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감독처럼 마음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신기하게도 결실의 괘, 기제 괘에서 그의 지혜가 느껴졌다. 수화 기제는 ‘이미 강을 건넜다’는 뜻으로 일의 결과 or 성취를 의미한다. “일들이 성취된 때에는 형통할 것이 작은 일이라서,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로우니, 처음에는 길하고 끝에는 혼란하다.”(旣濟 亨小 利貞 初吉終亂) 여기서 ‘형소(亨小)’를 잘 해석해야 한다. 형소는 ‘조금 형통하다’로 해석하기 쉽지만 ‘작은 것에도 두루 미친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제가 형통한 것은 큰 것뿐 아니라 작은 것까지 두루 통하기 때문이다.
기제는 주역 64괘 중 6개의 효가 음양 자리에 올바르게 놓인 유일한 괘이다. 이것은 형소, 즉 작은 것에도 미친다는 괘사와 부합된다. 어떤 효도 소외되지 않고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니 얼마나 형통한가. 기생충이 앙상블 상을 받을 때가 생각난다. 그 상은 “미국 배우 조합상(Screen Actors Guild Awards, SAG)”으로 배우들의 케미가 좋은 영화에게 주는 최고 영예의 상이라고 한다. 배우들이 이 상을 받을 때 봉 감독의 얼굴에서 아빠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기생충에 출현한 배우 전원이 이 상에 이름이 올랐는데 이것은 ‘형소’가 아닌가. 소외되지 않게 모든 배우들을 배려한 봉 감독의 마음이 이 상을 받게 했다고 생각한다.
기제 괘에서 내가 주목한 효는 초효다. “수레바퀴를 잡아당기고 꼬리를 적시면 허물이 없다.”(初九, 曳其輪 濡其尾 无咎) 수레바퀴를 잡아당김은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꼬리는? 여우의 꼬리이다. 갑작스러운 꼬리 등장에 당황할 수 있지만 이것이 주역의 매력이다. 주역에는 자연의 생태계가 총동원되는데, 이번에는 여우의 생태를 이해해야 주역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 수가 있다. 동물의 왕국 열혈 시청자라면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여우는 물을 건널 때 물에 젖지 않게 꼬리를 뒤로 올린다고 한다. 그런데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물을 건널 마음이 없다는 의미이다. 즉, 결실을 이룬 다음에는 물을 건너지 말라는 것인데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보통 일이 잘되면 샴페인부터 터트리다가 갈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기생충만 해도 상복이 터졌으니 성공에 도취 되기 쉬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역은 여우가 꼬리를 적시듯 멈추라고 경고한다. 봉 감독은 주역의 지혜를 알았던가. 엄청난 상에도 들뜨지 않고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