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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페스트] ‘페스트’에 맞서는 두 가지 태도 (1)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11-13 16:30
조회 : 44  




‘페스트’에 맞서는 두 가지 태도 (1)



복희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부자가 되기 위해 일을 하고, 틈이 나면 취미생활로 여가를 즐기고,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섹스에 탐닉하거나 습관적인 결혼을 이어가는 사람들. 이 욕망을 받쳐줄 건강한 몸에 집착하면서 죽음은 삶 바깥으로 밀쳐놓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에 페스트가 덮친다. 영화에서나 보던 재앙이 자신들에게 닥쳤다는 게 모두지 실감이 나지 않는데 곁에서는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간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그들은 애써 부인하거나 모른 척하거나, 거기서 도망치기 위해서 기를 쓴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오랑의 토박이로 페스트 이전부터 환자들을 치료해온 30대 중반의 의사 리유, 또 한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왜 이 도시에 왔는지 알 수 없는 젊은이 타루. 언제 어디서 전염병이 덮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 그 처절한 현장 한가운데서 두 사람은 무엇을 왜 하려고 하는 걸까.

두 개의 죽음

어느 환자의 절규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 타루. (…) 그냥 추상적으로 택했지요. 직업이 필요했었고, 딴 직업이나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이 해볼 만한 직업의 하나였기 때문이죠. 또 어쩌면 나 같은 노동자의 자식으로서는 특별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택하고 났더니 죽는 장면을 보아야만 했지요. (…)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 하고 외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그때 나는 절대로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카뮈, 『페스트』, 책세상, 2017, 177쪽)

‘신도 믿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헌신적이냐’는 타루의 질문에 대한 리유의 대답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가 된다는 것은 그 당시 알제리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지위가 보장되는 직업이었고, 생명을 다루는 일 자체가 주는 매력도 없지 않았다. 리유가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동기는 그 정도였다. 특별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실에서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거부하는 여자 환자의 외침을 듣는다. “안 돼!”라는 그녀의 절규는 리유의 몸 깊숙이 절대 지울 수 없는 불지짐 같은 것으로 각인된다. 그 후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그는 사람이 죽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 그 하나로 환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사형수와 사형 집행관

내가 열일곱 살 때, 아버지는 나더러 자신의 논고를 들으러 오라고 하셨어요. 그 사건은 중죄 재판소에서 공판을 받는 중대 사건이었는데, (…) 빨간 머리털을 한, 키 작고 가엾은 남자는 모든 것을 인정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 그때까지 나는 그를 ‘피고’라는 편리한 개념을 통해서밖에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어요. (…) 나는 사람들이 멍청하게, 살아있는 그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느끼자 물결처럼 밀려오는 굉장한 본능을 억제할 수 없게 되어 거의 맹목적인 고집으로 그 남자 편을 들고 있었습니다. (331쪽)

타루는 차장검사였던 아버지의 초청을 받고 법정 구경을 간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탐색 차 견학을 간 셈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타루는 검사라는 직업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며 꽤 괜찮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아들 앞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고도 싶었고, 평소 가족에게 하는 것과는 다른 역할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다. 그런데 사형선고를 눈앞에 두고 쉴 새 없이 손톱을 깨물며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범죄자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찔할 만큼의 친밀감’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중죄인 재판정에 앉아 있다는 사실도,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하얗게 지워져버렸다. 오로지 ‘살아있는 생명체’인 그 가엾은 남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법이니, 사형선고니, 형의 집행이니 하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고, 그로부터 일 년 뒤인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왔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가난의 맛을 알게 되었고,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성공도 거두었다. 그러나 그날의 그 빨간 머리 남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유럽 전역을 돌며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헝가리에서 사형집행 장면을 참관한다.

