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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의 탄생]출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1-27 22:43
조회 : 92  





출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이소민(감이당)

나는 임신부인가 환자인가

앞서 말했듯, 아이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내 안에 생명을 확인한 후, 나는 이 아이를 무조건 보호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임신한 후의 일상은 너무나 편안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잠이 오면 자고, 살살 요가하고, 책 읽고, 조금이라도 신경이 쓰일만한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일할 때나 글을 쓸 때, 결과물에 집착하기도 하고 한 번이라도 칭찬받아볼까 욕심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TV 프로그램과 쇼핑에 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임신을 하자 전혀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오로지 내 안에 물고기(아기의 태동을 느낄 때면 꼭 물고기가 있는 것 같았다.)와 어떻게 지낼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에 온갖 관심이 쏠렸다. 아무 결과를 내지 않아도, 칭찬받지 않아도 충만한 날들이 이어졌다.

임신 5주 차,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한 후 너무나 당연하게 여러 코스가 이어졌다. 남편과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가야 했다. 임신 초기에는 질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했다. 처음 간 산부인과에서 ‘굴욕 의자’라 불리는 진찰대에 누워 아기집을 발견했던 기분이 마냥 좋고, 감격스럽지만은 않았다. 차라리 아기가 자라면 상황은 나아진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배 위로 보는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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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로 찍은 겸제의 초! 리즈 시절

병원에 갈 때면 나는 환자, 남편은 보호자가 되었다. 아이를 임신한 것이 마치 병인 것처럼 꾸준히 상태를 체크했다. 혹시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병원에 가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주 검사해야 하나?”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는 초음파상 아이의 머리둘레, 허벅지 뼈 길이, 양수의 양으로 예측한다. 의사의 “정상이네요, 잘 크고 있어요”라는 말에 안심하며 돌아왔다. 검사는 출산 전까지 이어진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병원에 가는 횟수도 더 많아졌다.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하라는 대부분의 검사를 진행했다. 그중에서 왠지 하기 망설여졌던 검사가 있다. 바로, 기형아 검사다.

임신한 지 10주쯤 되었을까. 담당 의사는 말했다. 다음 진료 때 1차 기형아 검사를 할 것이니 미리 서명해두라고. 순간,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태아가 건강하게 자라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검사해온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평균치에 비추어 한 번의 촬영으로 정상, 비정상으로 판단되는 게 불편했다. 그리고 만약 기형아 검사를 해서 아기에게 어떤 선천적 문제가 발견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아기에게 장애가 있으면 무조건 지워야 하는 걸까?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시간은 흘렀고, 기형아 검사도 여느 당연한 산전 관리의 순서처럼 진행했다. 남편과 내가 수많은 검사 속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진료 예약을 늦춰서 최대한 병원에 적게 가는 것뿐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만나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는 진통이 상상되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생겼고,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마치 시한부 환자처럼 가끔 불안해졌다. 한편, 진통이 시작되면 내가 헐크로 변해버릴까 걱정되었다. 그리고 혹시나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이제 더는 나를 ‘여자’로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통제할 수 없는 진통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고통을 초래한다.”

(『농부와 산과의사』, 녹색평론사, 미셀 오당 저, 62쪽)

그렇다. 출산도 알지 못하기에 두려운 것이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이미지들이 증폭되어 공포심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했다. 직접 사실을 확인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뿐. 흔히 임신하면 식단을 조절하고, 요가를 하고, 영양제를 먹는 등 ‘몸에 좋은’^^ 것들을 챙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출산에 대한 마음의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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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의 출산을 해볼 것인지 고민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병원에서 ‘자연분만’ 한다는 것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 걸까? 임신부들은 이제 합성 옥시토신인 촉진제를 시작으로 무통 주사를 맞고, 아이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회음부 절개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잘 내려오지 않을 경우엔 위에서 배를 누르거나, 기구를 이용해서 아이를 빼내곤 한다. 그러니까, 의료진에 의해 거의 아이가 꺼내지는 식이었다. 임신하며 아이에게 안 좋은 것은 최대한 피하면서 평화롭게 지냈는데, 척추에 직접 마취제를 넣다니! 게다가 무통주사의 부작용도 있단다. 시누이가 말했다. 자신은 무통 주사가 안 받아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고.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은 출산 3대 굴욕이라 불리는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최대한 인위적인 처치를 하지 않고 낳는 것을 말한다. 사실 예전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방식의 출산이었겠지만, 이제는 ‘자연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나는 집이나 조산원 등 너무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출산하는 영상을 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저렇게 아기 낳고 싶어!”

