이러스를 보관하는 창고가 되고, 아직 뎅게와 접촉이 없는 깨끗한 모기들은 이 사람의 피를 빨아들임으로써 바이러스를 얻어간다. 모기가 날아다닐 수 있는 활동 반경이 그렇게 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특수한 지역에 뎅게가 퍼지게 된다.

뎅게는 위험할까? 수치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치사율은 1%다. 99%의 사람들은 일주일을 기다리면 낫는다. 아주 불쾌하고 파워풀한 증상들을 코스 요리처럼 차례로 겪기는 하겠지만, 그 사이에 면역계는 뎅게 바이러스를 물리칠 항체를 만들어낼 것이다. 마침내 모든 요란법석을 거치고 혈소판 수치와 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뎅게를 이겨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뎅게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치료제도 없다. 병원에 가도 진통제만 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뎅게 환자들은 굳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것일까? 오직 전염성 때문일까? 단순히 격리조치만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사실 상황은 더 복잡하다. 치사율이 1%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뎅게 바이러스에 몸이 반응할 때 드물게 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를 출혈성 뎅게라고 한다. 몸 내부에 출혈이 생기면 순환계의 혈압이 떨어진다. 그러면 생명을 부지하는데 필수인 핵심 장기들까지 피가 돌지 못하게 된다. 피가 부족한 장기에게는 쇼크가 온다. 장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세포들이고, 그 자체로 생명인 세포가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산소와 영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포가 죽는다는 것은 장기가 죽는다는 것이다. 장기가 죽으면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 기능이 멈추는 것이고,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이 유기체의 죽음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출혈은 상태가 호전되는 것처럼 보인 직후에 찾아오기 때문에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뎅게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이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내부 출혈로 쇼크가 왔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십중팔구 죽음이 이르므로.

대다수의 환자들은 운 좋게 출혈성 뎅게를 피해간다. 그래서 쿠바인들도 뎅게에 걸리면 병원보다는 집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렇게 뎅게에서 낫고 나면 이제 평생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면역계가 뎅게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완성시켰으니, 이제 게임은 끝난 것 아닌가? 한마디로 답하자면, 아니다. 뎅게 바이러스에는 총 네 가지 타입이 있다. (현재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타입이 더 늘어난 게 아니냐는 무시무시한 소문도 돌고 있다.) 우리의 면역계는 이 중 딱 한 가지 타입에만 항체를 만들 수 있다. 즉, 이 특수한 뎅게 타입에 대해서는 평생 동안 면역이 되지만, 나머지 타입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두 번째로 뎅게에 걸릴 때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면역계가 훨씬 더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덕분에 출혈성 뎅게가 발생할 확률도 훨씬 더 높아진다. 그래서 두 번째로 뎅게에 걸렸을 때는 반드시 병원으로 직행해야 한다.

뎅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열대 섬나라에 살면서 어떻게 모기를 피해갈 것인가? 모기기피제를 매일 같이 뿌려대었다가는 피부가 먼저 상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이 땅을 택했으니, 이곳의 풍토병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병은 몸과 자연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단지 최선을 다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수밖에. 앞으로 쿠바에서 4년 반을 더 살아가는 동안 뎅게에 또 걸릴 수도 있고 뎅게 친구인 지카 바이러스에 걸릴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몸으로 병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

