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내게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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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5-05-12 21:23 조회6,707회 댓글5건본문
글쓰기, 내게 주는 선물
이정수(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쉰 넷 백수,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올해 쉰넷. “남자는 48세에 기운이 상부에서부터 쇠약해져 얼굴이 초췌해지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며 56세에는 간의 기운이 쇠약해져 근육을 움직일 수 없고 천계가 다 말라 정기가 줄어들며 64세에는 치아와 머리카락이 다 빠지게 된다”는 동의보감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초겨울이 지난 나이요, 장수가 위험이 되어버린 ‘인생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해도 후반전이 이미 시작된 나이다. 대체 이 나이에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회사생활 27년. 첫 직장이자 지금은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한 회사에서, 살아온 날의 꼭 절반을 월급쟁이로 보냈다. 그 대가로 향후 수년간의 자유시간이 내 앞에 놓여있다. 이 자유시간, 해방공간에서 쉰넷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싶은 것이 무언가?
융은 말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주할 어려움들,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고. 이제까지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았기에, 우리로부터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내가 원하는 그 일을 행함으로써 자연스레 알게 된다.
신근영,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북드라망, 2012, 8쪽
마흔 즈음에는 마흔 살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며 “삶의 목차는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니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던 강윤후 시인의 위로에 ‘그래 멋진 별책부록이라도 한 번 만들어 보자’했다. 쉰이 다 되어서는, 지천명(知天命)이란 쉰 이후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공자는 정치 그만두고 선생님이 되었을 거라고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나도 쉰이 될 때까지는 그런 일을 찾겠노라’했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모르고 있으니 정말 내가 아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과연 나는 무슨 일이 하고 싶으며 누구와 더불어 지내고 싶고 삶에서 무슨 의미를 찾고 싶은 것일까?융은 그 답이 내안에 있다고 하는데, 내안에 있는 그 답을 어떻게 알아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데 ‘하고 싶은 일’이란 또 무엇인가? 뭘 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뭐든 직접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차례대로 하면서 살면 되는 것인가? 암벽등반 한번 해보고, 드럼이나 대금 같은 악기 한번 배워보고, 산티아고나 히말라야 트레킹 한번 가고, 쿠스코나 이과수폭포 여행도 다녀오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면 결국 평생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 셈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건 다 광고나 자본이 충동질한 것이지 자기가 진정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면? 아! 어렵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시간. 1주일 휴가처럼 막혀있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을 때까지는 열려있는, 배고플 때까지는 가볼 수 있는 시간이다. 뭘 해야 할까? ‘나중 생각해서 지금 일자리 구할 여력 있을 때 더 벌어놓아야 한다’는 약간의 공포와 ‘나중 일은 그때 가서 보고 일단 아무 생각 말고 쉬엄쉬엄 새 길을 찾자.’는 약간의 용기가 쉼 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약간이다. 공포도 약간이고 용기도 약간. 앞일을 어찌 알겠는가? 몇 푼 벌어 놓은 돈도 다 못 쓰고 가는 안타까운 인생도 있는 법이고, 궁즉통(窮則通)이라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하게 된다. 현재를 어떤 미래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만들자! 나중에 가서 과거를 후회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목적을 갖고 현재를 꾸려 나가야 한다……. 프루스트는 이런 목적론적이고 준비론적인 시간관에 갇혀 늙어가는 삶이야말로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오선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한 작가의 배움과 수련』, 작은길, 2014, 78쪽
가끔 조간신문을 보다 밤새 마신 술이 확 깰 때가 있는데 저명인사의 부고 기사에서 고인의 나이가 예순 전후임을 확인했을 때다. 몇 년 전 예순넷에 고인이 된 소설가의 경우가 그랬고 지난 2월 고인이 된 학교 동기인 모 대학 교수의 경우에도 그랬다. 애도의 마음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이 머리를 내리치는 게 먼저다. 용기를 내자. 용기를 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바닥부터 준비해서, 향후 20년 동안 그 일을 하면서 살겠노라. 프루스트는 이런 목적론적이고 준비론적 삶이야말로 허무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은 다른 출구를 모른다.
새로운 일상, 새로운 만남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 책 읽기도 좋아하고 남산이나 한강 변 걷기도 좋아하고 요가나 108배, 오금희 같은 운동도 좋아하고 우리 가곡을 듣거나 그 가사를 시 읊듯 주절주절 웅얼거리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소소한 것들은 회사생활 내내, 내 지친 심신을 달래준 특급공신들이다. ‘하루 12시간’이라는 회사생활이 물러난 자리도 이 소소한 일상들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다만 카메오가 주연자리를 꿰찼다고나 할까? 한두 시간 더 자고, 한두 시간 집안일, 두세 시간 산책, 서너 시간 공부. 순서는 없고 기분 내키는 대로다. 가끔 친구들이 물어온다. “이제 안 지겨워?”천만에다. 아직은 충분히 견딜만하다. 문제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아니라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년간의’자유시간이다. 서너 달도 아니고 삼사 년이니 그 긴 시간을 하루하루 일상으로만 헤쳐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새로운 의미부여와 계획이 필요하다. 혼자서도 잘 놀긴 하지만 혼자 놀기만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다.
