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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2] 알아차림, 너른 바위에서 균형을 잡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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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03-21 18:32 조회1,6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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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너른 바위에서 균형을 잡고 즐겁게

 

이윤지(감이당)

風山漸 ䷴

 

漸, 女歸吉, 利貞.

점괘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길하니,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初六, 鴻漸于干, 小子厲, 有言, 无咎.

초육효, 기러기가 물가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소인배는 위태롭게 여겨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다.

六二, 鴻漸于磐, 飲食衎衎, 吉.

육이효, 기러기가 넓은 바위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이 즐겁고 즐거우니 길하다.

九三, 鴻漸于陸, 夫征不復, 婦孕不育, 凶, 利御寇.

구삼효, 기러기가 육지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남자는 가면 돌아오지 않고 부인은 잉태하더라도 기르지 못하여 흉하니 도적을 막는 것이 이롭다.

六四, 鴻漸于木, 或得其桷, 无咎.

육사효, 기러기가 나무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혹 평평한 가지를 얻을 수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九五, 鴻漸于陵, 婦三歲不孕, 終莫之勝, 吉.

육오효, 높은 언덕으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부인이 3년 동안 잉태하지 못하니 끝내 구삼과 육사가 이기지 못하니 길하리라.

上九, 鴻漸于逵, 其羽可用為儀, 吉.

상구효, 기러기가 허공으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그 날개가 본보기가 될 만하여 길하다.

불교 공부를 하며 정식으로 명상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명상이라고 방석에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려오고, 좀 편하다 싶으면 슬슬 졸리기도 하고, 괜찮다 싶으면 생각은 또 어찌나 많이 올라오는지…. 초보 단계의 명상이란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거라고 배웠는데 고요함은커녕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만 올라왔다. 그런데 명상을 가르쳐주시는 스승은 어찌나 맑고 평안하고 행복해 보이는지, 얼마나 오래 수행을 하면 저런 경지가 되는 건지 존경스럽고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스승께서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당신도 처음 명상을 배울 때 생각의 폭류에 휩쓸리기 일쑤였다고. 게다가 어려서부터 심한 공황장애로 고생을 했는데 기초부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면서 명상의 길을 열어 가셨다고 했다. 그러니 누구든 자신의 상태에 맞게 천천히 차례대로 단계를 밟아 가면 된다고 말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할 때 순서를 밟아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이치에 관한 가르침이 주역에도 나온다. 산 위에 있는 나무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자라는 모습을 상으로 취한 풍산점괘다. 점(漸)은 점진적으로 천천히 나아간다는 의미다. 나무가 자라는 형상이라면 지풍승(地風升)괘도 있지만 차이가 있다. 땅속에서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급격한 상승이 승괘라면 점괘는 나무가 조금씩 자라나는 점진이다. 점진은 차근차근 순서를 지켜 나아간다는 것이다. 점괘의 괘사가 여성이 시집가는 것을 비유한 것도 옛날에는 예법과 절차를 따져 순서에 맞게 결혼을 준비한 것에서 연유한다.

wood-3690109_640나무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자라는 모습을 상으로 취한 풍산점괘다.

그런데 점괘의 효사에는 큰 기러기들(鴻)이 등장한다. 갑자기 웬 기러기일까? 철새인 기러기는 무리로 움직이되 순서를 지키고 때와 질서를 잃지 않는다고 한다. 여섯 개의 효사는 기러기가 물가, 넓은 바위, 육지와 나무 위 그리고 높은 언덕으로 나아가다 마지막엔 허공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마치 여러 폭의 그림을 펼치듯 보여준다. 각각의 기러기는 나아가는 곳이 다르지만 효사는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때에 맞게 나아간다는 이치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마지막엔 기러기가 하늘로 훨훨 날아가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다. 일반적으로 상효는 지나침이 있어 좋은 경우가 드물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간 점괘에선 상효도 길하다.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나아간다는 것은 저 앞을 보며 괜히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내가 발 디뎌야 하는 지점을 제대로 딛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안정감 있게 스텝을 디딘다는 건 지금 있는 자리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스승은 명상을 익힐 때 자신의 상태에 맞게 차근차근 나아가되 현재 내가 공부하는 단계의 명상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아직 초보자로 영 어설픈 상태에서 어떻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가 있지? 명상을 하면서 마음의 균형을 잡는다는 건 뭘까?

