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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창조자 -<픽션들>
 글쓴이 : 정옥 | 작성일 : 13-05-28 21:15
조회 : 5,471  
자기 삶의 창조자  
 
최정옥(감이당 대중지성 3학년)
 
 
푸코는 보르헤스가 보여준 새로운 사유의 틀에 영감을 받아 『말과 사물』을 썼다고 고백한다. 실제 보르헤스가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동물의 분류를 서문에 인용하였듯, 근대적 사고로는 이해 불가능한, 사고 체계의 붕괴와 당혹스러움에서, 오히려 새로운 사고의 길을 보았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픽션들』은 사유의 지평을 새로 열었다고 평가되는 보르헤스의 여러 책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고 있다.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 수 있는 생각을 방대하게 쓰는 것이 ‘정신 나간 짓’이라고 단언하는 그답게 17개의 완벽하게 표현된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모두가 ‘허구’(Ficciones)라고 제목을 단다. 서스펜스와 환타지가 잘 버무려져 있으니 픽션일 것이고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픽션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여는 순간 그가 농담처럼 던지는 묵직한 사유와 마주하게 된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작품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자유이다. 규격화되거나 판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의 공간, 특정한 내용물만이 아닌 무질서, 우연, 역설, 무의미까지 이질적인 것이 함께 담길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것을 만나기 위해 공간이동 따위는 필요치 않다. 균질화된 세계를 비틀어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픽션들』을 통해 그 의문의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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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혼돈, 그리고 허구
  
보르헤스는 18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양가 모두 유럽인이 중남미 대륙을 처음 정복할 때 정착한 군인 집안의 후손이었다. 영국인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영국식 교육을 받았고 유럽에서 공부를 하였다. 가정에선 부계의 영어와 모계의 스페인어 두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이중언어의 환경에서 성장했다. 집안엔 조부때부터 실명이 유전병으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면 모두 외워버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그 때문에 말년의 강의들은 모두 강의록을 외워서 한 것이라고 한다)
 
실명이 진행되고 있던 보르헤스는 39세 되던 1938년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한다. 패혈증에 걸려 고열과 환각에 시달리며 한 달 동안을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게 된다. 그의 실명은 더욱 심해졌고 이를 계기로 그의 글은 환상과 허구의 색이 훨씬 짙어지며 문학적 전환을 이루게 된다. 보는 감각의 절대성에서 벗어난 경험을 통해, 그는 새로운 세계에 닿는 문을 발견한 것일까? 
 