우선 첫 도전으로 사회적 경제 분야나 시민사회단체 같은 비영리 활동분야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사회적 경제는 지나치게 돈 중심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기업형태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 마을 기업, 사회적 기업 같은 사람 중심의 협동경제를 모색하는 분야다.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은 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 나이에 더구나 백수의 신분으로 기존의 인간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이것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부딪혀 보기로 했다. 3개월 동안 서울시의 사회공헌아카데미, 희망제작소의 시니어NPO학교,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금융복지상담사 교육을 받으면서, 30대 전후 청년부터 띠동갑 형님, 누님까지 두루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 나름대로 자신의 일이 있기도 했고, 나이 먹고 사회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 금방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보고 듣기만 해도 가슴 푸근한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몇몇 청년들과는 격주로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여전히 고민이 남는다. 사회적 경제, 비영리 활동. 이 일들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아니면 해야 하는 아니,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일까?
사회적 경제가 내게 다산으로 가는 도전이라면 감이당은 내게 연암으로 가는 도전이다. 감이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낭송 전습록 덕분이다. 고미숙 선생님의 칼럼을 보고 구한 책이었는데 양명학에 대한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낭송이라는 말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매일 한두 시간씩 낭송하면서 한 달 사이에 책을 세 번이나 읽게 되었다. 나는 구상은 많지만, 시도는 잘 안 하는 편이고 대체로 계획적이지만 일상에서는 다분히 즉흥적이기도 하다. 2월 어느 날 언뜻 감이당 생각이 나서 홈피를 찾았는데 그날이 마침 목성 신청 마감일이었다. 망설였다. ‘매주 목요일 종일 수업에 쉼 없이 10주라. 게다가 여성들이 너무 많아 보이는데?’ 자유냐 구속이냐 망설인 끝에 마지막 신청자가 됐다. 다행히 지난 8주간의 과정을 통해 “매일 볼 책과 쓸 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부는 구원”이라는 말씀을 몸소 느끼고 있다.쓸데없는 고민 줄고 음주량도 줄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곳에 내 발로 왔으니 공부도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할 요량이다. 이제 1학기 마지막 남은 에세이. 아! 이렇게 많은 분량의 글을 써본 적이 언제던가? 있기는 있었던가?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게 주는 선물, 글쓰기
미친 반 고흐는 미치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우울한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함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이 옥. 버림받은 이 옥은 사물들과 공감하고 사물들 속에서 자신을 잊기 위해 글을 쓴다. 한 줌의 세속적 욕망과 결별하기 위해 글을 쓴다.
채운, 『글쓰기와 반 시대성, 이 옥을 읽는다』, 북드라망, 2013, 307쪽
그럼 나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툭 던져진 질문 앞에 그저 먹먹하기만 했다. 8주간의 수업 후 이제 비로소 에세이 숙제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시점인데 주제가 왜 글을 쓰냐니. ‘왜?’라는 의미는 뭘까? ‘쓰는가?’는 ‘쓰고 싶은가?’ 또는 ‘쓰려고 하는가?’ 와는 다른 것인가? 한 마디 상큼한 내 나름의 단답형이 있어야 마음도 편해지고 구상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의시간에 받아 적은 노트를 보면 실마리가 있을까?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 실마리가 있을까? 노트와 책에서 글쓰기를 직접 언급한 부분들을 주루룩 베껴놓고 오르락내리락 훑어보고 되새겨보고 다시 써보고 하다 보니 끌리는 문장이 하나 있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글.’ 다시 생각했다. 선물이니 좋은 것이란 얘기인데 글이, 글쓰기가 선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내 삶을 돌아보게 할 수 있어서?’ 그럴듯하긴 한데 내가‘지금’ 글을 쓰는 이유가 내 삶을 돌아보기 위한 것인가?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물론 글을 쓰다 보면 삶을 되짚어보기도 하겠지만, 왠지 뒷맛이 남는다.
나한테 선물이라는 걸 줘본 적은 있었던가? 이번에 아주 긴 자유시간을 선사했으니 이건 분명 선물이 맞으리라. 곰곰 더듬어보니 오래전 나한테 준 선물이 딱 하나 있다. 오금희(五禽戱)! 나는 오금희라는 운동을 할 줄 안다. 오금희는 중국 한나라 시대 명의였던 화타가 고대의 도인술을 집약해서 만든 운동이다. 사슴, 곰, 원숭이, 학, 닭, 호랑이 같은 동물들의 동작을 흉내 내서 만들었는데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태극권과 같은 ‘권’ 그러니까 무술이 아니라 ‘희’즉 양생을 위한 놀이다. 내가 배운 오금희는 춤사위 같은 동작 여든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번 하는데 35분 정도 걸린다. 내가 오금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2년 전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두 동작씩 2년 남짓 익혔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다. 나한테 오금희를 가르쳐 주었던 분이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운동을 다 배우고 나면 평생 지닐 보물을 한 가지 갖게 될 겁니다.” 그랬다. 그렇게 난 오금희를 나한테 선물로 주었었다. 다른 사람의 운동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능력.
