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문제의 삼효를 중심으로 보면, 우선 초구는 물속에 잠긴 용[潛龍]이다. 능력을 갖추었지만 아직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구이는 때에 맞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용[見龍]으로, 기질이 강건하면서 중(中)을 얻어 만사를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덕성을 갖췄다. 자신 있게 날아오를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날아오르기는 뭣하니 한 번 시험 삼아 뛰어올라보는[躍龍] 게 구사다. 그런 다음 구오에서 드디어 하늘로 날아오른다[飛龍]. 이 정도면 변화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삼효를 빼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굳이 삼효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용이 아니라 군자를 내세워서.
삼효는 하괘에서는 가장 윗자리이며, 상괘로 들어가기 직전에 자리하고 있다. 용으로 보자면 물에서 땅으로 올라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어지간히 덕을 갖췄으나 아직 비룡의 자유자재함을 맘껏 드러낼 수는 없는 상태다. 땅에서 움직이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날아오르려 해 봤자, 날 수도 없고 어설프게 난다고 해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나댄다는 비난만 받게 될 것이다. 이미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린 상태니 다시 잠룡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할 일은 철저하고 구체적인 수련을 통해 존재의 변이를 꾀하는 것이다. 용이라는 상징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인 ‘군자’를 내세웠을 것이고, 구체적인 수련 내용이 바로 “종일 굳건하게 힘쓰고[君子終日乾乾], 저녁이 되면 다시 두려워하는 듯하면서[夕惕若], 위태롭게 생각하여 허물이 없도록 하는 것[厲, 无咎]”이다. 소동파가 구삼의 자리를 “화복이 엇갈리는 위치이며, 성패가 결정되는 곳”이고, 잠룡이나 현룡, 약룡, 비룡이 모두 이 삼효의 건건함에 깊이 의존하다고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다음으로 ‘종일건건’을 보면 자꾸만 ‘전전긍긍’으로 읽히는 이유는 뭘까?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다. ‘종일토록 힘쓴다’고 하면 곧바로 돈을 더 벌기 위해,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그날그날 일어나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수습하느라,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우리들의 모습이 곧바로 떠오른다. 또 ‘저녁이 되어서도 두려워하는 듯해야’ 하고 ‘위태롭게 생각해야 허물이 없다’고 하면, 행여나 손해를 볼세라, 사고를 당할세라, 범죄의 대상이 될세라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하는 하루하루가 연상된다. 늘 듣고 보는 정보, 관심사가 이런 것들이다 보니, ‘힘쓴다’,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생각한다’고 하면 현대인들의 뇌에는 하늘의 건건함 ‘따위’를 떠올릴 회로 자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