『픽션들』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환영으로 그려낸다. 꿈속의 인물이 실재화 되기도 하고, 시간이라는 관념이 정원과 길로 가시화되기도 하며 시간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은 저자가 있기도 하지만, 있는 저자의 없는 책을, 없는 저자의 어떤 책을 뒤섞어 인용함으로써,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한낱 변용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읽기 전에는 거짓인 게 확실한 이 환상의 세계를, 보르헤스는 각종 사건들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실제 언론매체에서 짜깁기 한 기자들의 이름과 브래태니커 백과사전까지 언급하면서 현실세계화 한다. 이내 소설 속 가상의 세계는 현실과 혼돈을 가져 온다. ‘언어와 인간의 경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도록 극단으로까지 밀고 가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거울과 미로, 도서관과 꿈, 무한성 등의 프리즘은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는 눈을 제공하며 상상력의 힘을 드러낸다. 가공된 픽션들의 스토리텔링은 마지막에 가서야 참모습은 드러내게 되고 그 결말은 늘 기대를 저버린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진행된 이야기는 기존에 믿고 있었던 것, 혹은 자명한 진리가 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음을, 그래서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는 결말이 매우 불안정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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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과 혼돈의 참 묘미는 <원형의 폐허들>에서 잘 드러난다. <원형의 페허들>는 밤마다 꿈을 꾸어 아이의 형상을 빚는 어느 늙은 사제의 이야기다. ‘불’ 신은 그 꿈의 형상을 현실의 아이로 바꾸어 준다. 꿈으로 빚은 아들은 아비처럼 또 다른 사원에서 불의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노인은 어느 날 지나는 행인들로부터 저 아래의 사원에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 현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노인은 그가 아들임을 직감한다. 어느 날 노인의 사원에도 화재가 일어난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는 문득 자신의 몸도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거기서 현실의 노인은 꿈이라는 가상의 이미지로 아들을 빚은 후, 아들이 행여 그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에서 결국 노인 자신도 그 누군가 꿈으로 빚은 가상의 이미지였음이 드러난다. 픽션 속에서만 존재하다 현실에 왔을 때 오히려 혼란스럽고 붕괴되어버리는 존재. 스마트폰 대화에 익숙해 실재 만남에서 할 말을 잃어버리는 우리 모습의 투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를 만든 우리도 어떤 존재가 만든 존재일 수 도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지 않은가?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지식, 기억에 대한 허구는 어떠한가?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어느날 사고를 당하고 전신이 마비되면서 천재적인 기억력을 갖게 된다. 그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모든 잎사귀들과 가지들과 포도알들의 수를 지각’하는하면, ‘1882년 4월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의 형태를 기억할’ 수 있다. ‘나 혼자서 가지고 있는 기억이 세계가 생긴 이래 모든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기억보다 많을’거라고 말할 정도이다. 푸네스의 이런 신적인 능력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축복이라기보다는 거의 형벌에 가깝다. 그것은 역으로 망각의 능력을 잃는 것이다. 망각이 하는 중요한 기능은 바로 일반화이다. 일반화란 여러가지 다른 대상들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고 분류하는 능력이다. 푸네스의 가공할 기억력을 전지한 능력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바로 분석, 정리, 변주하는-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기억이 사고를 저해하는 역설이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이라는 작품에는 공간의 미로가 아닌 시간의 미로 개념이 형상화 되어 있다. 보르헤스의 시간의 미로는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평행우주론을 연상 시킨다. 시간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그리고 그 각각은 또 다른 선택 앞에서 다시 갈라지고, 또 갈라지고 그렇게 무한히 갈라져 나간다. 그러나 각각 갈라지는 한 지점에서 행해지는 선택이 과연 진정 최선인지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인간은 미래를 결코 알 수 없다. “우연한” 선택으로 들어간 미로의 어느 구석에서 어떤 행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무한이 가능해 불멸이라는 상태를 이룬다면 시간은 그때부터 의미가 없어진다.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의 기억과 인간을 이루는 조건자체가 무의미해짐을 말해준다. 단일성을 넘어선 시간의 사유란 결국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요,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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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은 이야기마다 선명한 주제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가로지르고, 혼합되면서 사유의 축을 구성한다. 진리, 전체, 완전, 질서에 맞서 비진리, 부분, 불완전, 혼돈의 세계로 상정된 관념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어느 것도 ‘규정하지 않는’ 세계이다. 이제 그 혼란에서 길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 된다.
 
 우연+필연=삶
 
자신의 삶이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아니 내 삶의 우연을 조직하는 ‘합리적인 집단’ 있다?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우연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보르헤스는 이것을 “회사” 곧 우연을 조직하는 존재를 통해, 복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계를 제시한다. 완전하게 우연적일 것! 이런 원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이 원리를 실행하는 회사라는 조직은 모든 경우의 삶을 우연만으로 조직하려 한다. 필연만을 가정하는 세계의 정반대에서 우연으로 조직되는 세계는 모든 것에서 법과 질서를 찾는 세계를 조롱하고 있다. 복권의 이상국가인 바빌로니아에서 볼 때 나의 삶도 그런 우연들의 조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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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어 섞을 때마다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만화경이 있다. 우연들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는 만화경을 닮았다. 물질들로 구성된 현실 세계는 만화경을 닮았다. 만화경을 구성하는 물질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지만 매번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듯이 우리가 세계를 보는 착각도 유사한 것이 아닐런지. 단지 보여지는 것과 숨어 있는 것이 자리를 바꿀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여지는 것은 진실이고 보지 못하는 것은 허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에 닿고 싶으면 만화경을 흔든다. 그러면 진실과 허구는 자리바꿈을 한다. 현실은 허구가 되고 다시 새로운 우연의 조합이 이루어진다. 그럼 새로운 것을 보고자 만화경을 흔드는 힘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우리는 종종 필연에 억눌리고 우연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모두가 자리바꿈한 현실임을 이해한다면 필연을 깨뜨리는 우연이 반갑지 않을까?

