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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 진실한 마음으로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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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1-27 21:31 조회9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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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마음으로 아디오스

 
김 해 완

현재 나는 한국이다. 해외입국자로서 자가 격리를 하는 중이다. 짧지 않았던 삼 년 반의 쿠바 원정에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다. 앞으로 쿠바에 다시 돌아가게 될지는 미지수다. 말 그대로 ‘하늘이 허락해야’ 할 일이다. 무탈하게 다니던 의대를 이 년 만에 휴학하고, 겨울에 서둘러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것은 팬데믹 때문이다. 팬데믹이 온 세계를 일 년 째 뒤흔들고 있다. 쿠바는 이 흔들림에 특히 더 취약한 지역이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비하면 방역 활동을 훨씬 잘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바이러스는 다른 위기들을 연쇄고리처럼 불러왔다.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는 학업이 정상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내 휴학을 극히 아쉬워했고, 나는 내 정신력이 약해서 중도포기를 하는 것인지 스스로를 계속 의심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들의 강의를 친구들이 나만 빼고 들을 거라는 생각만 하면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 내가 여기 의학에 이토록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내 팔자에 없다 생각했던 의학을 처음으로 공부해보고 싶게 만든 쿠바이니 그럴 만도 하다.

부러진 오른팔로

마음이 번잡해질 것을 미리 짐작했던 바, 지난여름에 한국에 왔을 때 휴학 여부를 두고 주역 괘를 뽑았었다. 뇌화풍괘의 삼효가 나왔다. 괘는 밝은 풍요를 상징하는데 정작 삼효는 깊은 어둠에 잠겨 있다. 자리에 알맞은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하필 때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란다. 효사에서 알쏭달쏭했던 지점은 ‘오른팔이 부러져서 아무것도 못하지만 어디 원망할 곳이 없다’는 부분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내용을 볼 때 맥락상 휴학을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누가, 어떻게, 왜 내 오른팔을 부러뜨린단 말인가.

쿠바에 가니 대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른팔이 어떻게 단계별로 부러져 가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우선 나의 브라질 친우 라리사가 결국 오지 않았다. 작년 봄과 여름, 우리는 전면 봉쇄된 아바나에서 함께 고립된 시간을 버텼다.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반쯤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동지께서는 이번에는 쿠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영영 쿠바와 연을 끊고 아르헨티나에서 의학 공부를 재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선택은 옳았던 것 같다. 돌아간 나를 맞이한 것은 8개월의 봉쇄 때문에 기아상태가 된 경제였다. 바닥난 외화를 긁어모으기 위해서 쿠바 정부는 그 사이에 오로지 미화달러만 받는 가게를 열었다. 로컬 가게에서는 안 파는 모든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달러를 끌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행에서는 더 이상 외화를 팔지 않는다) 쿠바 사람들은 그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네 시간에서 열 시간까지 줄을 선다. 최근 이중화폐를 통합하는 정책이 시작되면서 쿠바 경제는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도 아니다. 달러 가게가 버티고 있는 한 미화달러는 또 다른 ‘이중화폐’로서 기능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앞으로 절망적으로 달러를 찾는 쿠바인들에게 시달리게 될 것이다. 내 친구들은 달러로 집세를 받으려는 집주인들과 벌써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제위기는 학교까지 그 손길을 미쳤다. 학교는 돈 내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우리들만 모아놓고 등록금을 당장 완납하지 않으면 어떤 교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돈이 급하시면 돈 내는 일을 쉽게 만들어주기라도 하던가… 쿠바에 가해진 각종 경제 제제 때문에 은행 송금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카드를 긁으려고 해도 대행사를 통과하면서 수수료가 10%나 더 붙는다. 그래놓고 현금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한다.

