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소녀’가 무엇이기에? 과거는 분명 어떤 기억이자 습관으로 나라는 주체를 총체적으로 이루고 있기에, 한 시절이 지나간 것을 소녀의 죽음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이 비약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럼 여기서 들뢰즈의 개념을 불러와 보자.
들뢰즈는 『천의 고원』에서 하나의 주체성 또는 견고한 인식에서 벗어나는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의 규정성에서 다른 무엇으로 이행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여성-되기다. 들뢰즈가 말하는 여성이라는 개념은 정확히는 ‘소녀’다.
결혼하기 전 명절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절하는 사람(남자)도 아니고 일하는 사람(며느리)도 아닌 자, 그래서 한 명으로 셈해지지 않아 와도 되고 안와도 되는 그런 존재다. 그냥 주변에 어슬렁 거리다가 설거지나 돕고, 때마다 ‘시집 안가냐’는 소리를 듣는다.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임시로 머무는 주변인인 것이다.
홍루몽의 소녀들도 대관원이라는 가문의 내밀한 공간에서 꽃 같은 대접을 받으며 키워지지만, 결국 대관원은 가문의 주변부였고 그 곳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들의 운명은 결국 가문들 간의 거래나 야합에 의해 강제적으로 결정된다. 그 순간이 되기까지 잠시 머무는 가부의 대관원은 규정되지 않은 존재들의 집합소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닌 채, 아무도 아닌 존재로 있기. 우리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어떤 확실한 정체성을 고대한다. 그래서 취직이 되면 기뻐하고, 결혼을 하면 기뻐하고… 아무튼지 뭔가가 되면 기뻐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있는 것에 어떤 의미부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만을 보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옥이는 정반대의 눈으로 사건을 본다. 소녀는 죽고 주체에 갇히는 것이 보옥이가 보는 결혼이라는 사건이다. 어떤 존재의 생명력이 사라지는 순간으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