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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거울, 천황(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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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진 작성일13-06-09 05:20 조회8,415회 댓글1건

본문

왜곡된 거울 천황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이현진(감이당 대중지성)
 
이 책이 고전인 것은 저자의 지적인 명확함, 그리고 유려한 문체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난해한 용어를 쓰지 않고 복잡한 사상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지닌 작가였다. 문체는 그의 사람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훌륭한 인간성과 영혼의 관대함을 지닌 작가였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을유문화사, 이안 부루마 서문

 
『국화와 칼』은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낮선 적’ 일본에 대해 쓴 연구보고서이다. 이안 부루마의 말대로 『국화와 칼』에는 저자의 일본에 대한 관대한 시각이 엿보인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교전국 일본인을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개’, ‘정신나간 사무라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스 베네딕트는 그런 편견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알았고 전쟁을 수행하는 일본인의 심층을 탐구하고자 했다. 수많은 학술자료와 재미일본인을 인터뷰하면서 왜곡 없이 타자를 보고, 있는 그대로 쓰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타자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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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루스 베네딕트 자신도 수많은 차별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동생과의 차별,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수가 되지 못한 일, 성정체성 혼란, 병약한 몸. 루스 베네딕트는 자신이 처한 상황 덕분에 차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선을 견지한다. 그래서 『국화와 칼』은 단순한 학술보고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려고 했던 루스 베네딕트의 애정이 담긴 고전이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 사람에게 가르침을 준다. 『국화와 칼』 또한 저술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일본을 이해하는 지침서 역할을 한다. 특히 천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일본을 이웃으로 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대부분 천황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증오로만 일관한다. 마찬가지로 2차 대전 당시 많은 서양학자들도 천황을 히틀러처럼 국민을 전쟁으로 내몬, ‘전쟁에 미친 괴물’로 그렸다. 그래서 ‘악의 축’인 천황만 제거하면 일본은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루스 베네딕트는 천황이 일본국민에게 단순한 지도자 이상이라는 것을 간파한다. 단적으로 일본이 패전했을 때도 전쟁의 총지휘자였던 천황에 대한 국민의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루스 베네딕트가 바라본 천황은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평화를 위한 의무
 
그런 놈에게서, 빙수 같은 하찮은 것이라도 온을 입었다는 건 내 체면이 깎이는 일이다. 1전이든 5리든 내가 이런 온을 입는다면, 마음 편히 죽을 순 없다...(중략)...내가 거절하지 않고 그의 온을 받은 것은, 그를 온전한 인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내 빙수 값을 지불하겠다고 우기지 않고, 나는 온을 받고 감사해야 했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답례이다. 지위도 없고 관직도 없지만 나도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다. 독립된 인간이 온을 호의로 받아들이는 건, 100만 원보다 더 값진 답례를 치른 셈이다.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루스 베네딕트는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통해 일본인의 의식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온(恩)을 이해한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의식이다. 어느 날 도련님은 고슴도치라고 별명 붙인 동료교사에게 빙수 한 그릇을 얻어먹는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다른 교사가, 고슴도치가 도련님을 좋지 않게 말했다고 고자질하자. 도련님은 그 말을 믿고 고슴도치에게 모욕을 갚고자 한다. 그런데 고슴도치에게 얻어먹은 빙수, 온(恩)이 마음에 걸린다.

이처럼 일본인은 팥빙수를 얻어먹는 것과 같이 사소한 일도 온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갚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지(恥)를 모르는 놈이라는 모욕을 당한다. 일본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과 조상으로부터 온을 입는다고 여기는데, 특이한 점은 이와 같은 의무체계는 위에서 강제하는 것이 아닌 아랫사람으로부터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온을 갚는 데에는 기무(義務)와 기리(義理) 두 가지가 있다. 기무는 주(忠)나 고(孝)같이 적극적으로 갚아야 하지만 절대 갚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반면 기리는 자신이 받은 수량만큼만 갚거나 그것조차 마지못해 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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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온과 기무·기리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그것들은 루스 베네딕트가 표현했듯 은행의 금전거래처럼 빚쟁이마냥 사람을 옥죄기도 한다. 반면 일본인의 삶을 조명하고 유지하는 틀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의무를 다하면 주위의 존경을 받는 동시에 자신에게 합당한 위치에서 안정을 구가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책무를 어기면 바로 비난이 가해진다. 이유는 분쟁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오랜 전국시대를 거친 뒤에도 영주, 장군, 일족들 간의 대립이 빈번했던 일본으로서는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분쟁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또한 온과 책무는 일본인의 인정(쾌락)을 제어해 자기수양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인정을 탐닉하지만 그것은 기무나 기리를 침해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친다. 일본인은 책무를 다하기 위해 개인의 욕망과 쾌락을 쉽게 내려놓는다. 때문에 이러한 자기 수양이 자기 억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인은 자기 수양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책무를 원활히 수행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본의 윤리적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일본인의 삶을 ‘모두 알맞은 위치에 둔다’ 그 덕분에 불필요한 분쟁은 해소되고, 일본인은 안정된 삶을 취한다.     
 