하이라이트는 귀국길이었다. 연말에 서류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스페인 대사관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에 나는 귀국날짜를 12월에서 1월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1월이 되자마자 정부에서 코로나 방역을 위하여 국경 통제령을 내렸다. 덕분에 비행기 표가 자동 취소되었고,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극적으로 전세기가 투입되면서 나는 막판에 원래 표를 사수했다. 그렇게 힘겹게 쿠바를 떠난 바로 다음날,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다. 아바나가 다시 전면봉쇄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국경을 봉쇄하지는 않았지만 비행기가 거의 없어서 봉쇄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학교가 멈췄다. 수업을 재개한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의대생들은 다시 무기한 뻬스끼사 활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제야 퍼즐조각들이 맞춰졌다. 책을 펴고 펜을 잡아도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오른팔이 부러진 꼴이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쿠바를 떠나기를 망설였던 까닭은 공부 때문이었는데, 공부를 못하게 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다. 뇌화풍괘가 의미했던 것은 공부거리의 풍성함이었을 것이다. 팬데믹 속에서 의대생보다 더 배울 게 많은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다 자리 나름이다. 인턴이나 졸업반이면 모를까, 우리 샛병아리 3학년들이 현장에서 교수님들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뻬스끼사나 주구장창 하는 수밖에는.

우아하지 않은 몰락 속에서

돌이켜보면 나는 21세기에 쿠바가 가장 불행했던 시간에 그곳에 머물렀다. 좋은 꼴보다는 나쁜 꼴을 더 보았고, 단 한 해도 전 해와 같은 방식으로 산 적이 없다. 내가 쿠바로 건너가기 직전에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트럼프의 경제 제제로 쿠바의 관광업은 큰 타격을 입었고, 덕분에 나는 쿠바에 가자마자 몇 안 남은 외국인을 등쳐먹으려는 ‘히네떼로’들의 공략대상이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이 답보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베네수엘라가 값싸게 공급해주던 석유가 쿠바 내에서 사라졌다. 꼬윤뚜랄(Coyuntural)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석유 부족의 여파는 단지 통학할 버스가 사라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모기를 죽일 소독차가 충분히 다니지 못했고, 덕분에 뎅게가 퍼졌으며, 나는 곧 뎅기열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다음에 온 게 코로나발 팬데믹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다.

위기의 시간 속에서 두 가지가 일관되게 내 눈에 띄었다. 하나는 사람들의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태도였다. 그 다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관성 없는 해결책이었다. 뒤죽박죽된 가이드라인 속에서 사람들은 그때그때 임시방편을 취하는 게 익숙해보였다.

사람들이 침착한 까닭은 몰락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결책이 뒤죽박죽인 것은 어떤 몰락도 우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몰락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아무것도 잃지 않은 척하면서 체통을 지키려고 했다간 우스운 꼴만 된다. 그렇다고 체통을 벗어던진 채 오직 살아남으려고 몸을 엎드리는 모습도 서글프다. 쿠바는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일관치 않은 노선을 그리는 중이다.

사람들이 침착한 까닭은 몰락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결책이 뒤죽박죽인 것은 어떤 몰락도 우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몰락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넘치는 물질에 찌들어버린 제1세계 사람들은 종종 제3세계의 가난을 미화하곤 한다. 저 소박한 삶 속에 우리가 갖지 못한 행복이 있다고… 가난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지나 모르겠다. 특히 쿠바의 가난은 근대화를 피해서 전통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소박한 사회의 통합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가난은 근대화를 이룩했고, 혁명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나름대로 풍요를 누리던 그런 사회가 한순간에 갖고 있던 것들을 박탈당하면서 생긴 결과다. 이 충격은 트라우마에 견줄 만 하다. 만약 한국에 어떤 재난이 닥쳐서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던 생활수준을 한순간에 빼앗기게 된다면, 우리 또한 똑같은 몰락의 충격을 겪을 것이다. 쿠바인들이 가진 바람직한 일상의 상(想)은 60년 전 체와 피델이 제시했던 비전이거나, 미국 및 유럽인의 모던한 생활이다. 이중 어느 것도 현 쿠바에 실재하지 않고, 따라서 가난은 결핍이 되고 만다. 결핍은 어디서든 발견된다. 양변기가 놓였지만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 도시 구석구석으로 뻗어있지만 중간에 물이 다 새는 수도관, 값싼 가격으로 접근성을 높였으나 정작 필요한 약은 없는 약국.