그렇게 나는 IPK(Instituto de Medicina Tropical Pedro Kaurí)라는 병원에 일주일 간 입원했다. 첫날밤에는 열과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두 번째 날에는 기력이 없어서 잠만 잤다. 그 후로는 병원 밥이 입맛에 안 맞아서 의도치 않게 ‘세미 단식’을 했다. 바삭바삭하게 튀긴 닭과 바다의 향미를 잔뜩 머금은 생선은 내게 구토만 유발할 뿐이었다. (이 또한 뎅게의 증상이다. 식욕 부진과 메스꺼움.) 매일 매일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는 떨어졌고, 우울한 원숭이처럼 늘어져 있는 나를 보며 의사는 결국 수액을 꼽았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8일 째에 마침내 상승한 혈소판 수치를 보고 의사가 퇴원을 결정했을 때에는 온 세상에 광명이 가득 찬 듯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입원한 바로 다음 날, 함께 의대에서 공부하는 한국 동생인 현우는 우리 집에 들려서 내 물건들을 챙겨서 병원에 와주었다. 내가 전공서적을 잔뜩 갖다달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화를 내긴 했지만. (무거워서가 아니라, 아픈데 무슨 공부를 하냐는 핀잔이었다. ㅋㅋ.) 그리고 옆에 빈 침대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함께 있어주었다. 그 다음에는 한국인 언니인 세미 언니가 죽을 만들어서 나를 방문했다. 경제를 공부했지만 앉아서 하는 일은 안 맞는다며 남미 여행을 떠난 자유로운 영혼인 언니는 현재 아바나에 ‘세미 투어’를 창설했다. 언니가 가져다 준 죽에는 심지어 새우와 문어(!!!)가 들어있어서 나는 마음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언니와 함께 지낸 룸메이트가 크게 아파서 수술을 했는데, 룸메이트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달려와 간호를 해주셨다고 한다. 이 문어와 새우도 어머니가 직접 사서 남겨놓고 가신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국에서 내 월간 중앙 연재를 읽어보신 터라 내 안부를 물으셨고, 그 덕분에 세미 언니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틀 뒤, 세미 언니는 볶음밥과 된장국을 들고 한 번 더 찾아왔다. 버스 사정이 좋지 않은 아바나에서 내 병원까지 오려면 왕복 4시간이나 소요되는데도 말이다.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브라질 친구 라리사도 직접 만든 닭볶음밥을 들고 방문했다. 라리사는 현재 현우와 산다. 개와 고양이처럼 아웅다웅하면서 매일 싸우고 또 어울린다. 둘 다 나를 만나면 서로에 대한 탄식 늘어놓는데, 덕분에 라리사와 수다도 두 시간이나 실컷 떨 수 있었다. 아, 산타 클라라에 사는 내 선배인 말레이시아 의사 언니도 나를 방문해 주었다. 마침 아바나에 있었는데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이다. 말레이시아 언니를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 원상이의 몫이었다. 원상이는 이제 막 아바나 의대에 입학한 또 다른 한국 동생이다. 오토바이가 있어서 우리가 종종 이동수단을 부탁하곤 하는데, 이 날랜 오토바이를 타고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두 번이나 와주었다. 학교에서 알게 된 쿠바 친구들도 두 명 찾아왔다. 혹시라도 입원 환경이 안 좋은 곳일까봐 휴지 두 개와 생수까지 알뜰하게 챙겨왔다. 역시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글로벌하게 간호를 누려보는 호사라니!)

마지막 날에는 제프리를 통해서 알게 된 말레이시아 대사관 아주머니도 나를 찾아오셨다. 이사할 집을 찾고 있는 이분께 내가 친구네 집을 소개해드리면서 가까워졌었다. 그런데 이 분이 오시고 15분 후에 퇴원 명령이 떨어졌다! 아주머니는 손뼉을 치면서 잘 되었다며 나를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퇴원한 직후, 뎅게는 마지막으로 내게 선물을 안겨주었다. 뎅게의 또 다른 대표적인 증상, 발진이 일어난 것이다. 손발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온 몸이 가려워서 잘 수가 없었다. 이로써 나는 내가 뎅게에 걸렸다는 것을 120%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정말로 괜찮았다. 나는 집에 있었고, 내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부엌에는 밥이 있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 다른 한국 언니인 송화 언니가 반찬을 들고 날 찾아올 예정이었다. 행복했다. 행복이란 별 게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다가, 여러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무사히 되돌아오면, 내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쿠바살이도 할 만한 것이다. 뎅게라는 병에 걸릴 위험만큼이나, 함께 사는 사람들의 애정도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렇게 병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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