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들에게 욕망(대지)이란 멈추지 않는 실천의 집합체다. 이대로 카오스 속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카오스를 밝힐 노래를 찾고 싶었고,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싶었다. 비록 이 참담한 사건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이 일을 발판으로 내 삶에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면 이 사건이 긍정적으로 재구성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 흩어졌다가 다시 집결하고, 요구하고 나섰다가 분한 눈물을 삼키며, 공격에 나섰다가 다시 반격당하는 유목민들로 가득 차 있다.” (「리트로넬로」, p647)
나는 내가 남긴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창고에 쌓인 술병이며, 페트병,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정리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술과 고기를 먹었던가. 뿐만 아니라 귀한 제사 음식을 제쳐 놓고 매번 라면으로만 식사를 했다. 수북이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나의 추악한 식욕이 생태계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니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후련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흔적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카오스를 날려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휘감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선 내게 또 다른 노래가 필요했다. 이 사건을 통해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그동안 철학을 한답시고 책을 읽고 뱉은 말과 글이 거짓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쓰기’외에는 다른 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반성문’을 써 내려갔다. 반성문을 통해 술과 육식의 탐닉이 만들어낸 카오스 안에서 조금이나마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