쿠바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한 것은 당연하다. 과거의 영광이 해체되는 과정에 놓여있는데 어떻게 일관된 평가가 가능하겠는가. 해체 후에는 또 새 길이 열릴 테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간에 쿠바인들의 높은 자존감만큼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이 자존감은 일상에서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변질될 때가 더 잦다. 그래도 이는 그들이 낮은 자세로 충격을 소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내 뒷목을 잡게 만드는 저 뻔뻔한 낯짝은, 우아할 수 없는 몰락을 통과하고 있는 한 인간이 자가 치유를 시도하는 현장이다.

물(物)떼를 벗기고

요약하자면 내가 지난 삼 년 간 쿠바에서 의학 외에 배웠던 것은 혁명 정신이 아니다. 결핍, 박탈, 뻔뻔함, 임기응변,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는 각종 불법행위(?)를 배웠다. 달리 수가 없다. 그들의 땅에 빌붙어 사는 이상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익히는 수밖에는.

그런데도 나는 망가지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일상 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더 고요해졌다. 내 안에서 자라는 고요함을 알아챈 것은 이번에 쿠바로 돌아갔을 때였다. 지지난번 연재에도 썼었지만, 쿠바의 낡은 격리시설에서 열리지 않는 문과 부서진 창문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내가 이것들을 그리워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왜인가? 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문이고, 부서지는 순간 기능을 잃는 게 창문 아닌가?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물건의 기능이 아니었다. 망가진 것들 속에서만 회복될 수 있는 존재의 차원이었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물건의 기능이 아니었다. 망가진 것들 속에서만 회복될 수 있는 존재의 차원이었다.

몰락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몰락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로부터 자유롭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줏대가 없어서 마음의 주도권을 아주 쉽게 주변 환경에 내어준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없을 만큼 스산한 방이 내가 매일 머물러야 할 집이라고 생각해보라. 또 커피를 마시려다가 가스에 불붙일 때 쓰는 성냥갑 절반이 축축하게 젖어있다고 상상해보라. 표현하기 어려운 구차함이 마음에 번진다. 그러나 바닥을 친 기분이 나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방에 램프와 천을 걸어서 분위기를 바꾸어보는 것, 옆집으로 쳐들어가서 같이 커피를 끓여 마시자고 제안하는 것, 해결책이 없을 때 잠시 하늘을 보고 멍 때리면서 분노를 끓이지 않는 것 모두 나의 능력, 나의 일부다. 가라앉는 기분으로부터 도주하는 길들을 더 많이, 더 다양하게 확보할수록 ‘몰락하지 않는 나’에 대한 존재감도 뚜렷해진다. 망가진 물건들 속에 누워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면 진심을 담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 배경이 초라하다고 해서 삶이 초라한 게 아니고, 도구가 망가진다고 해서 존재가 망가지는 게 아니다. 나는 괜찮다.

가난이 행복이 될 수는 없다. 가난은 인간을 파괴하지,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인식이다. 가난과 풍요 모두 ‘자유로운 나’에게는 똑같이 무용하다는 깨달음이다. 그래도 깨달음의 길에서 없는 자가 있는 자보다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뭔가를 가지고 있으면 길을 떠나기도 전에 포기의 문제가 개입되고 만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아보려고 헤엄을 친다. 그런데 누군가 값비싼 산소 호흡기를 달아주는 순간 헤엄을 멈춘다. 그러면 길이 없다. 숨이 붙은 채로 끝없이 가라앉는 것 밖에는.

정신의 몰락도 같은 궤적을 그린다. 뒤죽박죽 뒤틀린 시스템을 견디기 괴로운 이유는 그 속에서 일관된 의미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는 의미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스템에 기대는 것이다. 사회의 가치평가와 사유의 시스템, 감정을 재생산하는 고착된 인간관계 모두 의미 부여를 멈추지 않으려는 욕망을 먹고 산다. 의미 부여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고 상상해보라. 정신의 일부가 몰락하겠지만, 몰락한 파편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역시 ‘나’는 망가지지 않는다. ‘나’라는 본질이 따로 보호되기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 외에 존재의 본질은 없기 때문이다. 망가진 물건들 속에서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의미를 짊어지워도 존재는 가볍게 빠져나갈 수 있다.