 
나의 비밀을 적은 변론서를 찾아라!
    
 세속적 삶을 사는 우리는 세상과 자신이 완전하기를 꿈꾼다. 그 완전함을 투영해 신을 만들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해석하기 위해 철학을 하고, 과학을 통해 질서를 찾으려 한다.『픽션들』은 이 욕망을 근거로 환상의 세계를 만든다. 진리를 담은 한권의 책을 찾는 <바벨의 도서관>은 보르헤스의 핵심사상이 잘 투영되어 있다. 옛날부터 존재했었고(처음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에 그들은 ‘각자 자신의 <변론서>를 찾으려는 욕망’으로 도서관에 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은 진리의 저장소이다. 그러나 ‘바벨’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이 도서관은 무한한 책이 있는 혼돈과 무질서의 공간이다. 육각형의 벽을 타고 잘 정돈된 책들이 있는 정연한 외관과는 달리, 실은 혼돈으로 범벅된 모순과 역설의 공간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도서관이라 부르는 우주’라고 명명하며, 도서관은 우주의 다른 이름임을 밝힌다. 즉 책의 화자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책은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인 양 가장하지 않는다. 도서관은 허구인 채 그냥 자신의 시공간을 갖는다. 온갖 지식을 담고 있는 현재의 ‘사이버 도서관’처럼 말이다. 이 도서관은 몇 가지 공리가 작동한다. 첫 번째 공리는 ‘도서관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 는 것.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도서관이 존재해 왔고, 아마 미래에도 도서관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도서관이 존재하는 한 세계의 미래도 영원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곳을 지키는 인간은 불행히도 ‘불완전한 사서’다. 하급 조물주가 만든 우연이거나 심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서만 할 뿐 저자는 결코 될 수 없는, 자신의 도서관을 세울 수는 없는 존재인 모양이다. 도서관의 두 번째 공리는 ‘알파벳 철자 수가 스물다섯 개’라는 것이다.  22개의 알파벳+쉼표와 마침표+글자 사이의 빈 공간이다. 이 여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글자의 수를 무한하게 하는 것인가? 여백은 글자와 글자를 구별하게 하는 기호이다. 만약 여백이 없다면 글자들은 뒤엉켜 구별되지 않고 무질서해 질 것이다. 서로를 다르게 만드는 ‘차이’가 질서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노자가, 그릇의 빈 공간이 있어 쓸모가 있고, 바퀴의 빈 공간이 있어야 30개의 바퀴가 하나를 이룬다고 한 그것과 유사하다. 모든 책이 있어 모든 문제에 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이곳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밝힌 ‘변론서’ 찾으러 온 것이다. 이 변론서를 찾을 확률은 얼마일까? 화자는 딱 잘라 말한다. 확률 ‘0’. 그럼 어찌해야하나? 
 
 
몇 세기 후에 그는 똑같은 무질서 (이 무질서도 반복되면 질서가 되리라. 신적인 질서)속에서
똑같은 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리라. 나는 고독 속에서 이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레고 있다. (『픽션들』<바벨의 도서관>중에서)
 
확률 “0”의 고독한 진리 찾기에서 그래도 진리를 기다릴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리 없음에서 찾는 진리가 아닐까? 삶의 의미를 기록한 책이 없는 현실에서 찾는 삶. 정해진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를 만드는 진리 찾기. 스스로가 ‘자기 변론서’의 저자이기를 자처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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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카프카와 달리 <출구>를 찾으려하지 않는다. 보르헤스의 환상적인 문학은 우주 자체가 하나의 환영이므로, 그 자체가 곧 현실이고, 현실과 아무런 논리적 모순이 없다. ‘한권의 책’, 주변의 모든 것이 진리를 담고 있음을 자각할 때 발견되는 책일 것이다. 진리라는 기원과 중심이 없는 세계는 역으로 내가 만드는 것이 바로 기원이고 중심일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기다림에 나의 마음도 설레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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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세경   2013-06-21 17:52:27
 
읽는동안 환상특급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야기들이 기묘하기도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네요. 자기 변론서와 불완전한 사서도 크게 공감되던데 작가는 뭔가 그런 날카로운 메시지를 끄집에 내는 사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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