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효들 중 유독 초육효가 눈에 들어왔다. 일의 시작점에 있다 보니 당연한 일. 효사는 鴻漸于干 小子厲 有言 無咎(홍점우간 소자려 유언 무구)이다. 기러기가 물가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니, 소자는 위태롭게 여겨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초육은 일의 시작에 위치하고 있고, 매우 낮은 자이다. 음의 자질이라 유약한 데다 위로 호응하는 자가 없어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다. 이런 조건으로 나아가는 일은 근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소인과 어린이(小子)는 위태롭게 여기며 말이 많다. 여기서 소자란 일의 시작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도 주변 사람이지만 자기 마음속의 두려움으로 해석하고 싶다.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아직 공부가 덜됐어’, ‘이 나이에 뭘 시작하겠다는 거야.’, ‘사람이 안 오면 어떡하지?’ ‘그냥 여태 살던 대로 살아’ 등등 일의 시작을 두려워하며 수많은 말을 건다. 그럴 땐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초육은 無咎(무구)로 마무리된다. 그런 소자들의 염려의 말은 일의 시작에는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정이천은 “아랫자리에 있은 것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유연하게 행하는 것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며, 호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점차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의 시작 때 아랫자리에 있고, 유약하고, 호응하는 사람이 없어서 근심스럽다고 했는데, 이런 조건들이 일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풍산점의 내괘는 간(艮)괘이다. 이는 일의 초반 걱정이 동(動)하고, 욕심이 동하고, 조급함이 동할 때, 큰 그침(止)으로 안정을 이루어 점차적으로 진입하라는 뜻이리라. 만약 일의 초반에 지위도 높고, 강하며, 호응하는 사람도 있다면 어떨까? 먼 길을 가야 하는 초반에 벌써 마음은 날뛴다. 일의 순서고 뭐고 빨리 이루고 싶은 조급함이 날뛴다. 이런 조급함은 순서의 올바름을 지키기 어렵게 한다. 건너뛴 것은 언젠간 돌아온다. 나 같은 경우, 생각지도 않은 공간이 생겼을 때, 뭐라도 빨리 이루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얼마못가 스스로 지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고 조급하지 않게 유연하게 행하며, 호응하는 것이 없더라도 차근차근 자신의 힘으로, 자신에게 맞게 순서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과정에 주변에서 혹은 자신 속에서 올라오는 걱정스런 말은 그 과정을 탄탄히 밟아가라는 것이므로 허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