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損)괘는 손실, 희생, 덜어냄의 뜻이며 산을 뜻하는 간(艮)괘가 위에 있고 연못을 뜻하는 태(兌)괘가 밑에 있는 형상이다. 책상이 내 허리 높이라고 해도 누워서 보면 책상이 나보다 높아지듯이 연못이 깊으면 깊을수록 산은 높아진다. 그리고 밑에 있는 연못의 생명력이 산에 있는 온갖 나무와 풀들에게 전해지는 모습이다. 밑에서 덜어서 위를 증진 시키는 모습이다. 괘사에서는 損, 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可用享(손은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다. 바르게 할 수 있으니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어디에 쓰리오? 두 개의 대그릇에 가히 제사 지내느니라) 이라고 한다. 괘사를 보니 덜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하긴 덜어내는 행위 자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에 하기 힘드니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주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덜어낸다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손실이 맞긴 맞다. 돈을 남에게 주든 일을 도와주든! 자신에게서 무엇인가 줄어드니깐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만 놓고 봤을 때의 이야기다. 내 것을 받은 사람은 그만큼의 이익을 얻는다. 운동을 힘들어하던 택견 후배가 내가 사준 밥 한 끼에 조금은 힘이 날 수도 있고 배고픈 친구에게 간식을 사줘서 배고픔을 면할 수도 있다. 그러니 손해 보기 싫어서 계산하는 나의 마음을 덜어내고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덜어냄이다. 이렇게 보면 증여라는 것이 참 좋은 활동(?) 인 것 같지만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 내 눈에는 내가 잃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증여하면 ‘남’이 좋지 ‘내’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나는 누군가의 덜어냄을 받고 있는 ‘남’이었다.^^; 나는 현재 서울 한복판에서 보증금도 없이 월세 20만원으로 셋이서 같이 살고 있다. 심지어 이 집은 큰 방이 하나, 작은 방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있고 거실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다. 물론 월세를 다 내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다. 나머지 부족한 월세는 연구실에서 내준다. 이 말도 안 되는 곳이 바로 연구실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지방에서 공부하러 오시거나 다음날 아침 일찍 수업이 있으신 쌤들이 주로 이용하신다. 이곳에서 지내는 청년들은 월세를 적게 내는 대신에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한다. 이렇게 보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원룸을 구해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그 집을 관리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비는 하루에 5000원이면 해결된다. 연구실에 있는 주방의 8할은 선물로 운영된다. 연구실에서 공부하시는 쌤들이 집에 남는 식재료나 과일, 쌀 등을 선물 해주신다. 그러다 보니 주방팀에서 식재료를 구매할 때 돈이 훨씬 적게 든다. 그래서 끼니마다 2500원에 아주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이 만들어진다. 이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연구실 선생님들과 연구실에서 공부하시는 여러 학인들의 덜어냄 덕분이다! 그 덕분에 나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도 하고 군 복무도 잘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