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헌(감이당 금요대중지성)
天水 訟 ䷅
訟 有孚 窒惕 中吉 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 三百戶 无眚.
六三 食舊德 貞 厲 終吉 或從王事 无成.
九四 不克訟 復卽命 渝 安貞 吉.
九五 訟 元吉.
上九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
나는 40대 중반에 마음을 많이 두고 헌신했던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 내가 마음을 많이 둔 것도 그렇지만 나로 인해 그 일이 새롭게 성과를 내고 있었고, 그 일과 관련해 맡고 있는 직위와 책임도 막중했기에 그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은 당시 나로서는 참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도 이렇게 나가지 말고, 힘들겠지만 같이 일하면서 싸워보자고 나를 붙잡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들과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그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그 때 나는 왜 싸우지 않았을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싸우려는 마음보다 왜 그 자리를 떠나려는 마음이 나에게 더 크게 작용했을까? 최근까지 이 사건과 관련된 나의 마음을 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다. 나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쨌든 결과가 그렇게 되었고, 나는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잘 살아가지 않느냐’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이런 나에게 천수송 괘, 구사효는 그때까지 나의 공부와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내 인생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도 알려주었다.
不克訟 復卽命 渝 安貞 吉.(다툴 수 없으니, 돌아와 명命에 나아가고, 마음을 바꾸어 안정을 이루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다.) “구사효는 양강한 자질로 건괘가 상징하는 강건한 형체에 자리하여 중정을 이루지 못했으니, 본래 다투려고 하는 사람이다.”(정이천, 『주역』, 192) 실제로 나는 당시 ‘입학사정관제’라는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를 현장에서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당시로서 이 제도가 아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명분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나는 참 강하게 그 일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그 반대 세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제도를 확산시키고 정착해야 한다는 명분과 논리, 그리고 현장에서의 실천력에서는 이들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밥그릇(직위)에 금을 내는 것으로 응대했다. 이 사건이 당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새로운 제도와 관련된 싸움이었다면, 그 싸움은 아마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의 형국은 조직에서 나의 직위와 관련된 것이 되어버렸기에 나는 그 싸움을 더 이상 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응대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송사는 결코 이길 수 없으니, 절대로 끝까지 싸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천수송 괘의 핵심 가르침이다. 의리상 싸워야 한다면 주역에서도 아마 끝까지 싸우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역은 그 싸움이 “의리상 다툴 수 없다면 다투지 않고 도리어 각자의 명 혹은 정리正理로 돌아가, 그 안정을 이루지 못함과 올바르지 못함을 바꾸어 안정과 올바름을 지키면 길할 것이다.”(정이천, 『주역』, 193)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