이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어떻게든 살 수 있다. 실패했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진다.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매일 성실하게 살 수 있고, 모순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균열을 통해 마음이 깊어지고, 천지분간을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천지를 알아가며 다시 태어나는 즐거움을 누린다. 몰락한 자리에 새 것이 자란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쿠바의 시스템은 이곳저곳 뒤틀리고 어긋나 있다. 인생에서 뭔가를 창조하고픈 청년들에게는 여러모로 답 없는 사회다. 그런데 쿠바 청년들은 이 답답한 섬에서, 시스템의 틈새에서 또 나름대로 사는 의미를 만든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된다. 처음에는 이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내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 위로 투영되는 존재의 가벼움과 세상의 광활함, 나의 초라함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두려움 없이 눈을 뜨는데 삼 년 반이 걸렸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둘러쌌던 수많은 물질과 복잡다단한 시스템, 그리고 그 속에서 시험(?)에 들지 않고 잘 보존되었던 나의 더럽고 유약한 성깔들. 이 물(物)떼를 한 꺼풀 벗겨내는데 그 정도 걸렸다.

반드시 쿠바여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쿠바에 있었기에 시간이 단축되었다. 쿠바에는 포장되지 않은 인간관계라는 귀한 자산이 있다. 쾌활하고 뻔뻔하게 사는 그들 덕분에 떼를 벗긴 자리가 휑하지 않았다. 결핍이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힘겹게 설명하는 것들을, 쿠바에서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단번에 이해한다.

진실한 믿음을 배웠다

여행하려는 쿠바인은 무작정 고속도로로 간다. 손에는 버스표도 없고, 버스스케줄도 없다. 그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는 어떤 차 한대가 서주기를 바라며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그 차가 끝까지 동행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간에 내려서 다시 다음 차를, 다음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어떤 루트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도착지에 도달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고속도로에서 쿠바인들 틈에 섞여 있노라면, 나는 순간이 인생의 메타포처럼 느껴지곤 했다. 길이 닦여있지 않아도 길을 갈 수 있다. 언제나 방법은 있다. 결국 나는 이 섬에서 진실하게 믿는 법을 배운 셈이다. 진실한 믿음은 낡은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의미를 영원히 보장해줄 절대적 시스템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상 어디서든 편안할 수 있는 나의 안녕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택한 적 없는 다른 장소, 다른 시점에서 삶을 시작하거나 마친다. 인생 경로를 택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지점에서든 통하는 길이 하나 있다. 그 길의 이름은 자유다. 험한 길을 가든 편한 길을 가든, 변두리를 배회하든 중심에 서든, 존재가 자유로워지는 길은 어떤 곳으로부터도 막혀있지 않다.

그 길을 가려면 구식의 의미체계에 갇힌 ‘나 자신’을 가볍게 죽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야 의미 부여를 뛰어넘는 의미 생성이 일어난다. 아, 쿠바는 나를 도대체 몇 번 죽였던가! 이 어설픈 이방인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곁을 내어준 쿠바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아디오스 쿠바다.

내가 쿠바를 떠났으니 <쿠바 리포트>도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할 것 같다. 방향도 계획도 없이 그때그때 글을 써왔다. 글을 읽음으로써 이 이상한 여정에 동참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방인이 되는 것은 자발적으로 무지해지는 것과 같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게 되고, 자존심을 지키는 방패를 잃어버리고, 생활에 적응하기에도 정신없이 바빠서 성찰의 깊이를 잃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무지는 자기변화를 허용하는 한 진실한 무지다. 무지한 돈키호테와 산초가 온갖 사고를 다 치지만 마지막 순간에 깨달음에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희한하고 무모한 여정이 연구실에 웃음과 재미를 드렸다면 족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게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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