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감이당과 남산강학원 학인 48인이 공동으로 쓴 책, <나는 왜 이 고전을>이 출간됐다. 나를 포함해 48인은 저마다 자기 질문을 품고 오랜 시간동안 자기가 선택한 고전과 씨름하며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전에서 길 찾기! 이 책은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의 초입 단계라고 보면 된다. 짧지만 강렬한 ‘48인 저자들’이 고전과 벌이는 전투 과정(?)이 어찌나 리얼한지 읽는 내내 그들의 생고생이 실감났다.^^ 고전과 벌이는 전투란 다름 아닌 나와의 싸움이다. 나의 지독한 아집, 편견, 폭력성, 습관 등등.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나의 적병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나 또한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래서 습(習)대로 산다는 말이 올해만큼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가정 안에서 나의 진상(?)을 여실히 봤고 이제껏 내가 해석해오던 방식대로 살다간 큰코다치겠다는 발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케어’라고 여겼지만, 아이는 지나친 간섭, 폭력이라고 저항했다. 또 남편은 가족을 무시하고 자기 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고전에서 길 찾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다. 생각의 전환은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왜 새로운 눈으로 텍스트를 해석할 수 없는지 답답했다. 그런데 주역의 수괘(隨卦)를 공부하면서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좀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초구는 양강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변화를 유순하게 따르는 모습이 신기했다. 양강하다는 것은 자기 주관이 매우 강해 자기 신념이나 가치관을 쉽게 내려놓지 못할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편견을 깨는 초구의 모습에서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보고 싶다.
수(隨)는 ‘따르다’는 뜻 외에 ‘부드럽다’, ‘순종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괘가 움직임을 상징하는 진괘(震卦)이고, 상괘가 기뻐함을 상징하는 태괘(兌卦)이다. 그래서 움직이며 기뻐하니 모두가 기꺼이 따른다는 뜻이다. 이렇게 모두가 기꺼이 따르는 이유를 『단전』에서 좀 더 살펴보자. “수(隨)는 강(剛)이 와서 유(柔)에게 낮추며 움직여 기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형통하고 바르니 허물이 없어서 천하가 때를 따른다.” 수(隨)가 따르는 것은 때(時)이다. 때를 따라 순응하며 변화하니 모두가 기꺼이 다가와 기뻐하며 따르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순종하며 따르는 모습은 마당에 펼쳐지는 사계절만 관찰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때가 되면 꽃을 피웠다가도 때가 되면 잎을 떨구는 자연은 고집 한번 부리는 법이 없다. 때를 거스르지 않는 이런 태도가 생명을 이어가는 이치이며 모두를 따르게 하는 비결이다. 그것이 강이 유에게 자신을 낮추며 움직여 다가간다고 한 것이다. 강이 기존의 내 생각이라면 유는 변화의 시기에 순종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때를 따른다는 말은 자기 전제에 의문을 던졌다면 강고한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바른 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