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의 저자 미셸 오당은 진통을 겪는 임신부는 ‘다른 세계’에 들어간다고 한다.(미셸 오당, 『농부와 산과의사』,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96쪽) 그가 말하는 다른 세계란 신피질의 활동이 줄어드는 때를 뜻한다. 신피질은 대뇌 중에서도 고도의 정신작용을 하는 부분이다. ‘언어, 특히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자극된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켜 ‘다른 세계’로 들어가 아이를 낳는다.
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은 신선했다. 이제껏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인 판단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계속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모든 걸 정말 모든 걸 잊는다. 그렇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은 뱃속의 아이를 저절로 낳게 만들었다. 이 경험은 어떤 자유로움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남편이 딱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옆에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임신 중에 조산원에서 교육을 들을 때였다. 조산사님은 아내가 진통할 때 남편이 할 일은 “목석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남편이 중간에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거나 아니면 “병원에 어떤 걸 가져가면 좋을지” 등등을 묻게 되면 지금 출산에 집중해야하는 임신부에게 방해되기 때문이다. 즉, 앞서 말한 신피질을 자극해서 ‘다른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남편은 배운 대로 내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고, 복숭아를 깎고 허리 찜질을 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12시가 되어 병원에 갔다. 조산사님 왈, “어떻게 집에서 참았어요? 벌써 7cm나 열렸어요. 바로 분만준비를 해야겠는데?”라고 하셨다. 보통 자궁 문이 10cm 정도 열렸을 때 출산할 수 있다. 배가 아파 똥을 눌 때 어떻게 누어야 할지 알듯이 아기를 낳을 때도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감이당의 한 선생님께서 말해주신 것처럼, 정말 마치 큰 똥을 누듯이 말이다! 오히려 조산사님께서는 내게 힘을 많이 안 주어도 아기가 나올 수 있으니, 너무 힘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힘을 빼는 것도 쉽게 되지 않았다. 진통이 거세지자 나는 호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통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않으면, 뱃속의 아이 또한 산소가 부족할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호흡해보려 했다. 남편은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기 탄생 5분 전. 힘을 주면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했다(고 한다). 진통이 오면 두 번 힘주고, 마지막 한번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