온(恩)에서 황은(皇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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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본 특유의 윤리시스템과 근대의 천황은 어떻게 조우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교토에 은거하고 있던 천황이 도쿄로 돌아온 메이지 시대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일본의 모든 역사 시대에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했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 습성 속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 일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정서를 천황에게 집중시켜왔다. 일본인 특유의 생활양식 속에서 그들이 품고 있는 모든 편애의 정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황은을 증대시킨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을유문화사 141쪽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에게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임을 간파한다. 이 습성은 일본이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메이지 정부에 의해  악용된다. 메이지 이전 봉건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기리가 가장 존중받는 미덕이었다. 쇼군이나 막부에 대한 기무보다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는 다이묘에게 바치는 기리, 모욕을 피하고 이름을 지키는 기리가 더 중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기리가 위치했던 자리를 천황에 대한 기무(義務) 즉, 주(忠)로 대체한다. 천황에 대한 주가 모든 의무의 정점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천황을 향한 주는 부모에 대한 고(孝)마저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하여 다른 의무들은 천황의 주에 흡수되거나 소거되어야 했다.  

그것은 메이지 정부가 유명무실했던 천황을 전면에 내세우고 일본국민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가능했다. 학교에서는 교실에 천황의 어진을 모시고 학생들이 참배하도록 했으며, 수업시간에는 ‘만세일계’ 천황에 대한 역사를 교육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는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자 마음의 안식처인 신사를 천황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천황에 대한 숭배는 일상화 되었다. 이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더욱 확고하게 굳어진다.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고 자신의 책무에 충실하고자 했던 자기수행도 천황에 대한 주를 표현하는 행위로 치환된다.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 닦아 무아의 경지에 이른 마코토(성실)한 사람이 천황을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죽음까지 불사하는 천황주의자로 변질되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일본인은 무가(無我) 상태에 이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 일본인들은 천황에 대한 기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것을 고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꺼이 천황을 위해 그것을 수행한다. 천황에 대한 의지와 행위 사이에는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의 간극도 없다. 만주의 혹한, 동남아의 폭우와 전염병으로 쓰러져도 천황에 대한 기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통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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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에 대한 무아’의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가미카제다. 가미카제는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주었다는 신풍(神風)을 뜻한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자살특공대로 악명이 높았다. 일본이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고 전쟁물량도 바닥나자 젊은이들은 전투기에 몸을 싣고 적의 함대를 들이받아 산화한다. 그때도 그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일본인은 의무를 위해서는 죽을 수 있을 만큼 죽음을 ‘날실처럼 가벼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희생이나 억압이 아니다 그들은 주나 고, 기리를 갚기 위해 자진해서 죽는다. 그리고 그렇게 죽음으로써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고 말한다. 일본인의 극단적인 자기수양과 천황파시즘의 비극적인 만남이다.
 

거울 속의 천황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영혼의 문인 자신의 눈을 본다.....이 목적을 위해 언제나 몸에 거울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자신의 영혼을 반성하기 위해 집안의 불단에 특별한 거울을 놓아두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받들어 모시고. ‘자기 자신’에게 참배한다.
 
─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을유문화사, 545쪽
 
일본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의무관계를 중요시한다. 그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한 사람이 계층제도 내에서 알맞은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행위다. 하지만 자신의 위신이나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일본인의 특성상, 이와 같은 관계는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는데 자기감시나 자기감독의 중압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 가운데는 자기수양을 통해 타자의 존재와 시선 속에 갇힌 자신을 잊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기수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염불을 외고, 호흡을 관찰하고, 좌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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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울을 보는 행위 또한 자기수양의 하나다. 일본인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사회의 관계망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자신의 본모습과 마주한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이 일본의 전통적 윤리시스템(의무관계, 계층제도)과 결합하고 그것이 천황제 파시즘으로 변질된 후, 일본인의 자기수행에도 일련의 변화가 발생한다. 이제 일본인의 거울 속에는 천황이 자리 잡게 된다. 천황은 강력한 바이러스처럼 외부의 사회적 관계를 장악한 것은 물론, 일본인 개개인의 내면까지도 침투한 것이다. 이제 일본인은 천황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받들어 모시고’, ‘참배한다’

루스 베네딕트에게도 천황은 낮선 존재였다. 천황은 서양의 절대군주와도 다르고 동양의 샤먼과도 다른 ‘일본의 만들어진 전통’이었다. 다른 인류학자들이 서양문화로는 이해할 수 없는 천황을 괴물로 야만인의 왕으로 취급할 때, 루스 베네딕트는 천황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인류학에 천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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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금님의 댓글

경금 작성일

현진아, 누나를 위한!! 민족주의적 분노에서 벗어나서 텍스트에 집중해서 잘 수정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