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8년도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태어났다. 평소 시대별 ‘대학 가요제’ 영상을 즐겨보는데, 88년도 강변가요제에서 수상한 이상은의 ‘담다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촌스러운 청바지에, 탬버린(^^). 거기다 돌발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를 저 춤사위는 대체 뭐지? 거기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노래가사인데도 슬픔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리듬이 흥겹다. 지금처럼 춤이 귀엽고 섹시하게 표현되지 않을 뿐더러, ‘담다디’라는 가사 하나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표현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다양체’적인 노래란 말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80년대 가요계는 지금처럼 그룹이 아닌 밴드가 많았다. ‘시나위’ ‘부활’ ‘건아들’ ‘송골매’ 등. 밴드는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악기도 하나의 얼굴성을 갖는다) 노래한다. 노래를 하는 모습도 지금과는 다르다. 아이돌 그룹은 카메라 정면만을 응시하며 또렷!하게 노래를 하는 반면 이들은 뭔가에 홀린 듯, 약간은 미친 듯 여기저기 주위를 맴돌며 노래를 부른다. 자신들이 겪은 삶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가장 놀라운 것은 이들의 얼굴에는 인위적인 장치들이 없다는 것이다. 배철수나 전인권이 부르는 영상을 보라. 긴 장발에 수염, 메이크업 따윈 없다. “이분들은 씻지도 않고 노래하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노래, 가사, 얼굴. 어느 것 하나 기표작용적인 얼굴성이 없다. 아니, 오히려 독재적인 기표로부터 달아나려는 광기의 얼굴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