사람을 총살하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못 보셨겠죠, 물론. (…) 눈가리개, 말뚝, 한참 떨어져서 있는 병사들. 천만에, (…) 총살형 집행반은 뜻밖에도 사형수로부터 1m 50cm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사형수가 두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가슴에 총부리가 부딪치는 것을 아시나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수들이 심장 근처를 집중 사격하면, 굵직한 탄환들이 한데 뭉쳐서 주먹이라도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 놓는 걸 아시나요? 그런 자세한 내용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까요. (335쪽)

그날 이후, 그 “커다란 구멍”과 총살형 집행관들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법정에서 본 붉은 머리털을 한 그 가엾은 남자, 그가 ‘너는 죽는다’는 선고를 받고 총살형을 당할 때까지 공포의 밤을 보냈을 걸 생각하니 몸서리가 처졌다. 그리고 사형수 바로 앞에서 자신들이 뚫어놓은 그 주먹만한 구멍들을 보는 집행관들을 생각하니 너무도 끔찍했다. 알았든 몰랐든 이런 살인 행위를 기반으로 안락한 일상을 누려온 사람들, 죄인을 향해 죽어 마땅하다고 마음으로 동조했거나 무관심으로 동의한 사람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신 역시 알게 모르게 이 살인의 연쇄 고리 안에 들어있다는 것, 수많은 죽음에 간접적으로 동의하며 살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부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결심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338쪽)

무엇을 할 것인가

오직 살릴 뿐

“(…)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무엇이 올지 모릅니다. 당장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도 반성할 것이고, 나도 반성할 겁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무엇에 대해서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 타루. 정말 아는 바가 없어요. (…) 그 이상은 나는 모릅니다.”(177-178쪽)

수위 미셸씨가 온 몸에 반점과 멍울이 생기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리유는 그 병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사태는 심각한데 의사들 중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의사회장마저도 극히 미온적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환자들의 집을 회진할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원로 의사 카스텔과 함께 리유는 이것이 페스트임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게다가 방금 페스트로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도무지 현실적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환자들이 고통과 악취 속에 죽어가고 있음에도 평화로운 시가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죽음이 꿈만 같았다.

역사상 페스트로 죽은 1억 명의 사망자를 실감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할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고 현실감은 더욱 떨어졌다. 분명한 것은 이 순간에도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그것이 페스트건 아니건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상상 속에서 헤매는 게 아니라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차츰 페스트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그것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어떤지도 알게 될 것이다.

가까스로 보건위원회가 소집되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페스트’라 명명하기를 꺼렸다. 그걸 입 밖에 내는 순간 자신들이 취해야할 조치들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그럴 권한이 없다거나, 아직 그런 환자를 못 봤다거나, 상부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핑계를 대기에 바빴다. 그러나 리유의 생각은 단순했다. 그것이 페스트든 아니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지금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환자가 있으니, 그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 더군다나 그게 전염병이라면 그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그러니 오직 ‘살릴 뿐’. 그 이상은 생각할 필요도 생각할 시간도 없다.

오직 이해할 뿐

“그런데, 타루. 뭣 때문에 이 일에 발벗고 나서지요?” “나도 모르죠. 아마 나의 윤리관 때문인가 봐요.” “어떤 윤리관이지요?”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181쪽)

타루는 그 붉은 머리털의 남자와 사형수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목격한 이후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렸다. 자신도 살인자 측에 끼어서 살아왔다는 부끄러움에서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여태까지 해 오던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도 회의가 생겼다. 동료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털어놓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타루를 설득하려고 들었다. 그건 법복을 입은 자들이 옳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며, 사형선고를 그들에게만 맡겨버리는 꼴이니 정신 차리라고. 그러나 정신을 차릴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알게 되었다. 이 세상 자체가 모순투성이여서 그 누구도 타인을 죽음의 위험에 빠트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말하며 행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세상에 재앙이 있고 희생자가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재앙의 편을 들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즉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최대한 공감함으로써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것이 나의 생각이나 말, 행위들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를 구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루가 주변과 사람을 관찰하고 자신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자신과 세상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의사 리유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에 왜 발벗고 나서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리유와 타루, 이 두 사람은 페스트가 닥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경로는 비록 달랐지만,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로부터 도망갈 곳도, 도망칠 방법도 없다는 것, 더 이상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페스트가 창궐하는 도시 한가운데서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한다. 오직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연 이 두 사람은 ‘페스트’를 어떻게 통과해 갈까, 그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은 갑작스레 닥친 ‘재앙’의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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