그런데 풍산점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효가 나온다. 다름 아닌 육이효다. 중(中)과 정(正)의 위치에서 정도를 지키는 이효의 기러기는 평평하고 넓은 바위로 나아간다. (鴻漸于磐) 기러기는 물갈퀴가 있어서 평평한 곳이 발을 딛기에 좋기 때문에 너른 바위가 편안하다. 그리고 여기서 어딘가로 더 나아가려고 성급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러기는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기까지 하다. (飲食衎衎)

hiker-918704_640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내가 발 디뎌야 하는 지점을 제대로 딛는 것이다.

이전에 어설프게 배웠던 명상 경험으로 내겐 명상이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건 명상은 생각이나 감정에서 벗어난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여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하여 내게 명상시간은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밀쳐내려는 헛수고를 반복하거나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휩쓸려 자책과 실망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집중력을 발휘해 명상한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생각과 감정은 더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스승은 명상에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말고 다만 명상의 핵심인 알아차림을 유지하라고 하셨다. 알아차림이 뭔가? 그건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자각하고 아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명상 중에 생각이 올라오면 생각을 알아차리고 감정이 올라오면 감정을 알아차린다. 다리가 저려오면 그 통증을 알아차리고 졸음이 오려고 하면 그런 몸과 마음의 상태를 스캔한다. 그건 마치 마음 속에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한시도 쉬지 않고 산만하게 움직이는 작은 새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촐싹거리는 새의 움직임을 순간 그대로 따라가 버리거나 밉다고 내쫒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새의 움직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스승은 바로 그런 상태가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휩쓸림도 저항도 아닌 단지 편안하고 명료한 알아차림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

육이효의 기러기가 넓은 바위에 발을 디디고 편안하게 있는 모습은 명상 중에 알아차림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은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초효에서 물가로 나아갔다가 이제 너럭바위로 나아간 이효의 기러기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안정되게 균형을 잡고 있다. 아직 하늘을 날기 전이지만 아래에 있는 너른 바위로 간 스텝에서 여유 있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wren-6002068_640아직 하늘을 날기 전이지만 아래에 있는 너른 바위로 간 스텝에서 여유 있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알아차림으로 휩쓸리거나 저항하지 않는 마음의 균형을 찾는 건 꼭 방석에 앉아 있는 자세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실은 그것은 일어나서 걷고 일하고 먹고 움직이는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가능하다. 스승은 이렇게 명상 중에 연습한 알아차림을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 적용해 보라고 하셨다.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상의 모든 행위에 말이다. 그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나 말에는 늘 치우침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지만 그것이 성공하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처음엔 알아차림 한다는 것 자체를 자꾸 잊어버려서 그런 즐거움을 맛보기가 결코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러 일상 속의 알아차림 중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음식을 앞에 두고 먹을 때이다. 음식 앞에선 언제나 정신을 살짝 잃어버린다. 틀림없이 귤 서너 개가 있어서 그 중 하나를 먹기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껍질만 덩그라니 놓여있기 일쑤다. ^^;; 그런가하면 뭔가를 맛있다고 먹다가도 어느 샌가 마음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명상을 배우는 과정에서 매우 훌륭하게 균형 있는 스텝을 밟고 있다는 증거다.

점괘에서 육이의 기러기가 음식을 먹으면 즐거워하니 길(吉)하다고 칭찬한 것은 음식을 먹는 행위처럼 평범한 일상에서도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즐거움을 말한 게 아닐까? 기초 단계의 명상에서 끊임없이 알아차림을 훈련하라고 할 때 알아차림이란 어디 멀리 있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기러기가 넓은 바위에 다가가 편안하게 있듯이 그렇게 우리 안에 있는 알아차림에 편안히 머물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휩쓸리거나 밀쳐내는 치우침이 아니라 안정된 마음의 균형 속에 있을 때 즐거움도 생겨난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점괘 속 육이의 기러기가 편안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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