글쓰기는 아무짝에도 써먹지 못하는 무용한 일이 아닐까?……일상은 어떤 목적이나 쓸모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든 노동이든 내가 하는 일들은 모두 나의 역량을 표현한다.……이 장인-되기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도주선이다. 무엇을 하느냐를 고민하기보다도,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해 나의 역량을 끌어내야 한다. 글쓰기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쓸모는 어떤 역량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늘 다시 발명된다.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북드라망, 2014, 198~200쪽
글쓰기는 나에게 무용하지 않은 하나의 선물로 다가왔다. 나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오금희의 첫 동작은 녹참원조(鹿站遠眺), 사슴이 먼 곳을 바라보는 동작이다. 12년 전 그 동작을 처음 배울 때처럼 나는 지금 글쓰기의 첫 동작을 하고 있다. 아니, ‘읽는다는 것이 쓰기 시작하는 것’이라면 나는 벌써 몇 가지 동작을 익힌 셈이다. ‘기쁨은 무언가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쁨’이라지만 나는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는 기쁨뿐만 아니라 어설프지만 나 스스로 글쓰기를 즐길 수 있을 그 날의 기쁨까지 맛보고 싶다. 오금희가 건강한 몸을 주듯 글쓰기는 내게 건강한 마음을 줄 것이다. 역량만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가는데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가 되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글쓰기 첫 동작 : ‘더불어 사람, 더불어 자연’, 그 ‘사이’ 또 ‘사이’
필레몬과 또 다른 환상의 형상들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필레몬)의 견해로는 그 생각들이 숲 속의 짐승이나 방 안에 있는 사람, 공중의 새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칼 융, 『기억 꿈 사상』, A.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2007, 335~336쪽,
신근영, 같은 책, 176쪽에서 재인용
생각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 30년 전쯤 대학 시절의 일이다. 늦봄이나 이른 여름이었을까 학교로 가던 버스가 여의도광장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버스를 내려 좌우로 퍼져나갔고 나는 차창에 기대어 무심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그 사람들이 멀어져 가면서 마치 개미처럼 보이더니, 나 자신은 거인이 된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내가 개미처럼 작아지면서 내 뒤로 산더미 같은 그림자가 덮쳐왔다. 내가 차창 밖의 사람들을 개미로 보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 나를 개미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다가왔다. 묘한 기분이었지만 정신은 몽롱하듯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 몸 안의 세포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의 한 부분이듯, 나도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의 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날 어쩌면 무의식이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더불어 사람, 더불어 자연’ 이 말은 무의식이 내게 전해준 안개 같은 메시지를 젊은 시절의 내 의식이 겨우 붙잡은 표현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수시로 ‘사람들과 더불어 공감하며 살고 있는지, 자연과 더불어 공명하며 살고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로에 갇혀있다.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삶은 마음을 편안하고 푸근하게 하지만 늘 공자 말씀에 뒷덜미를 잡힌다. “사람을 떠나서 짐승들과는 어울려 살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너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여 ‘더불어 사람’으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선악 이분법과 상대주의라는 돌부리에 걸린다. 어렵다. 이 길도 어렵고 저 길도 어렵고 그사이도 어렵다.
감이당 공부에 힘입어 이 미로를 벗어나고 싶다. “진리란 매 순간 구성되는 것이다. 오직 그뿐이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 시공간적 조건에 따라 늘 새롭게 변주될 수밖에.”라는 말씀도 쫓아가보고,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다.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뜻이 움직인 것이다”라는 알듯 말 듯 한 양명의 가르침도 따라가 볼 것이다. 한 동작 한 동작 배우고 익혀서 공부와 글쓰기를 즐길 수 있게 되면 꼭 ‘더불어 사람, 더불어 자연’을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다. 일상이 빚어내는 수많은 변주들을 붙잡아 저 앙상한 표현을 풍성하게 하고 싶다.
댓글목록
shulam89님의 댓글
shulam89 작성일공부와 글쓰기가 자기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바쁜 아침에 꼼짝없이 앉아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호호님의 댓글
호호 작성일ㅋ ㅋ 저도 요즘 제 인생이 다 지난 부록으로 느껴진답니다.
삐돌이님의 댓글
삐돌이 작성일축하드립니다. 사이 길 떠남
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작성일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질문하게 된다는 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
깜봉시연님의 댓글
깜봉시연 작성일질문을 붙잡으면서 한발한발 나가시는 모습이 무지 감동적이네요~ 이분법과 상대주의를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부를 함께 하게 되서 좋구요~ 고맙습니다^^