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오식과 함께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의 세계가 현현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것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전오식으로만 구성된다면 형상은 있으나 의미를 모르고, 소리가 있으나 고요하다. 세상은 무엇인지 모르는 형상과 소리만이 적막하게 일어났다 사라졌다 할 뿐이다. 전오식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세계를 현현시켰지만, 그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제6 의식(第6 意識)에 의해 해석된다. 우리 앞에 꽃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눈이 형상을 보고, 귀가 움직임을 듣고, 코가 냄새를 맡고, 혀가 맛보고, 몸의 감각으로 감촉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꽃인지 어떻게 알까? 앞에 있는 것이 ‘꽃’인지 알려면, 형상과 냄새, 맛, 촉감을 종합하여 ‘꽃’이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전오식이 인식한 것을 ‘어떤 모양’, ‘어떤 소리’, ‘어떤 냄새’, ‘어떤 맛’, ‘어떤 감촉’으로 받아들여(受) ‘어떤 것(法)’이라고 생각(想)할 수 있는 것은 제6 의식이다. 전오식이 현현한 적막한 세계는 제6 의식에 의해 수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무엇인지 모르는 형상과 소리 등만이 일어났다 사라질 뿐인 세상은 수많은 의미와 함께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오식과 제6 의식을 합하여 ‘표층의식’(앞 연재 참조)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우리 의식의 표층에서 늘 작용하면서 사물과 사건을 인식하여 분별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유식에서는 전오식과 제6 의식의 이런 기능을 요별경식(了別境識)이라고 한다. 대상의 경계를 분별하여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제6 의식은 전오식과 함께 작용하며 대상을 분별하기도(受와 想이 함께 작용) 하지만, 때로는 대상과 전혀 상관없이 분별 작용(想만의 작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꽃의 예처럼,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접촉하는 등 다섯 감각이 하나 또는 여럿이 함께 작용하여 이미지나 생각을 떠올리며 대상을 분별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대상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이미지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한다. 앞의 경우를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이라고 하여 오구의식(五俱意識)이라고 하고, 뒤의 경우를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지 않는 의식이라고 하여 불구의식(不俱意識)이라고 한다. 명상 중에 발생하는 삼매나, 잠잘 때의 꿈, 상상이나 환상, 몽상과 같이 본 적도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불구의식의 활동이다. 제6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고 사유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라고 봐도 별 무리가 없다. 전오식이 만든 형상과 소리, 냄새, 맛, 감촉의 세계에 그것이 ‘무엇(法)’이라는 이미지(象)를 입히며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