의외로 서울에서 자연주의 출산하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우리나라 산모의 99%는 병원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출산하기 때문이다. 또 아이는 그냥 낳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돈이 들었다. 일반 출산보다 자연주의 출산은 특수한 경우(?)라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조산원에 따라 한 130만 원 정도 또는 그 이상 들었다. 두 비정규직 백수에게 자연주의 출산은 부담이 되었다. 상담 후 무엇보다 비용이 걱정되긴 했지만, 우리는 과감히 여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이와 엄마가 편안한 상황에서 출산할 기회, 한 번뿐인 기회를 저렴한 병원비 때문에 포기할 순 없었다.

출산의 두려움, ‘앎’으로 내려놓다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기로 한 후, 그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조산원에서도 남편과 함께 두 번의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했다. 교육 중 옆을 보니 남편이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필기까지 하면서 듣고 있었다. 막상 출산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해볼 만했다.

일단, 자연스럽게(아무 약물을 넣지 않아도) 진통이 시작된다. 진통은 계속 몰아치는 게 아니라 한 1-2분 정도 세게 왔다가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아이가 나올 때쯤, 이 간격은 점점 짧아진다. 그리고 진통을 할 때 옥시토신 호르몬이 나온다고 한다. 옥시토신은 보통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불린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애정을 느낄 때, 출산할 때, 아이에게 수유할 때도 나온다. 최근 한 과학 잡지(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에 따르면 옥시토신이 인간의 휴식과 마음의 안정에도 관여한다고 한다. 게다가 성관계 시 오르가슴을 느꼈을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출산하면서 나오는 옥시토신은 그 양의 천 배 이상이라고 한다!([EBS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 자연주의 출산을 아시나요? 편) 진통과 함께 옥시토신 분비가 시작되고, 이 옥시토신은 자궁을 수축 시켜 아이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출산하면서 어마 무시한 진통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옥시토신에 의해 행복감, 안정감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어쩐지, 사람들이 둘째도 낳고 셋째도 낳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출산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옥시토신의 마법에 의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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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하면서 어마 무시한 진통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옥시토신에 의해 행복감, 안정감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여러 책을 찾아보고 과정을 이해했다고 해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나 보다. 아직도 출산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고통’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것이 여전히 두려운 걸까? 출산의 고통이 나만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여성들 사이에서 ‘통증이 전혀 없는 분만’이 유행했다고 한다. 진통이 시작되면 모르핀을 주입하고, 곧 다른 약물로 기억을 잃게 만들었다. 그들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은 채, 우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나도 이들처럼 아픔 없는 출산을 원했던 것도 같다. 왜냐고? 쉽고, 편해 보이니까. 그리고 무서우니까. ㅜㅜ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겪어야 할 것을 겪지 않고 짠~하고 결과물을 바라는 마음은 곧, 욕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기는커녕 괜히 내 마음만 힘들 뿐이다. 지금껏,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피하지 않고 온전히 그 과정을 버텨낼 때, 조금이라도 얻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연구실 생활도 어느새 5년 차. 변화무쌍한 연구실 라이프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걸 배웠다. 출산의 고통도 온전히 겪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자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담담해졌다. 마치 전쟁을 앞둔 비장한 용사처럼 말이다.

  “사랑의 결실로 생긴 아기가 고통이라는 결과로 나오지는 않는다.”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HypnoBirthing)』, 메리 몽간 저, 18쪽)

‘출산이 고통’이라는 단단한 선입견에서 벗어나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아이가 생각났다. 낳는 나도 힘들겠지만, 이제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아이도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출산의 고통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아이와 무사하고, 평화롭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정말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는, 나와 10달 동안 함께한 아이와 만나는 과정이 생각만 해도 두근거렸다. 출산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어느새 기대와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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